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강박의 끝에서

성형외과 대신, 정신과를 먼저 갔었어야 했다.

by 오름달

“나 지방흡입 했어. 이거 한 거는 나랑 내 동생 밖에 몰라. 전신마취 하니까, 보호자 연락처를 필수로 적어야 했거든. 2010년 즘 일거야. 회사를 관두고 대학원 진학을 앞뒀을 때. 그땐 그 생각밖에 없었어.”


2024년 여름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하듯 말을 꺼냈다. 친구는 정말 놀라고 또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랬구나. 나 방송 작가했을 때, 옆옆 팀 작가 분이 지흡하다 죽었었어... 아마 그 증일 거야...”

나는 그냥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가 지나온 시절, 온전히 내가 한 선택에, 온전히 나만을 탓했던 일부러 잊고 있었던 그 시간을 떠올렸다.


아마 보호자 연락처를 적었던 건 사망가능성에 대한 서류였을 거다.

'이건 검색할 때 몰랐던 건데...'

하지만 나는 내 결정을 확신하듯, 그리고 성형이란 ‘사치품'에 익숙하다는 듯, 백화점에서 처음으로 명품 화장품을 사듯, '아 네 그럼요.' 하면서 서명을 했었던 것 같다. 충격이 없었을 수 없었을 텐데, 이미 돈을 모두 치른 데다, 매 순간 ‘하체비만 어떡하지'라는 이 지긋지긋한 생각에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을 거다. 하체비만, 곰돌이 같이 낮은 코, 날씬하지 않은 몸, 아무렇지도 않게 먹토를 하고 어금니 자국이 선명한 손등을 숨기려 했던 기억, 겁이 잔뜩 나서 코에 필러를 맞았던 과거. 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싶었다.

나는 내 생각이 지긋지긋했다. '내 다리가 얇았으면 좋겠다.' '또 하지만 너무 소녀시대 같은 다리는 별로다'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어대며 어떤 결정도 못하는 내가 지긋지긋했다.


그리고 수술대에 누웠겠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다란 스테인리스 막대기 두 개의 석션, 내 허벅지와 엉덩이에서 빠져나온 지방이 모여있던 유리병, 수술대라는 것에 처음 누워본 두려움. 이게 내 기억인지, 수술 과정을 미리 살펴봤던 조사의 정보인지 조차 모르겠다.


회사를 관두고선, 여행을 다녀오고선, 무작정 대학원에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난 뭘 그렇게 쉽게 생각했을까. 강남역 해커스를 다니며 준비한 영어시험 점수로 대학원에 지원했고, 떨어졌다. 난 그렇게 누구나 간다는 대학원에 떨어진 사람이 되었다. 혼란이 가중되고, 무시했던 회사엔 입사할 수 없어서 면접조차 안 보다가, 다음 학기엔 다른 학교의 대학원에 갈 수 있었다.


당시 나의 세계는 커뮤니티뿐이었다. 흔히 말하는 다음 여초 커뮤니티. 난 분명 ‘정의로운' 사람인데, 그 안에서의 여성에 대한 감각은 무지했을 거다. 남성보다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글을 보며 화를 내고선, 각종 여자 연예인들의 외모 평가 글을 아무렇지도 않게 읽고, 어쩌다 댓글을 달고, 일반인들의 얼펑 글을 보면서 나는 어떻지. 내 외모는 어떨까를 생각했다.

이효리 배꼽 성형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실이란 듯 치부하고, (사실이 아니다 - 지금 보면 너무나 웃기고 경악스럽다), 특정 소속사 출신은 모두 드림카 (드림성형외과)를 탄다고 이야기를 하며, 각종 성형수술 정보를 공유하곤 했다. 나는 성형을 했다는 누군가의 후기를 보며 과하다과 해 하며 '성괴'까지 내버려 둔 사람들을 탓하기도 하고, 성형하지 않은 나에 대한 이상한 자부심을 갖다가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억울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이 양극의 생각이 끊임없이 내 안에 공존했다.

