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이래야 스무 명도 되지 않던 한 벤처회사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사업 초기에 투자된 수십억 원은 R&D와 운영자금으로 대부분 소진되고 회사의 명운이 걸린 벤처캐피털의 40억 투자가 마지막 승인 단계에서 무산되자 메인 아이템이 수익을 창출할 때까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업이 필요했습니다. 중국에서 산업용 오존발생기를 OEM으로 제작해 국내에 판매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사업관계로 알고 지내던 분인데 국내 에이전트를 조건으로 판매해보라는 제안을 여러 차례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국내에 유통되는 다른 제품에 비해 파격적인 가격조건이라 사업성이 충분하다는 판단 하에 여러 차례 검토했던 아이템이었습니다. 양측 대표를 모시고 미팅 후 술을 곁들인 저녁식사 자리에서 칼 세이건이 화제에 올랐습니다. ‘코스모스’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저자에 대한 인지는 없었고 특히 주된 대화였던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은 처음 듣는 책이었습니다. 공대 출신인 두 사람과 달리 비공대 출신이라는 것으로 제 무지를 감추려 했지만, 나중에 인문학 서적에 더 가까운 책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원산에 들어온 외국인 감리교 선교사가 한의원을 하시던 증조부 집에 머무른 게 연이 돼 우리 집안의 기독교 역사는 꽤나 깊고 유구합니다. 아버님 세대까지는 모두 신앙을 유지하는데 어찌 된 건지 우리 세대부터는 모태신앙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모두 비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 또한 종교의 효용성은 인정하면서도 스스로 무신론자임을 자처합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쪽에는 여전한 의구심이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극복할 수 없는 모태신앙의 한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술자리에서의 기억은 수년을 이어오며 몇 년 전 ‘코스모스’를, 그리고 이번에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을 읽게 했습니다.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은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의 신과 종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신의 존재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야 존재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며 읽었습니다. 정말 재미있게는 읽었는데 원하는 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