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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일 Sep 13. 2023

기독교의 수호자? 유능한 지휘관?

역사 이야기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류 고대사 중심의 하나였던 이탈리아반도는 그들이 야만족으로 배척하던 게르만족 국가에 의해 분할됩니다. 527년부터 565까지 38년 동안 제위한 동로마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562년에 이탈리아반도를 완전히 회복하며 옛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합니다. 그러나 전쟁으로 고갈된 재정으로 인해 유스티니아누스 1세 이후 동로마제국은 점진적으로 쇠락합니다. 

    

661년 다마스쿠스에서 창업한 우마이야왕조는 짧은 기간에 세력을 확장합니다. 아프리카 북부를 거쳐 711년에는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서고트족이 지배하고 있던 이베리아반도로 진출합니다. 역대 이슬람제국 중 가장 넓은 지역을 차지한 우마이야왕조는 지중해를 이슬람의 바다로 만듭니다. 로마의 패권이 사라진 지중해 연안은 이슬람 해적에 의해 약탈과 납치가 성행합니다. 지중해 해안가에 남아있는 ‘사라센의 탑’은 이슬람 해적에 대응하기 위한 이 시대의 유물입니다. ‘바르바리 해적’이라고도 불리는 이슬람 해적은 1830년 프랑스에 의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이어집니다.

     

이베리아반도를 차지한 우마이야왕조의 이슬람세력은 720년경부터 지금의 스페인과 프랑스의 경계인 피레네산맥을 넘어 프랑크 왕국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732년, 이슬람의 대군이 보르도를 유린하고 프랑스 중서부에 있는 푸아티에로 진격해 프랑크군과 마주합니다. 프랑크 왕국의 궁재인 카를 마르텔이 프랑크군을 이끌고 투르-푸아티에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이슬람세력을 피레네산맥 너머로 몰아냅니다. 이후에도 이슬람세력은 프랑크 남부를 유린하다 759년 피핀 3세에 의해 프랑크에서 완전히 쫓겨납니다.

     

750년 우마이야 왕조는 멸망하지만, 이베리아반도는 여전히 이슬람세력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기독교세력의 입장에서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세력을 몰아내려는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을 이슬람세력이 북아프리카로 떠나는 1492년까지 782년 동안 지속합니다.

     

프랑크의 카롤링거 왕조를 개창하는 피핀 3세의 부친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시조 카롤루스 대제의 조부인 카를 마르텔은 투르-푸아티에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이슬람으로부터 서유럽을 지킨 수호자가 됩니다. 카를 마르텔은 무능했던 메로빙거 왕조를 대체해 새로운 왕조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카롤링거 왕조는 아들 피핀 3세에 의해 실현됩니다.   

  

기독교의 수호자 카를 마르텔, 투르-푸아티에 전투가 기독교적 가치에 기반한 것인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합니다. 단지 프랑크 영토의 침략자를 응징한 것뿐이지 종교적 가치와는 무관하므로 과한 평가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성과에 대한 평가가 언제나 의도대로만 되지는 않습니다. 기대 이상의 평가도 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평가도 있지요. 공기업에서 1년을 보낸 딸아이가 업무역량과 관련해 딜레마에 빠졌다고 합니다. 스물다섯이라는 나이와 1년의 경력으로 무얼 기대하는 걸까요? 좋게 다독였지만, 수많은 강점에도 불구하고 조급증은 MZ의 부정적 특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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