사람들은 눈, 코, 입, 얼굴형, 쇄골, 헤어라인 등등 모든 것을 쪼개서 어디가 어떴고, 어디 병원이 잘하고, 동시에 부작용이 심하다는 블랙리스트 병원을 초성으로 공유하며, 어디를 반드시 성형해야만 한다는 집단 최면에 걸린 것처럼 그 안에서 정보를 나누었다.


나는 그러니까 한동안 미친 듯이 허벅지 사진을 찍어서 나 혼자 보고, 또 카페에 올렸다. 내 다리 어떤가요. 지흡하면 좋을까요 - 정말 놀랍게도 - 지흡하면 어떨까요를 물었다. 그럼 사람들이 댓글을 단다.

‘님 지금 라인이 좋으니까 다이어트를 해봐요. 스트레칭을 하면 좋겠어요.’

‘지금 라인이 좋으니까 라인 유지하면서 지흡하면 딱 좋을 것 같아요. 운동은 라인이 망가져요.’

나는 내가 원하는 대답을 위해 미친 듯 노력했다. 내가 당시 원했던 대답은

'님 타고난 거 이쁘니까, 조금만 신경 쓰면 되겠다. 그건 지흡임.'

마치 본판이 괜찮고 남들 다하는 거니까 괜찮다는 어떤 허락.


내가 원했던 건 허락이었나 보다.


그리고 성형외과 투어를 시작하고, 수술과정을 열심히 찾아봤다. 어디에 구멍을 뚫는지, 수술자국이 보이지는 않는지를 여러 번 체크했다. 그 기다란 막대가 내 몸을 뚫고 들어가서 뭘 빨아들이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고 그래서 자국이 남는 건 아닌지만을 생각했다. 수술이 끝나고 2,000cc를 뺐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해 주시는데 좀 더 뺐어야 하는 건 아닌가라고 했던 것이 가장 처음 든 생각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학자 타입에 신뢰가 가는 유형이었는데, 이 선생님을 선택하기 까지도 수많은 고뇌 했다. 지흡으로 유명한 병원을 찾아서 가격대를 보고, 라인을 어떻게 만들어냈는지를 보고, 막상 지흡을 적게 해서 효과가 없을까 봐 걱정했다. 너무 대형 병원은 가지 않고, 사람이 죽었대 라는 소문이 나는 곳은 가지 않았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수술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선, 그 병원만 아니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상담실장과 상담을 하고, 더 많은 부위의 수술을 권하는 곳은 피했다. 돈을 밝히게 생긴 의사는 탈락시키고, 학자 타입에 거짓말을 할 것 같지 않은 분을 최종으로 선택했다. 병원 블로그에는 연구 결과와 각종 학회에 다녀온 후기를 올린 분이었다. 너무 저렴하면 왠지 못하는 곳 아닐까 싶어서 가지 않았다. 어떤 안전하고 실력이 있을 것 같은 가격 선에서 - 제일 비싼 가격 대의 80% 전후의 선에서 -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그러니까 지금 보면, 얼마나 나는 두려웠을까.

사실은 진짜 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닐까.


꽤나 큰돈이었다. 아마 퇴직금이었던가. 무섭지만 또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했을 거다. 내 주변엔 없지만 인터넷에선 온갖 성공 후기가 올라왔고, 모든 연예인들이 하고 있다고 했고, 병원에서는 인자한 의사 선생님이 그냥 이건 한숨 자면 되는 거라고 했다. 게다가, 지흡은 ‘사치품’이었다. 돈이 없으니까 운동을 하고, 셀프 마사지를 하는 것이라고, 지흡 너무 부럽다고, 당연히 돈이 있으면 성형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2010년 전후의 내가 살던 인터넷 세상의 분위기는 그랬다.

