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세일 May 15. 2024

신의는 개나 줄까요?

역사 이야기

기원전 1046년, 상나라를 멸하고 중국의 서쪽인 호경(현재 시안시 인근)에서 창업한 주나라는 기원전 256년 훗날 전국시대를 통일하는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할 때까지 800년 가까이 존속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주나라는 기원전 771년 일어난 ‘포사의 화’와 이듬해 견융의 잦은 침략을 피해 320km 동쪽에 있는 낙읍(뤄양시)으로 천도하며 패권을 잃고 상징적인 종실로만 존재하게 됩니다. 천도를 기점으로 이전을 서주, 이후를 동주라 하며 동주는 다시 춘추와 전국으로 나눕니다. 춘추시대는 제후국들이 상징적이나마 종실로서의 주를 인정하던 시기였고 전국시대는 각 나라들이 왕호를 사용하며 진(秦)에 의해 통일될 때까지 각축을 벌인 시기입니다. 춘추시대, 중원의 전통적 강국인 진(晉)나라는 춘추 중반기 이후 신권이 신장해 군주의 권한을 넘어서며 한, 위, 조로 분할됩니다. 이 이야기는 신권이 군권을 넘어서는 과정에 일어난 일입니다. 

    

기원전 574년, 진여공의 정치가 문란하자 난서와 순언이 군사를 일으켜 군주를 죽이고 해외에 있던 주를 데려와 군위에 올립니다. 진도공 주는 나라를 잘 다스려 진나라의 패권을 공고히 합니다. 15년 재임 후 진도공이 죽고 아들 표가 군위에 올라 진평공이 됩니다. 범개가 사적 원한을 갚기 위해 진평공을 부추겨 군주를 시해한 난씨의 죄를 묻게 합니다. 난씨의 종주인 난영은 재물을 풀어 재능 있는 사람들을 우대했기 때문에 난씨에게 충성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진평공이 난씨의 추방령을 내리자 난영은 일족을 이끌고 제나라로 망명합니다. 진평공이 난씨를 따르는 자는 참형에 처한다는 영을 내립니다. 난씨의 가신이었던 신유가 성문을 나서려다 잡힙니다. 진평공이 신유에게 명을 어기고 난씨를 따르려는 이유를 묻습니다. 신유가 답변합니다.  

   

“예법에 따라 3대(三代)에 걸쳐 한 집안을 섬기면 주인을 군주처럼 섬겨야 합니다. 신의 집은 난씨를 3대째 섬기고 있습니다. 지금 주인은 외로운 처지입니다. 주인이 죽으면 군주의 덕에 손상 가는 일입니다. 신이 주인에게 가는 것은 난씨에게 도리를 다하고 군주의 덕에 손상 가는 일을 막기 위함입니다.” 진평공이 신유의 충성을 높이 사 자신을 섬기라고 하자 신유가 말합니다. “3대째 섬긴 난씨는 신의 군주입니다. 목숨을 버릴지언정 군주를 바꾸는 불충을 선례로 남길 순 없습니다.” 진평공이 신유를 난영에게 보냅니다.  

   

신유가 제나라에 있는 난영과 합류합니다. 패권에 뜻이 있던 제장공은 난영을 이용해 진나라를 공격하려 합니다. 먼저 난영이 진나라로 진격하면 제나라도 군사를 동원해 돕겠다고 제안합니다. 귀국을 원했던 난영이 수용합니다. 신유가 난영을 만류합니다. “저는 조국을 버리고 주인께 충성했으니, 주인께서는 진나라에 충성하시길 바랍니다. 백성들이 난씨를 동정하는 것은 군주가 충신인 난씨를 추방했기 때문입니다. 주인께서 진나라를 공격한다면 백성들은 더 이상 난씨를 지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난영이 진군을 강행하자 신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음으로 난영을 말립니다. 끝내 진나라로 진격한 난영은 싸움에 패해 멸족당합니다. 

    

노태우의 재임기간인 1988년, 헌정사상 최초의 청문회인 5공청문회가 열립니다. 전두환은 여론에 밀려 2년여의 백담사 칩거에 들어갑니다. 노태우라면 퇴임 후에도 조종이 가능하리란 계산도 있었겠지만, 전두환 입장에서는 평생 친구이자 자신이 만든 대통령에게 당한 배신(?)이 뼈아팠을 겁니다. 두 사람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법정에 섭니다. 노태우가 옆에 있던 전두환의 손을 잡는 사진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물론 호오의 개념은 아닙니다. 

    

격이나 급은 그에 못 미치지만, 윤석열과 한동훈의 최근 행태를 보며 신유의 옛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이 어떠했는지는 관심이 없어 모르겠지만, 한동훈의 빠른 손절을 보면서 ‘신의(信義)’에 대한 개념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기 대선까지 가는 과정에 둘의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작가의 이전글 세월호, ‘디어 에반 핸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