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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서, 아! 오자서

역사 이야기

by 오세일

기원전 529년, 초나라는 공자 기질이 반정에 성공해 초평왕이 됩니다. 초평왕은 장자 건을 태자로 책봉하고 오사를 태자의 스승인 태사로 삼습니다. 대부인 비무극이 아첨으로 왕의 총애를 얻습니다. 왕을 주색에 빠뜨리자 태자 건이 비무극을 싫어합니다. 초평왕 2년, 왕이 열다섯 살이 된 태자 건의 혼사를 위해 비무극을 진(秦)나라로 보내 청혼합니다. 진애공이 동생 맹영을 출가시킵니다. 맹영은 절색의 미모를 지녔다고 합니다. 비무극이 초평왕을 충동질해 맹영을 취하게 하고 태자에겐 맹영의 시녀 중 한 명을 골라 혼인시킵니다.


초평왕 6년에 왕이 태자 건을 성부라는 변방으로 보냅니다. 왕이 본처를 쫓아내고 맹영을 본부인으로 삼아 진을 낳습니다. 왕은 진을 태자로 임명해 한나라에 두 태자라는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비무극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태자 건이 왕위에 오르면 죽을 목숨이니 생사를 걸고 태자 건을 몰아내야 합니다. 비무극이 반복해서 태자 건을 음해하자 초평왕이 태자 건을 폐위합니다. 그러나 건의 존재가 비무극에겐 여전히 위협입니다. 비무극은 건과 그의 세력을 일소하려 합니다.


왕이 태자를 폐하기에 앞서 건의 스승인 오사를 불러들여 건의 반란에 대해 묻습니다. 강직한 오사가 대답합니다. “애초에 자부(子婦)를 취하신 것부터가 잘못이었습니다. 어찌 하찮은 인간의 참소만 믿고 태자를 멀리하려 하십니까?” 왕이 오사를 가두고 태자 건을 죽이려 하자 건은 시녀 출신 아내와 아들 승을 데리고 송나라로 달아납니다.


왕이 진을 태자로, 비무극을 태사로 임명합니다. 비무극이 왕에게 오사의 아들인 오상과 오원을 불러 한꺼번에 죽이라 합니다. 오상과 오원은 모두 뛰어난 인재입니다. 왕이 오사에게 두 아들을 불러들이는 편지를 쓰게 합니다. 오사는 편지를 쓰면서 오상은 오고 오원은 오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편지를 받은 오상이 오원에게 말합니다. “진위를 떠나 우리가 가야 부친이 산다는 데도 가지 않으면 불효이고, 부친의 억울한 죽음을 복수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불효이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죽을 테니 너는 달아나 원수를 갚아라.” 오원이 바로 의지의 중국인 오자서입니다.


오자서가 더 이상 가족을 돌볼 수 없는 현실을 아내에게 말하며 안타까워합니다. “부친과 형님의 억울한 죽음만으로도 감당할 수 없을 고통을 겪고 있을 텐데 어느 여가에 가족을 돌본단 말입니까?” 그리고는 자신의 존재가 남편의 복수에 방해가 될까 염려돼 목을 매고 자살해 버립니다. 부친과 형과 아내를 동시에 잃은 오자서가 달아납니다. 왕이 오사와 오상을 죽이고 오자서를 수배합니다. “오원이 달아났으니 이제 초나라 임금과 신하는 편히 잘 수 없게 되었구나!” 오사의 마지막 말이었답니다.


오자서가 도주 중에 사신으로 다녀오던 절친인 신포서와 마주칩니다. 오자서가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는 반드시 초평왕과 비무극의 살을 씹어 원한을 갚겠다고 말합니다. 신포서가 말합니다. “그대에게 원수를 갚으라면 반역이 되고 갚지 말라면 불효가 되니 어찌할지 모르겠소. 그대의 뜻에 따라 행동하시오. 오늘 그대를 본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소. 다만 그대가 칼을 들어 초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면 나는 방패를 들어 초나라를 구원하려 노력할 것이오.”


