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녀는 아닙니다만, 이제는 상관없습니다

탈코르셋이 없던 시절

by 오름달

“은찬아, 너 이런 것도 사먹니? 너도 된장녀니?”

“아 모예요. 그냥 물이예요. 저 된장녀 아니거든요.”

왜저래. 하고서는 페리에 병 뚜껑을 돌려 열었다. 그리고 나는 ‘된장녀 같은게’ 아니라고 정확히 말했다.

커피프린스 1호점이 인기리에 방영되던 시기 나의 별명은 은찬이었는데, 사무실 막내인 내 자리가 정수기와 복사기 근처 맨 끝이었기에 오며가며 우리 층 선배님들의 방앗간이 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지라, 나는 그 자리가 좋았고, 작은 초콜릿이나 캔디를 두고선 나눠먹기도 했던 귀여운 꼬마 사원 시절이었다. 게다가 은찬 캐릭터처럼 꽤나 씩씩하고 털털하기도 했으니 어찌보면 어울리는 별명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그 털털함을 자랑스러워 하기도 했다. 그냥 순수하게 좋아했으면 좋았을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여성스러운 여자여자인 애들' 이랑은 다르다고 굳이 급을 나누며 열등감을 자존감인척 둔갑시켰다.


선릉역에서 나와 회사로 가는 길에는 스타벅스가 있었고, 나는 가끔 스벅에 들려 탄산수를 한병 사들고 올라왔는데, 이건 당시 나의 허영이었다. (허영이 세상을 더 넓혀주기도 하기에 허영 자체가 무조건 나쁠리는 없음 주의) 나는 탄산수를 마시고 싶었다기 보다, 스타벅스에 가서 초록색 병에 든 음료수를 (페리에가 스타벅스에만 있던 시절) 사오는 것에 특별함과 우열감을 느꼈을거다. 그리고 어느 날 부턴가, 미디어에서는 스타벅스 커피와 명품백을 든 2030대 여성을 '된장녀'라고 말하며, 비하했다. 그리고 그 또래인 나는 그 말 자체에 분노하기 보다, 나는 난 명품백이 없잖아, 나는 된장은 아니지. 하면서 선을 긋고선, 스타벅스에 가던 작은 허영을 검열했다.

프레임 안에 갇혀버린 자신은 얼마나 힘이 없는가.


된장녀가 되고 싶진 않았지만, 귀티를 갖고 싶었고, 훈녀가 되고 싶었다. 귀티라는 것이 그니까 귀한 티가 난다는 건데, 부자인척 하는게 아니라 타고나기를 부자로 타고난 어떤, 자랑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뿜어져나오는 어떤 부유한 티를 말했다. 진짜 부자들은 여튼 티를 내지 않으니까 그건 아주 자연스럽게 따라 오는 것이었을 텐데, 그 귀티의 핵심은 꾸밈과 관계없이 타고난 어떤 다양한 것을 뜻했고, 내가 보기에 우리 회사에는 그런 여성들이 많았다. 훈녀도 마찬가지의 논리이다. 자연스럽게 예쁜 것 말이다.


예쁘고 화려하게 생긴 동기 M 은 언제나 빛나는 피부와 아름답게 구불치는 머리, 그리고 반짝이는 손톱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손톱은 다양한 색으로 반짝였는데, 사실 꾸밈에 큰 관심없던 나는 그게 불편해보였다. 하지만 매주 새로운 색으로 반짝이는 손톱과 고운 손등, 팔찌가 빛나는 가녀린 손목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M을 보면 볼수록, 나도 저런 손을, 나도 저런 화려함을, 그리고 그런 예쁨을, 그리고 어떤 귀티를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M 에게 많은 것을 물어봤고 따라했고, 또 그렇게 하면 그 예쁨을 얻은 만큼! 인기도 많아질 것만 같았다.