수술 후 내 결정에 대한 뿌듯함이 있었다. 나의 허벅지 안쪽은 더 이상 쓸리지 않았고, 쇼트팬츠를 입었을 때 허벅지 라인이 옷을 뚫을 듯 튀어나오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짧은 핫팬츠에 쪼리를 신었다. 강남역 횡단보도에서 산뜻하게 걷는 나의 모습에 ‘미녀는 괴로워'의 김아중이 된 기분이었다. 스키니 팬츠를 사서 입고선 평소엔 가지도 않던 청담 클럽에 가서 소녀시대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던 것 같다. 힙합 동아리를 했던 친구 공연에 놀러 갔던 날엔 남성들이 내게 친절한 것만 같았다.

모든 건 허벅지가 얇아진 덕이었다. 사실 그렇게 까지 불친절한 적도 없었지만, 갑자기 온 세상이 내게 친절한 것만 같아 그저 좋았다. 그럴 때마다, 알통 박힌 두꺼운 종아리와 작은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알통 근육 제거 수술을 하면 되니까, 또 허벅지 지방은 굉장히 질 좋은 지방이라 가슴 수술에 사용할 수 있다고, 6개월이었나 보관할 거니까 언제든지 오라고 상담실장님의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뿌듯함은 곧 후회로 변한다.

허벅지에 가로로 긴 줄이 생기기 시작했으니까. 흔히 말하는 바나나 모양의 작은 부작용인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리고 지금 와서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원래 있던 지방이 갑자기 빠져나갔으니, 당연히 그 자리만큼 빈 공간이 생기고, 그래서 살이 가로로 접히게 되는 건데, 피부 모양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흉하다.

후회가 밀려온다.

나는 왜 했지? 여기서 잘못한 거 아닐까? 지흡을 과하게 하면 바나나 부작용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서. 미친 듯 후회스럽고 모든 것이 저주스러웠다. 그중 가장 저주스러운 건 이런 결정을 한 나 자신이었다.

피부가 곪을까 봐 무서웠다. 자국이 계속 갈까 봐 무서웠다. 피부가 괴사 할까 봐 무서웠다. 엄마가 알아챌까 봐 무서웠다. 보정속옷을 저렴한 걸 입으면 피부가 처질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지금 뭔가 라인이 울퉁불퉁한데 이게 계속될까 봐 무서웠다. 실핏줄 터진 피부가 무서웠다. 무릎 바로 위에 살이 처지고 접히는 것이 흉해서 보기 싫었고, 허벅지와 엉덩이 모든 것이 흘러내릴 것 같아서 무서웠다.


갑자기 각종 부작용이 보였다. 그전에 도 분명 읽었을 모든 것들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누군가는 피부가 괴사 했고, 피부가 흘러내렸으며, 다리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들에 대한 것. 계속 출혈이 있고, 생리가 멈췄다는 이야기.

갑자기 이 모든 것이 내 일 같았다. 이 결정을 한 내가 한심하고 어리석었고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니까, 내가 그런 거니까. 그 누구도 내게 강요하진 않았다. 그냥 내가 오롯이 결정했을 뿐이기에 나 스스로가 너무 싫었고, 싫었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고, 나는 엄마를 닮아 엉덩이와 허벅지가 이모양이지 했던 다시 그 생각을 반복하며, 제일 쉽지만 괴로운 방법, 나를 원망했다.


이때의 결정은 14년이 흐른 지금의 나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갑가지 내 허벅지의 지방이 두둘두둘 지방이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을 때, 엉덩이에 힙딥이 생겼을 때, 허벅지 살이 잘 안 찌는 대신, 뱃살과 팔뚝 살이 찔 때, 갑자기 트렌드가 바뀌고 허벅지와 엉덩이 지방의 중요성이 높아지더니, 그런 엉덩이가 섹시한 엉덩이라는 얘기를 할 때, 필라테스라는 운동을 처음 하면서 결국 운동을 해야 하는구나를 깨달았을 때, 갑자기 지흡을 하고선 좋아하고 괴로워했던 그 경험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2,000cc의 지방이 담긴 유리병의 모습이 생생하다. 심지어 이게 순수 지방인지도 모르는, 그러니까 내 몸에서 지방과 피, 뭔가를 포함한 2 리터를 뽑아내서 담아둔 유리병.


