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변방 오랑캐로 취급받던 진나라가 상앙의 개혁으로 전국시대 강대국이 됩니다. 서쪽 진나라가 동진하자 여섯 나라는 합종책으로 맞섭니다. 전국시대 통일을 꿈꾸던 진나라는 연횡책과 이간책으로 여섯 나라를 각개 격파합니다. 기원전 260년, 장평에서 진나라와 조나라의 대군이 마주합니다. ‘두려운 것은 오직 조괄뿐’이라는 진나라 말에 속은 조나라는 수성으로 반전을 노리던 백전노장 염파를 해임하고 백면서생 조괄로 대체합니다. 장평대전은 진나라 백전노장 백기에게 농락당한 조나라의 40여만 대군이 포로로 잡혀 생매장당하는 참극으로 끝납니다.
합종연횡시대에 각 나라는 맹약의 증거로 볼모를 주고받습니다. 진나라 왕족 출신인 영이인은 조나라에서 볼모를 살고 있습니다. 진나라 소양왕이 조부이고 태자 안국군이 부친입니다. 그러나 총애 잃은 후궁의 서출 자식인데다 많은 이복형제가 있어 영이인의 존재감은 미미했고 볼모로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장사로 큰 부를 이룬 여불위란 사람이 있습니다. 장사를 위해 조나라 도읍 한단에 들렀다가 영이인을 만나게 된 여불위는 천하를 얻기 위한 장사를 시작합니다. 영이인이 애첩 조희를 원하자 조희를 보냅니다. 1년이 지나 영이인과 조희 사이에서 훗날 시황제가 되는 영정이 태어납니다. 영정이 영이인과 여불위 중 누구의 자식인가는 지금도 논란거리입니다. 사기에는 여불위의 자식이라고 단정짓고 있습니다. 안국군의 정실인 화양부인은 자식이 없습니다. 여불위가 그 틈새를 노립니다. 여불위는 재물을 풀어 영이인을 화양부인의 양자로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기원전 257년, 진나라는 장평대전의 패배로 국력을 상실한 조나라를 공격합니다. 분노한 조나라 효성왕이 볼모인 영이인을 죽이려 합니다. 여불위가 뇌물을 써 영이인을 진나라로 빼돌리고 조희와 영정을 숨겨줍니다. 기원전 251년, 소양왕이 죽고 안국군이 왕위에 올라 효문왕이 됩니다. 영이인은 태자가 되고 조희와 영정도 진나라로 돌아옵니다.
왕위에 오른 효문왕이 3일 만에 죽고 영이인이 왕위를 이어 장양왕이 됩니다. 영정이 태자가 되고 조희는 왕후가 되며 여불위는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릅니다. 기원전 249년, 여불위는 상나라를 이은 종실이었으나 포사의 화로 힘을 잃고 명목상의 종실로만 남아있던 주나라의 마지막 숨통을 끊습니다. 800년 이어온 왕국, 주나라는 역사가 됩니다.
기원전 247년, 장양왕이 재위 3년에 죽고 영정이 13세의 나이에 왕위를 잇습니다. 여불위가 섭정이 됩니다. 남편 잃은 조희가 옛 연인 여불위를 찾습니다. 여불위는 조희와 잠자리를 함께하면서도 성장하는 왕이 신경 쓰입니다. 여불위는 성기능이 뛰어난 노애라는 자를 발탁해 조희에게 보냅니다. 조희와 노애 사이에 아이 둘이 태어납니다. 두 사람은 자신의 아이들이 진나라 왕이 되기를 원합니다. 음모를 꾸미다 발각되고 노애가 반란을 일으키지만 쉽게 진압됩니다. 두 아이를 포함해 노애의 삼족이 몰살당합니다.
여불위의 세력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진왕이 노애를 빌미로 여불위를 파면하고 중앙권력으로의 접근을 차단합니다. 복귀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여불위는 자살로 삶을 마감합니다. 왕이 될 가능성 일도 없던 영이인을 왕으로 만든 여불위는 아들이거나 혹은 아들 같은 진왕의 핍박을 받아 최후를 맞습니다. 역사상 가장 극적인 킹메이커 여불위는 일개 상인에서 전국시대 초강대국 진나라의 승상이 되는 영애를 누립니다. 그의 죽음이 다소 비극적이었다 할지라도 한 번쯤은 꿈꿔볼 킹메이커의 역사일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