물어보니 M은 1-2주에 한번씩 네일케어를 받으러 간다고 했다. (물어봤더니 안알려주더라, 원래 그런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같은 일은 없음) 나는 당시에 네일케어에 돈을 쓰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내가 그런 예쁨과 귀티를 열망할 수록, 내가 네일케어에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한다는 생각이 부끄러웠다. 그러니까 난 돈이 없어서, 돈을 쓸 줄 몰라서, 아까워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실제로는 너도 하고 싶지 않아? 너도 그렇게 부유한 삶을 원하지 않니? 하면서 그렇게 네일케어를 주기적으로 갔다. 정기 쿠폰을 끊고, 새로 나온 브랜드의 컬러를 발라보고, 피라핀 케어를 받고, 큐빅을 붙이고 하는 많은 것들을 했지만, 그러니까 그건 진짜 내가 원해서 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소비는 셀수없이 많은데, 특정 피부과를 다니고, 고급 가운을 툭 걸쳐서 케어 받을 수 있는 에스테틱을 끊고, 1:1 요가와 스파를 코스로 하는 샵을 다니기도 했다.

나는 뭘 그렇게 욕망했던 것일까. 실제로 내가 욕망했던 거라면 만족하기라도 했을텐데 그 모든 것을 하고 나서는 '더 비싼 걸 했었어야 했다' 라고 생각하고선 뭔가 또 우울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기쁘거나 만족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선, 내 지금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다가 아니라, 아 그동안 이런걸 마음편히 즐기지 못하는 가정환경을 불러오면서! 나의 과거와 배경을 탓했다. 세상에나, 뭘 그렇게 까지도 나를 불쌍하게 여기고 싶었을까.


“된장녀는 2000년대 중후반 무렵 유행한 유행어로, 허영심(虛榮心) 때문에 자신의 재산이나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 사치(奢侈)를 일삼는 여성들이 특히, 자신의 경제 활동으로 얻어진 소득이 아닌 다른 사람(이성, 가족 등)에 기대어 의존적 과소비(過消費)를 하는 행태를 비하하는 단어이다.

이 말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의존적 과소비를 하는 일부 여성들을 비판하는 나름 합리성을 갖춘 단어였으나, 이후 의미가 처음의 개념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확대 재생산되어, 된장녀란 단어가 가장 크게 유행한 2000년대 중후반기에는 주로 남성들이 생각하는 모든 부정적인 여성상들을 광범위하게 비하하는 말로 변질되어 쓰이기도 했다.” - 위키피디아


그러니까 사실 처음 나왔던 그 된장녀라는 말이 나도 어느 정도 맞을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난 아니야! 라고 선을 그었다. 저런 양상에 여성에게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저래 하고선 비웃고서는 나는 된장녀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왜 여성에게만 그러냐고 된장남은 없냐고 말하는 글들에 좋아요를 눌렀다.


사실 내겐 이 말로 낙인 찍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키 180cm 가 안되면 루저라는 발언을 한 여성분이 사회적으로 매장 당한 일이 있었다. 온라인 상에서는 그분의 신상을 퍼다나르고 그 말을 비판하며 그녀를 사냥했다. 이미 그전에 수많은 남성들이 별의별 말로 여성들을 불렀어도 그냥 개그로 넘겼으면서, 그렇게 온 나라가 시끄럽게,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듯 사냥했다. 그렇게 나도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된장녀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고 생활 속에서 사용했지만, 그 단어로 낙인 찍히는 순간, 이 사회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는 너무 잘 알았다. 그리고 동시에 된장녀를 염원하는 - 귀티 말이다, 훈녀 말이다, 성별 관계없이 이를 선호하던 사회분위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웃으면서’ 말했겠지. 무슨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너는 세상을 도대체 어떻게 보는거냐고, 이 세상이 가진 잘못된 여성상에 의문을 갖고 더 크게 목소리를 내는 대신에, 나 스스로를 검열했다. 커뮤니티에서 글을 쓰며 물어봤다. 내가 원하는 것인지를 확인해보려 하지 않고, 사회에서 보기에 이거 너무 된장녀 같은 건 아닐까 라고 검열했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듯, 된장녀란 말이 그저 “남성들이 생각하는 모든 부정적인 여성상들을 광범위하게 비하하는 말”로 쓰였기 때문에, 그저 남성들이 싫어하는 여성이 되지 않기 위한 검열을 나 스스로 끊임없이 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동시에,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을 읽거나 짧은 글을 읽었다. 그렇게 한편으로는 이 부당함과 사회에 분노를 느끼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발적으로(!) 나 자신을 기꺼이 남성들의 눈으로 검열했다.