생각해 보면 위험하고도 위험한 수술이다. 나는 이때의 무서움으로 여전히 '제일 위험한 성형수술', '부작용이 높은 성형수술' 같은 글은 보지 않는데, 항상 지흡이, 내가 선택한 그 성형수술이 얼마나 위험한지 구체적으로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글을 보면, '다행히 살았구나'라는 안도가 아닌, '아 난 왜 이런 수술을 했지.' 하는 자괴감. 나를 탓하고, 나의 선택을 탓하고, 내가 한 선택이 하나같이 별로였다고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런 글을 보지 않는다.


사실 나는 그때 나를 들여다봤어야 했다.

사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샤워를 하고, 나가서 산책을 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었어도 좋었을 것이다.

혹은 지금처럼 꾸준히 상담을 받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기나 했을까.

강유미가 양악수술을 한 게 2011년이었으니, 그 당시의 분위기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나는 사실 그 박스를 나왔어야 했다. 연예인의 몸을 비교하고, 다른 사람의 성형수술 후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냉철하게 바라봤어야 했지만, 당시 내겐 그런 힘이 없었다.

원인을 사회로 지목하는 사람이 잘못된 것이라고, 그들의 노력과 능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그들의 열등감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회의 문제라고도 생각했다. 나는 그 원인을 사회에 두기도, 내게 두는 시간을 꽤나 오래 보냈다. 사회의 비교와 외모를 미친 듯이 울부짖는 사회에서 너무나 착하고, 또 동시에 우월감과 패배의식을 동시에 가진 채, 내 안을 보지는 못하고, 계속 바깥만 보며 나를 극한의 비교에 몰아넣었던 시간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만큼, 나를 사랑할 권리도 있었을 텐데. 왜 나는 나를 오롯이 좋아하지 못했을까.


나는 무언가에 허락을 구하고 싶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곤 했다.

'나를 좋아해도 될까?'

'음, 물론 너 나쁘지 않은데, 네가 널 정말 좋아하려면 우선 다리가 예뻐야 할 것 같아.'


내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조차 오래 걸렸다.


내가 가졌던 아름다운 엉덩이와 두툼한 허벅지를 생각한다. 지금이라면 그때의 결정을 했을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365 MC 광고가 나오고, 지방흡입 수술과 각종 성형 광고가 여전히 신사동에 붙어있고, 성형을 내세우는 사업이 당연스레 성공하는 세상. 14년 전 그 커뮤니티에서는 이제 허벅지 55 센티 넘는 것이 복이다라는 글이 올라오는 세상. 그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다. 운동을 하고, 건강을 말하고, 몸의 기능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노 단위로 촘촘히 평가하고, 비교하는 이 뒤죽박죽 세상에서 여전히 누군가는, 그리고 나는, 그때의 나와 똑같은 결정을 얼마든지 내렸겠지.


누군가의 성형 성공 후기를 보면서 내가 관리를 못하기 때문이구나 하는 자책에 휩싸이고, 그렇게 긴 - 시간이 흘러서 성형을 했는데 그걸 후회하는 것이 더 쪽팔리고 부끄러워하는 나. 게다가 이젠 심지어 성형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조차 없어진 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내 손으로 망쳐버린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건 없다. 성형 안 한 자부심 아니면, 성형 한 자부심 둘 중 어디에도 서있을 수 없다.


하지만 진짜 웃기지. 그 어디에도 서있을 필요가 없는데 그냥 나는 나일뿐인데 말이다.


"

눈이 맘에 안 들어 눈을 했어?

코가 맘에 안 들어 코도 했어?

그래서 그게 뭐 그래서

넌 그대로 예뻐

생각한 거랑 달라?

그래도 예뻐

"

- 최삼 Beautiful


그 모든 선택과 그 결과 모두가 나이고, 시간이 이렇게 흘러서 직면하게 되고 이것을 글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의 박스 안에서 생각하지 않는 법을 이제야 조금 터득하고, 그 모든 결정을 한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므로, 갑자기 친구에게 고백했고, 이렇게 그 시기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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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