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기원전 2000년경부터 기원전 1000년까지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이란고원으로 이주한 아리아인이라 불리는 유목민이 이란인의 조상입니다. 이란이란 국명은 ‘아리아’를 어원으로 합니다. 이란 왕조의 시작은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로 보지만 기원전 8C에서 6C까지 존재하며 이란 역사의 기초를 다진 메디아 왕국도 있습니다. 이란고원에서 시작한 메디아는 신아시리아의 속국이었으나 신바빌로니아와 함께 신아시리아를 멸망시킵니다. 국가 없는 최대 민족인 쿠르드족이 메디아왕국을 자신들의 시조국가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550년, 메디아 남쪽의 속령이었던 파르스에서 키루스 2세가 반란을 일으켜 메디아 왕국을 멸망시키고 아케메네스 왕조를 창업합니다. 페르시아는 ‘파르스’를 어원으로 합니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다리우스 1세 치세 하에 소아시아라고도 부르는 아나톨리아반도까지 영토를 확장합니다. 기원전 500년, 페르시아가 러시아 남부 초원지대의 유목국가인 스키타이와의 전쟁에서 패하자 소아시아 해안지역의 그리스계 도시국가들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반란을 진압한 페르시아는 반란을 지원했던 그리스를 응징하려 합니다. 기원전 492년, 페르시아의 1차 원정은 폭풍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실패합니다. 2차 원정은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에 패해 물러납니다. 다리우스 1세는 마라톤의 패배를 잊지 않기 위해 저녁식사 전에 하인들을 시켜 “왕이시여! 아테네에 당한 패배를 잊지 마소서!”라고 소리치게 했다고 합니다. 다리우스 1세는 설욕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죽습니다. 대신 아들 크세르크세스왕이 3차 페르시아 전쟁을 이어가지만, 영화 ‘300’의 모티브가 되는 테르모필레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을 세계 전쟁사에 남겨 놓고 페르시아의 패배로 끝납니다. 기원전 330년, 아케메네스 왕조는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에 패해 멸망합니다.
이후 페르시아는 기원전 247년 파르티아 제국이 건국될 때까지 헬레니즘 국가(그리스계)인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습니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그리스와 대립했고 파르티아는 로마와 대립합니다. 삼두정치의 한명인 크라수스는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진압하긴 했어도 갈리아를 평정한 카이사르나 지중해 해적을 소탕하고 동방을 원정한 폼페이우스에 비해 군사적 업적이 빈약합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로마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파르티아를 정벌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 합니다. 기원전 53년, 파르티아의 명장 수레나스와 크라수스가 구성한 로마군이 카르헤(튀르키예 하란)에서 마주합니다. 카르헤 전투에서 파르티아는 로마에 굴욕적인 패배를 안깁니다. 크라수스는 후속 전투 중 전사합니다. 뛰어난 전술로 승리를 이끈 수레나스도 왕의 의심과 질투로 인해 처형당합니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파르티아에 당한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원정을 준비하던 중 출정을 3일 앞두고 암살당합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뛰어난 전략가인 카이사르의 파르티아 원정이 실현됐다면 고대 서아시아의 역사는 지금 기록된 것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224년, 로마와의 잦은 전쟁, 왕위를 놓고 벌이는 귀족 간의 분열로 국력이 약화된 파르티아는 반란을 일으킨 사산 가문에 의해 멸망합니다.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후예를 자처하며 옛 영토 회복을 노렸기에 초기에는 로마와, 5C 이후에는 동로마와 충돌합니다.
260년, 2대 샤푸르 1세는 에데사(튀르키예 산르우르파)에서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로마군과 마주합니다. 에데사 전투에서 사산왕조는 발레리아누스를 사로잡습니다. 사서에 따라 다르지만, 페르시아의 술수에 속아 협상 자리에서 포로가 됐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훗날 셀주크 투르크와의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패해 포로가 되는 동로마제국의 로마노스 4세가 있기는 합니다만, 당시에는 로마 황제가 적국의 포로가 된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동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의 항복 권유에 이렇게 답합니다. “당신에게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넘겨줄 권리는 나뿐 아니라 이곳에 사는 누구에게도 없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의지에 따라 죽기로 했고 목숨을 아끼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성문을 부수고 몰려오는 오스만군을 향해 돌진합니다.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로마로 돌아가지 못하고 페르시아에서 죽습니다.
샤푸르 1세 사망 이후 침체기를 겪던 페르시아는 샤푸르 2세의 치세 때 제2 전성기를 맞습니다. 샤푸르 2세는 생몰년(309년~379)년과 재위기간이 일치합니다. 유사사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또한 전대미문의 사건은 아닐는지. 유복자였던 왕(샤한샤, 왕중왕이란 의미의 페르시아어)은 태어나면서부터 왕위에 오릅니다. 섭정기를 보낸 왕은 성년이 되면서 군사적 재능을 보입니다. 363년, 왕은 율리아누스 황제의 로마군이 침략해 오자 이를 막아냅니다. 전쟁에서 진 로마는 황제를 잃고 굴욕적인 평화조약을 체결합니다. 상대를 압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양국은 이후 120년 동안 대규모 충돌을 피하는 평화상태를 유지합니다.
