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비효과>를 보고
영화 <나비효과>를 보셨는지?
무려 16년 전, 당대 꽃미남 톱스타였던 애시튼 커처가 주연했고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영화다. 꽃미남과 타임슬립이라니, <어바웃 타임> 뺨치는 로맨스물일 것 같지만 이 영화는 스릴러다. 시간을 거슬러 무언가를 바꾸는 족족 현재에 나타나는 변화는 다리 후들거리게 무섭고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가끔씩 멍하니 되돌아보곤 하는 내 인생의 주요 순간들이 있다.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조금 더 잘(어떤 의미에서든지)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자조 섞인 넋두리, 또는 시간 남아도는 소리다.
대학교 1학년 때 휴학하지 않았더라면,
교수님 말씀을 듣고 언론고시반에 들어갔더라면,
시험이 겹쳤던 그 날, 지하철역에서 방향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헤어졌던 남자 친구를 다시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떤 회상은 무의미한 가정이기도 하나, 개중에는 나름 유의미한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다. 그 갈림길에서 다른 곳을 택했더라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달라졌을까? 늘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하고 누구보다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어쩔 수 없이 종종 과거에 사로잡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되감고 또 되감고는 했다. 하지만 장담컨대 <나비효과>를 본 오늘부터는 아마도 '함부로' 이렇게 과거를 가정하지 못하리라.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우리는 지극히 사소한 것들과 상호 영향을 주고받고, 그로 인해 무언가를 선택하고, 삶을 이어간다. 그 사소한 것들은 순대국밥 먹다가 친구가 던진 말 한마디, 길 가다 보게 된 웬 희한한 장면, 미용실에서 킬링타임용으로 읽던 잡지 속 문구일 수도 있다. 이들은 긴 시간 뇌리에 박혀 생각과 신념을 미세 조종하고, 결정적인 순간 영향을 미친다. 이 모든 점들이 이어진 선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만일 위 상황에서 내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단순히 내가 원하는 대로 결과 값이 산출될 것인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선택은 하나의 나비효과가 되어 현재를, 10년 후 20년 후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그 모습이 지금과 비교해 우월할 것인가는 영화 속 주인공 에반이 되어보기 전까진 알 수 없겠지. 지금의 나 역시 오래전 내린 선택들의 나비효과일 것이고,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뭐 좀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 이보다도 형편없었을지 모를 일이다.
영화 <나비효과>는 의외로 매우 현실적인 깨달음을 줬다. 잘(어떤 의미에서든지) 살고 있다가도 달갑지 않게 떠올라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내 과거 선택들에 대해 '그거 하나 바꾼다고 모든 게 완벽해질 것 같냐?'라는 생각도 못한 반문을 던져줬다고 해야 할까? 그 변수 하나로 내가 갈망했던 대로 현실을 바꿀 수 없었을 것이란 생각에 씁쓸한 위안도 되는 한편, 지금의 내 1분 1초가 미래에 만들어낼 나비효과를 생각하니 막중한 책임감이 들기도 한다. (아,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선택이 주변인의 미래까지도 쥐고 흔든다)
참 잘 봤다 이 영화!
내가 바꿀 수 있는 변수는 지금 이 순간이라는 뻔한 결론이지만,
과거에 덜 얽매일 수 있도록 독려(특이한 방식으로)해준 듯하여.
오직 지금의 날갯짓만 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