송나라에서 건을 만난 오자서는 정나라로 갑니다. 당시 정은 진(晉)을 섬겨 초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오자서의 명망을 알고 있던 정정공이 환대합니다. 정정공이 진(晉)의 도움을 받으라 조언하고, 건이 진나라로 갑니다. 진도 초를 칠 뜻이 있습니다. 진은 건을 이용해 먼저 정을 없애고 초를 치려합니다. 진은 건에게 정으로 돌아가 내부에서 호응하라 제안합니다. 건이 초로 돌아갈 욕심에 진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건이 오자서에게 진의 제안을 설명하자 오자서는 자신들을 환대한 정을 배신하면 신의에 어긋난다며 반대합니다. 건이 듣지 않고 사람을 모으다 계획이 들통나 죽습니다. 다급해진 오자서는 건의 아들 승을 데리고 오나라를 향해 도망칩니다. 천신만고 끝에 두 사람은 오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옛날 고공단보에게는 태백, 우중, 계력이라는 세 아들이 있습니다. 계력이 창을 낳습니다. 바로 주문왕인 서백 창입니다. 창이 뛰어나자 고공단보는 창에게 군위를 전할 뜻이 있습니다. 태백과 우중이 부친의 뜻을 알고는 계력에게 군위를 전하기 위해 멀리 남쪽에 있는 형만 땅으로 갑니다. 형만의 백성들이 이들을 의로운 사람이라 하여 수장으로 받듭니다. 태백이 후사 없이 죽고 동생 우중이 수장이 되어 오나라의 시조가 됩니다. 우중으로부터 삼대가 지나 주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오나라를 제후에 봉합니다.


장강 하류의 미미한 부족국가에 머물던 오나라는 기원전 585년 수몽이 군위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발흥해 춘추시대의 일원으로 합류합니다. 수몽이 처음으로 왕호를 씁니다. 수몽은 제번, 여제, 여말, 계찰이라는 네 아들이 있습니다. 그중 넷째 계찰이 가장 현명하고 어질어 계찰에게 왕위를 전하려 하나 계찰이 고사합니다. 수몽이 재위 25년에 죽자 장남인 제번이 왕위에 오릅니다. 오왕 제번은 수몽의 상이 끝나자 계찰에게 왕위를 넘기려 합니다. 그러나 왕위에 뜻이 없었던 계찰은 시골에 숨어 농사를 짓습니다. 제번이 재위 13년에 죽으면서 아우인 여제에게 왕위를 잇게 합니다. 계찰에게 왕위가 전해질 것을 기대하면서.


여제 4년, 계찰이 노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열국을 돌며 각국의 유력자들과 교류합니다. 야만인의 나라에서 온 계찰의 식견에 모두가 감탄합니다. 계찰로 인해 오나라의 위상이 높아집니다. 계찰이 귀국길에 서나라에 들립니다. 사신으로 갈 때 들른 서의 군주가 계찰의 보검을 몹시 갖고 싶어 했으나 사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칼이 필요했으므로 모른 척 떠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 서의 군주가 죽자 무덤에 들른 계찰이 칼을 풀어 놓습니다. 수행원이 묻습니다. “칼은 누구에게 주는 겁니까?” 계찰이 답합니다. “결심했던 일을 실행할 뿐이다. 귀국 길에 들려 칼을 주려 했었다. 죽었다고 해서 이미 했던 결심을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여제가 왕위 17년에 죽고 아우 여말이 왕위를 잇습니다. 여말이 왕위 4년에 죽고 계찰의 차례가 되나 또다시 왕위를 고사하며 잠적합니다. 이때부터 오나라는 왕위계승을 놓고 혼란을 거듭합니다. 여말의 아들 요가 왕위를 잇습니다. 제번의 아들 공자 광은 계찰이 왕위를 잇지 않는다면 장자인 자신이 왕위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왕 요 5년, 왕위를 두고 드러나지 않은 갈등이 있을 때 오자서가 망명해 옵니다. 오자서가 오왕을 만납니다. 왕은 대부 벼슬과 함께 원수를 갚아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공자 광은 오자서가 왕과 친해질까 두렵습니다. 광이 개인의 복수를 위해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부당하다 말하자 왕이 초나라 치려는 생각을 거둡니다. 광에 의해 계획이 무산되자 오자서는 광에게 다른 뜻이 있음을 짐작하고 대부 벼슬도 받지 않습니다. 광이 오자서를 찾아가 많은 예물을 주고 교류를 청합니다. 오자서는 결의형제인 전제를 추천합니다. 광이 오자서와 함께 전제를 찾아가 많은 예물을 주고 서로 사귑니다. 이로써 오자서와 전제는 광의 사람이 됩니다.


