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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로 Apr 04. 2024

귀찮은 일이 생겼을 때 내가 대처하는 방법

오전에 남편이 전화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재실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래층에서 물이 샌다네. 우리 집 화장실에서 확인해 봐야 된대. 이따 방문하신다는데?"


헐! 이사 온 지 두 달도 안 됐는데 화장실에 문제가 생겼다. 집에 편하게 있을 때 누군가 갑작스럽게 찾아와 집을 점검하는 것은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우리 집 때문에 물이 새는 것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잠깐도 아니고 30분이라니! 넉넉히 오후 4시로 방문 예약을 잡았는데, 오전 11시도 안 돼서 갑자기 인터폰이 울린다.


"지금 집에 계신가요?"


"네, 아까 4시로 예약 잡았는데요."


"4시로 잡긴 했는데 아랫집에 계속 물이 샌다고 해서요."


"아, 그러면 지금 오셔도 돼요."


아래층 사람도 불편할 테니 빨리 확인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우리 집 때문에 물이 새는 건 아닐 테니까. 다행히 며칠 전에 남편이 화장실 청소를 해서 화장실 상태는 깨끗한 편이었다.


잠시 후, 방재실 직원 분이 오셔서 샤워실 배수구 부분을 청테이프로 여러 번 막고 테스트한 결과 우리 집 때문에 물이 새는 게 맞았다. 샤워실에서 물을 쓰면 아랫집 벽에 물이 새는 것이다.


"집주인분한테 연락해서 방수 작업 하셔야겠는데요."


"방수 작업이요?"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화장실 방수 작업이라니. 일이 점점 커진다.


"네, 집주인분이 고쳐주셔야 해요."


"얘기할게요. 집주인분은 어디로 연락해서 방수작업 알아보시면 되나요?"


"몇 군데 업체 있는데, 알려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직원 분이 나가신 후 나는 방금 받은 업체 번호로 전화를 해서 방수작업에 대해 물어보았다.


"안녕하세요, OOO 오피스텔 방수작업 관련해서 문의드리려고 하는데요,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까요?"


"보통 오전 8-9시에 해서 오후 5-6시에 끝납니다."


웁스. 하루 종일 작업해야 한다니.


"아... 그러면 그 전후로 화장실은 써도 되나요?"


"세면대나 변기 쓰는 건 상관없고, 샤워실은 그다음 날까지 쓰면 안 되세요."


"그러면 작업 다음날 밤까지 샤워실을 아예 쓰면 안 되는 거예요?"


"네. 이틀 후부터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럼 씻는 건 어떻게..."


"보통 사우나 가시던데요."


아, 예... 하긴, 근처에 사우나가 있긴 하다. 살면서 사우나에 가서 씻은 적은 거의 없지만.


"이따 방문해서 한번 볼게요."


"네, 그럼 1시쯤 방문해 주세요!"


그렇게 작업자분은 12시 30분에 방문하셔서(다들 왜 시간 약속 안 지키시죠) 매의 눈으로 우리 집을 스캔하신 후 이 집도 벽에 물이 찰 수 있다며, 이사오기 전에 집주인이 도배를 했어야 한다며 요목조목 문제점을 짚어주고 가셨다. 방수작업은 이틀 후로 예약했다.


평온하던 일상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이틀 후에 나는 방수작업 하는 내내 낯선 분들과 함께 있어야 하며, 다음날까지 샤워실을 쓸 수 없어 꼬질꼬질이가 되거나 어색한 마음으로 사우나에 가야 한다. 귀찮게스리. 씻는 게 불편해지니 출퇴근하는 남편에게는 더 번거로운 일이다.




살다 보면 이렇게 뜻하지 않게 귀찮은 일이 생길 때가 있다. 때로는 힘든 일, 때로는 슬픈 일, 때로는 화나는 일이. 이런 일들은 전혀 사전 예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두더지 튀어나오듯 눈앞에 나타난다.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머리가 아파진다.


이럴 때 스트레스 안 받는(혹은 덜 받는) 나만의 비법이 있다.


그 비법은 바로!


하나의 재밌는 이벤트라고 생각하는 것.


딱히 반기고 싶은 이벤트는 아니지만, 어쨌든 이벤트는 이벤트다. 내 삶을 다채롭게 장식해 주는 이벤트. 성가신 일이 생길 때마다, 불평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걸 재밌는 이벤트로 즐길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방수작업 하는 내내 불편할 그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거의 이틀을 화장실을 못 쓰니, 아예 남편하고 호캉스를 가버려? (라고 생각하고 숙박 어플을 켰으나 성수기인지 가격이 너무 비싼 것 같아 조용히 껐다.) 아님 어차피 정신없어서 할 일을 못할 테니 종일 책을 읽는 독서의 날로 정해버릴까? 아님 재밌는 영화나 드라마를 봐?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 편안히 쉬면서 조용히 책 읽고 글을 쓰기로 했다. 평상시와 별다를 바 없는 것 같긴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정신없어서 할 일을 못할 테니'이다. 이로써 집안일에 대한 의무와 할 일에 대한 부담감을 정당하게(?)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책 읽고 글 쓰고 놀 수 있으니까! 점심도 배달이나 포장 찬스 쓰기로. 아이, 신나. 심지어 방수 작업 다음날에는 정당하게(?) 꼬질이가 될 수 있다. 하하.


갑자기 세상 귀찮았던 일이 꽤 괜찮은 이벤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 불평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앞에 펼쳐진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모든 일을 재밌는 이벤트로 생각한다면, 앞으로 내 삶은 얼마나 더 재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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