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gedy>-D. Margeritta를 보고.
<Tragedy>에서 모든 인물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 상태로 등장한다. 그리고 계속 걷는다. 30분이 넘도록 계속 걷기만 한다.
그리고 나는 그 긴 시간동안 놀람게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전혀 선정적이지 않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판화과 수업에서 누드 크로키를 했던 생각이 난다. 수업을 듣기 전에는 솔직히 다소 긴장했었다. 보통 초등학교 이후로는 가족 앞에서도 옷을 홀딱 벗는 일은 잘 없지 않나. ‘같이 사우나에 가는 사이’도 사우나에서 알몸을 타인에게 보이려면 상대방에 대한 친밀도가 충분히 쌓여야 하기 때문에, 충분히 믿고 신뢰하는 사이임을 의미하는 표현으로서 이용되지 않나.
하지만 이 공연의 무용수들과 누드 크로키의 모델들은 관객들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데도 전혀 숨김없이 자신들의 몸을 드러낸다. 사회의 암묵적인, 그러나 강력한 규범을 정면으로 부정한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눈길을 끌긴 하겠으나 그 이상으로 몸을 남용하지는 않는다. 한 번 눈길을 끌고 나면 그 이후부터는 그저 예술일 뿐이다. 누드 크로키에서는 화가들에게 그려야 하는 대상일 뿐이고 <Tragedy>에서는 비극을 암시하는 방법으로만 사용한다. 그저 옷가지의 방해를 받지 않고 메시지를 표현하는 움직이는 덩어리들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날것 그대로의 몸에 대해 숨겨야 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술에서 몸은 그저 표현의 도구일 뿐이다. 몸을 이용한 예술은 금기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금기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