그 된장녀 프레임이란 굉장히 기괴하고 이상한 것는데, 어떤 선택을 해도 결국 자기 검열만이 남고, 진짜 나의 욕망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나는 원래 그래, 나는 이런걸 좋아해 라고 진심으로 인정하기 전까지는, 정말 내가 원래 그래? 내가 이걸 좋아하는게 맞아? 이런걸 좋아하면 안되는것아닌가? 이건 너무 허영이 아닌가? 끊임없이 돌고돌며 검열하는 골짜기에 빠진다. 당연히 그 시기엔 사치와 허영을 기꺼이 부리던 젊음이었기 때문에, 더욱이 쉽게 그랬을 거다. 사실, 그게 명품이든 뭐든, 내가 내 소득 수준을 떠나 내 스스로 책임 질 수 있는 좋아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욕망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물론 나의 재정상태에 맞는 건강한 소비는 중요하다 모두에게)


그런 이상한 과정 때문에 나는 한동안 꾸미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누군가가 화장을 하거나, 스킨케어를 받거나, 혹은 어떤 기준에서 뭔가를 하면 아 저건 된장녀다,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누군가 진짜 화장하는걸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 말 자체를 의심하기도 했다. 당시엔 어설프게 페미니즘을 알고 내 마음대로 해석해서 이분법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남성 vs 여성 구도로 보는 건데, 남성들은 안그러잖아. 남성들은 안그러는데 왜 우리 여성들은 꼭 왜 그래야만해 하는 방식으로 작동되다 보니, 남성들이 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여성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기도 쉬웠다. (물론 이렇게 성을 무조건 두개로 보던 것도 있고요, 많은 것이 지금과 달랐다)


게다가, 나 자체가 꾸밈이나 셀프케어를 잘 못하기도하고, 무덤덤한 성향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런 소비를 된장녀 분위기와 맞물려 내 딴엔 더 쉽게 비난했을거다. 그러다보니, 누군가 자신을 위해 하는 꾸밈도, 남들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저러나봐 하는 식으로 비하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렇게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뭔가를 하지 않는! 마치 어떤 사회적 속박을 벗어난 것 같은! 나의 털털함이 우쭐함이 되기도 했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더욱 고도화되어 나를 옭아맨것인데 말이지. 왜냐면 그러면서 동시에 털털한데 정말 예쁜사람, 털털하면서 세심한 사람, 같은 무슨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이상한 굴레에서 벗어나올줄을 몰랐다. 털털하다와 예쁘다 라는 것도 그저 하나의 기준으로만, 이분법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지모...


26살즘 이었겠지, 이런 생각을 하루에도 열두번씩 더하던 내가, 당시에 나와 그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던 온라인 여초 커뮤니티의 여성들이 가엽고도 안쓰럽다.


그 엄청난 에너지를 좀 더 우리의 다른 부분을 바라봐주는데 썼으면 좋았을테데. 좀더 우리의 욕망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는데 썼으면 좋았을텐데. 주변을 살피는 성향을 좀 더 주변의 사람들을 보듬는데 사용했으면 좋았을텐데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도 당시에는 불가능했고, 이런 과정이 있었으니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중이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어떤 당연히 아쉬움은 있지만 다행히 큰 후회는 없다. 큰 후회는 지방흡입...


여하튼. 저는 그래서요.

된장녀여도 상관없습니다.

라고 지금은 말할 수 있다.

탈코르셋이 있기 전 세상이었다.

된장녀라는 말은 쓰면 안되는 세상이 와서도 너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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