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가장 미천한 곳에서 태어나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여인이 있습니다. 비천한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가업을 이어 매춘을 해야 했지만, 동로마제국의 황후가 되고 동방정교회의 성인 반열에 오른 여인, 유스티니아누스와 함께 동로마제국의 가장 강력한 시기를 이끌었고, ‘대제’라는 칭호를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여인, 성녀와 악녀라는 극단적 평가를 동시에 받는 여인입니다.
500년(추정)에 태어난 테오도라는 원형경기장의 무희였던 어머니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무대에 오릅니다. 당대의 무희들은 매춘도 해야 했습니다. 뛰어난 미모를 지닌 그녀는 콘스탄티노플의 스타가 됩니다. 스물두 살, 가장 아름다울 나이의 그녀는 유스티누스 황제의 조카이자 양아들인 18년 연상의 유스티니아누스와 만납니다. 그녀의 미모와 지혜에 반한 그는 황제를 졸라 계급 간의 금혼법을 폐지하고 그녀와 결혼합니다. 527년, 황제가 죽고 유스티니아누스가 제위를 이어 황제가 됩니다. 당연히 테오도라는 황후가 됩니다.
황제의 치적 중 하나인 로마법대전에는 테오도라가 만든 여성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성인신매매 금지법, 여성에게 유리한 이혼법, 성폭력 금지법, 이혼 및 재산 소유권에 대한 여성권리 확대하는 이혼법 등입니다. 여성인권신장에 주력했던 황후는 성매매업소를 폐쇄하고 매춘 여성들의 쉼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황후의 진면목은 니카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드러납니다. 532년, 황제의 급진적 개혁과 전제군주화에 반대하는 민중들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황제가 도망가려고 하자 황후가 말합니다. “목숨을 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훗날 살아남은 것이 죽은 것보다 나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황제의 상징인) 자줏빛 옷은 가장 훌륭한 수의입니다.” 황후의 말을 듣고 각성한 황제와 측근들이 3만 명의 민중을 학살하고 반란을 진압합니다.
반란에 대한 잔혹한 진압으로 황후의 인기가 추락합니다. 천재지변마저도 황후의 탓이 됩니다. 황후의 전력은 확대재생산 돼 민중에 회자됩니다. 그러나 황후는 흔들리지 않고 황제의 정치를 지원합니다. 548년, 마흔여덟의 한창나이에 황후가 죽습니다. 이때부터 황제의 정치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테오도라, 자신의 출신을 숨기지 않고 하층민을 포함해 여성을 위한 법률들을 제정함으로써 현대를 제외한 다른 어떤 시대보다 여성의 권위가 보호되는 세상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