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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차 Apr 20. 2021

이런 집도 있고, 이렇게 살기도 합니다

나닮집ep.2협소주택세로로

TV를 놓을 자리에 TV를 놓지 않는다면?

인테리어에 관심이 높아지며 이러한 물음표를 던지는 경우가 많다. 그럼 조금 더 나아가서, 아파트가 아니라면? 방 세 개가 아니라면? 모든 방이 한 층에 있지 않다면? 과 같은 물음표는 어떨까. 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사실 괜찮다. 아파트에 가고, TV 자리에 TV를 놓아도 되니까. 다만 물음표를 던져본 이와 그렇지 않은 이는 내적 경험치가 다르다. 전자는 언젠가 마음 속에 그리던 공간을 실현할 확률이 높아진다. 5평짜리 방 4개를 수직으로 쌓은 협소주택 '세로로'는 물음표의 흔적이 가득했다. 




하얀 집. 계단이 많고, 고양이 2마리 꽁띠와 마고가 산다. 와인 전문가인 정아영, 건축가 최민욱 부부도 산다. 남편이 짓고, 아내가 채우고, 둘이 함께 만든 집이다. 집 안을 취향대로 채워가는 경험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집 자체에서부터 취향을 시작하는 경험은 그렇지 않다. 거주할 사람이 직접 건축을 맡는다면 더더욱! '서울 도심에 땅을 사서 집을 짓다니, 여유로운 젊은 부부로세' 라고 생각된다면 '협소주택 세로로'를 검색해보길 추천한다. 여유가 아닌 한계에서 던지기 시작한 물음표가 이렇게 근사한 대안을 만들어냈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집에서 큰 공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모두가 직접 설계한 집에 살 수는 없으니, 현실적으로 '나에게 맞는 공간'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TV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거실에 TV를 놓을 때 안타까워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TV를 예로 들었으나 결국은 각자의 필요나 취향과 상관없이 공간이 채워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특히 거실처럼 집에서 가장 큰 공간이 낭비되지 않고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지면 좋겠다는 것. 아내인 정아영은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5평짜리 주방 겸 거실이 꽉 들어차는 6인용 테이블을 놓았다. 와인 전문가인 만큼 사람들을 초대해 다이닝을 즐기는 공간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와인을 마시고, 작업을 하고, 창 밖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큼직한 이케아 테이블은 이 집에서 가장 사랑하는 가구이자 공간이다. 


"별의별 공간을 경험해 본 게 이런 집을 짓게 된 배경 같아요."


이들 부부는 프랑스에서 만났다. 또 각자 타지에서 유학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공간과 거주 문화를 경험하더니, 결국 신혼집으로 세로로를 지어냈다. 정아영은 파리에서 건물 꼭대기층인 '하녀방'에도 살아봤는데, 우리로 치면 다락방, 옥탑방 같은 공간이라고 한다. 계단도 많고 천장도 낮지만 나름의 느낌이 있다고. 파리에서 방문했던 한 친구의 집은 아주 작은 원룸을 개조해 1층은 식당, 2층은 방, 3층은 화장실로 분리한 공간이었다. 또 영국에서는 일반 가정집이 3층 주택인 경우가 많아 70~80대 노인들이 매일같이 계단 오르내리는 걸 보며 지냈다. 이러한 경험들이 모였으니, 세로로가 탄생한 이유가 단박에 이해된다.


세로로는 약 10평짜리 대지에 지어진 협소주택이다. 집 안의 각 층은 5평 남짓. 어떻게 그 작은 땅에 집 지을 생각을 했을까 싶지만, 오히려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더욱 창의적인 공간이 만들어졌다. 실내 공간이 좁은 대신 큰 창을 만들어 확장된 느낌을 냈는데, 작은 숲과 마주하고 있어 어디에서나 초록 뷰를 감상할 수 있다. 자연에 둘러싸여 살다 보니 시간이 흐르는 것을 매일 느끼게 된다고. "어제는 꽃이 없었는데 오늘은 꽃봉오리가 생긴 것을 알아차리고, 잎사귀 색깔이 매일 달라지는 것을 보며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 큰 축복 같아요." 계단이 많다는 점엔 일장일단이 있겠으나, 세상에서 가장 큰 캣타워가 되었으니 꽁띠와 마고에게는 부족함이 없다. 


"물건을 구입할 땐 무조건 자리를 확보하고 사야 합니다."


저희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고 맥시멀리스트거든요, 라는 말이 매우 의외였다. 콤팩트한 집에 살지만 무조건 비우기보다는 필요한 물건들을 야무지게 계산해 넣었다. 항상 치수를 정확히 재서 어디에 들어갈 것인지 생각하고 물건을 구입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공간은 물건들로 꽉 차 버릴 테니 말이다. 비단 작은 집에만 해당하는 기준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물건을 들일 때, 그것의 자리와 역할을 사려 깊게 마련하는 것은 그 물건에게도 공간에게도 예의가 아닐까. 일단 사고 보자며 구입한 것들이 제 자리를 갖지 못하고 방치되는 것은, 우리가 사려 깊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물건은 제 역할을 못 하고 공간은 물건으로 넘쳐나는 불상사를 피하려면, 우선 자리부터 확보해보자.


삶에 맞춘 집 vs. 집에 맞춘 삶


보통은 사는 집에 따라 생활 패턴이 정해지고 습관이 깃든다. 반대로 생활 패턴과 습관에 맞게 집을 짓고 산다면 어떨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 같지만, 실제로 세로로를 보고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집을 만들거나 집 짓기에 대한 두려움을 낮추게 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저희 집이 여러 매체에 소개된 후, '아!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깨닫고 용기를 내어 집을 지어내시는 분들을 보게 돼요. 영감을 얻게 돼서 고맙다고 말씀하실 때 저희 부부는 가장 뿌듯함을 느낍니다." 


세로로 다음 집은 어디일까. 남편이자 세로로를 건축한 최민욱은 "더 작은 집을 짓고 싶다."라고 하지만 정아영은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언젠가는 꼭 중정이 있는 한옥에 살고 싶다는 소망도 있다. 어떤 집에 살든, 앞으로도 이들 부부는 이렇게 말할 것만 같다. 


이런 집도 있고, 이렇게 살기도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v-WIYKz8W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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