사산왕조의 최대 영역은 590년 즉위한 호스로 2세 때입니다. 반란으로 실각하고 동로마로 도피한 호스로 2세는 많은 영토를 할애하는 조건으로 동로마제국 마우리키우스 황제의 도움을 받아 591년 복위하고 황제와의 약속을 이행합니다. 동로마제국과의 평화가 유지되던 602년 마우리키우스 황제가 반란으로 실각하고 처형됩니다. 호스로 2세는 은인 마우리키우스 황제의 원수를 갚겠다며 동로마와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물론 황제에게 할애했던 영토를 되찾으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20년 이어진 전쟁을 통해 호스로 2세는 사산 왕조의 최대 영역을 확보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위협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동로마제국 헤라클리우스 황제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626년, 페르시아의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략을 막아낸 황제는 사산왕조의 황궁을 약탈합니다. 호스로 2세가 연이어 실정하자 귀족들이 폐위시킵니다. 호스로 2세가 전쟁으로 빼앗은 영토는 다시 동로마제국의 영토가 됩니다. 이후 사산왕조는 2년간 12명의 왕이 교체되는 대혼란기를 맞습니다.
613년, 무함마드가 이슬람 포교를 시작합니다. 아랍 세계를 평정한 이슬람군은 633년부터 페르시아를 공략합니다. 636년, 사산왕조는 까디시야 전투에서 이슬람군에 궤멸 수준의 패배를 당합니다. 651년 사산왕조는 멸망하고 왕족 중 일부는 당나라로 망명해 사산왕조 부흥운동을 전개하다 한족으로 동화됩니다. 신라 고분에서 사산왕조 시대와 관련된 유물이 출토돼 당나라에 망명한 왕족의 일부가 신라로 왔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페르시아는 전통적 종교는 조루아스터교입니다. 특히 사산 왕조는 조루아스터교를 국교로 공인하고 기독교인을 탄압합니다. 사산왕조의 몰락과 함께 국교였던 조루아스터교도 소멸합니다. 이후 페르시아는 이슬람 국가가 됩니다.
632년, 무함마드가 죽고 칼리파가 이슬람제국을 다스리는 30년 동안의 정통 칼리파 시대에 이어 661년, 첫 세습 칼리파인 우마이야 왕조가 이슬람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고 페르시아를 지배합니다. 아랍인의 왕조인 우마이야는 페르시아인들을 탄압합니다. 페르시아인들은 아랍어 사용을 강요당하며 2등 시민으로 살아갑니다.
우마이야 왕조의 폐쇄성에 불만을 품은 세력들의 지지를 얻어 750년 이슬람 제국 두 번째 세습 칼리파인 압바스왕조 왕조가 출범합니다. 아랍계였지만, 모든 무슬림의 평등을 주장했기에 페르시아인들도 압바스왕조 창업에 협조합니다. 초기에는 아랍계가 권력을 장악했지만, 중반기 이후 행정과 문화에서 페르시아계가 주도합니다. 751년, 압바스왕조는 고구려 유민 출신의 고선지 장군이 이끄는 당나라군을 탈라스 전투에서 격파합니다. 이때 중국의 제지기술이 이슬람을 통해 유럽에 전파됩니다.
9C 들어 압바스왕조가 약화되자 페르시아인들의 독립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200년 동안 수많은 페르시아계 독립국가가 명멸하다 1037년 창업한 튀르크족이 세운 셀주크제국이 페르시아의 새로운 주인이 됩니다. 2대 술탄 알프 아르슬란은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동로마제국의 로마노스 4세를 사로잡고 아나톨리아반도와 예루살렘을 차지합니다. 유럽은 이슬람 세력이 점령한 예루살렘을 수복하기 위해 200년간의 십자군 전쟁을 시작합니다.
1194년, 왕위계승 분쟁으로 셀주크 제국이 힘을 잃자 역시 튀르크계 이슬람 세력인 호라즘 왕조가 페르시아의 새로운 주인이 됩니다. 1219년, 호라즘 왕조가 한창 번창할 때 동쪽에서 칭기스칸의 몽골이 침략합니다. 1231년, 호라즘을 멸망시킨 몽골은 1259년 일 칸국을 세워 80여 년 동안 페르시아를 지배합니다. 1336년, 일 칸국이 내전으로 붕괴하자 페르시아는 수많은 나라가 명멸하는 혼란기를 맞습니다. 이러한 혼란은 티무르 제국이 페르시아를 점령할 때까지 이어집니다.
중앙아시아 출신의 튀르크화된 몽골인 정복자 티무르는 1370년 티무르 제국을 창건하고 페르시아를 공략합니다. 아나톨리아반도까지 진출했던 티무르 제국도 내분으로 무너집니다. 1507년, 티무르제국의 왕족 일부가 인도로 가 이슬람 국가이며 타지마할을 만든 무굴제국을 건국합니다.
이후 페르시아는 흑양, 백양왕조를 거쳐 근세 페르시아의 시작이 되는 사파비 왕조를 통해 안정을 되찾고 시아파 국가로 전환합니다. 사파비왕조는 사산왕조 이후 이란인이 주도한 페르시아라고 평가합니다. 1736년, 사파비왕조를 이어 아프샤르 왕조가 페르시아의 주인이 됩니다. 4대 60년 만에 아프샤르 왕조는 카자르 왕조로 대체됩니다. 132년을 존속한 카자르 왕조를 이어 1925년 팔라비 왕조가 시작됩니다. 1935년, 팔라비 왕조는 ‘페르시아’와 혼용해 쓰이던 국호를 ‘이란’으로 통일합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팔라비 왕조가 쫓겨나고 현재까지 이란 공화국 체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인류역사상 최초의 거대 제국을 창건했고, 동서의 길목에 자리해 부침은 심했지만, 그들만의 찬란한 문화를 이루어 낸 페르시아, 그리스를 압도하고 로마와 견주던 그 페르시아가 유대인의 이스라엘에게 어이없이 당하는 현실을 보면서 종교가 국가를 통제하는 제정일치 사회가 얼마나 위험인 정치구조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팔라비 왕조를 몰아내고 신권정치를 선택한 이란인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또 다른 선택을 모색하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