초평왕이 재위 13년에 죽자 살아있는 초평왕에게 복수할 기회를 잃은 오자서가 통곡합니다. 태자 진이 왕위에 올라 초소왕이 됩니다. 광은 오왕을 죽이고 왕좌를 차지하려 합니다. 광이 전제에게 비수를 건네고, 전제가 왕을 죽입니다. 광이 계찰에게 왕위에 오를 것을 청하나 세 차례나 왕위를 거부한 계찰이 피 묻은 왕좌에 오를 리 없습니다. 광이 왕위에 올라 오왕 합려가 됩니다. 계찰은 죽을 때까지 시골에 은둔합니다.


초나라에는 백극완이라는 명장이 있습니다. 백극완의 명성이 높아지자 비무극이 시기해 간계를 꾸며 죽이자 아들 백비는 오나라로 달아납니다. 백성들이 비무극을 저주했고 초소왕 원년에 비무극을 죽이고 그의 일족을 도살합니다. 오자서가 백비를 거둡니다.


오왕 요의 아들인 공자 경기는 초와 오의 국경에 머물며 아비의 원수를 갚고 빼앗긴 왕좌를 되찾으려 합니다. 오자서가 천민 출신인 요이라는 사람을 천거합니다. 요이는 왕이 자신의 오른팔을 자르고 처자식을 죽이면 그것을 명분으로 경기에게 접근하겠다며 고육책을 제안합니다. 합려가 차마 수용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요이가 말합니다. “집안을 돌보느라 임금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충성이라 할 수 없습니다. 신이 충절의 이름을 후세에 남길 수만 있다면 온 집안이 죽더라도 영광입니다.” 합려가 죄를 만들어 요이의 오른팔을 자르고 처자를 가둡니다. 요이가 탈출해 경기에게로 달아나고 합려는 요이의 처자를 불에 태워 죽입니다. 경기가 요이를 중용했고, 요이가 경기를 죽입니다.


전제와 요이는 춘추시대의 유명한 협객입니다. 오자서가 천거했고 오왕 합려를 위한 비수가 됩니다. 결국 이들이 오왕 요 부자를 암살함으로써 합려는 왕좌를 차지하고 오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든 비수가 된 자객은 스스로를 죽여야 했기 때문에 훗날 칭송의 대상이 됩니다. 사마천도 협객의 충절을 높이 사 사기에 자객열전을 따로 기술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요이가 원했던 것처럼 충절로 그의 이름을 전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팔을 자르고 처자식을 불에 태워 죽이면서까지 얻으려 했던 충절의 이름 대신 어리석은 협객의 전형으로 기억할 뿐입니다.


오자서가 다시 한 사람을 천거합니다. 손자병법의 저자로 알려진 손무가 등장합니다. 손무의 첫 솜씨는 왕이 사랑하는 두 궁녀의 목을 벰으로써 궁녀들을 대상으로도 병법을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을 오왕에게 증명한 일입니다. 손무가 상장이 돼 초나라 칠 준비를 시작합니다.


오왕 합려 재위 10년에 오나라는 크게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를 칩니다. 손무와 오자서, 백비가 출정했고 왕의 동생인 공자 부개가 선봉이 됩니다. 손무의 용병이 성공해 오나라가 대승을 거두고 초의 도성인 영성을 넘습니다. 오자서가 초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썩은 시신에 300번의 매질을 가함으로써 억울하게 죽은 부친과 형의 복수를 마무리합니다. 초나라를 떠난 지 16년 만의 일입니다.


도성이 함락돼 망할 위기에 처한 초나라를 신포서가 구합니다. 신포서는 진(秦)나라로 가 구원군을 요청합니다. 망설이던 진애공이 신포서의 충성심에 감동해 군사를 내어 줍니다. 진초 연합군은 오나라의 선봉인 부개의 군대를 격파하고 백비의 군대도 무찔러 버립니다.


이때 공자 부개가 영성을 몰래 빠져나가 오나라로 돌아갑니다. 오왕 합려가 진나라에 패해 행방불명되었다고 소문내고는 스스로 왕이라 선포합니다. 그러나 오나라 도성은 태자 파가 지키며 성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부개가 오성을 무너뜨리면 오나라 다섯 성을 주겠다며 월왕 윤상을 끌어들입니다. 영성에서 부개가 사라지자 오자서는 부개의 반란을 예견합니다. 오왕이 군사를 이끌고 급히 귀국하자 부개의 진영이 동요합니다. 부개가 대패해 송나라로 달아납니다.


오자서와 손무는 신포서로부터 철군 권유를 받자 공자 승이 초에 정착해 죽은 공자 건의 제사를 받들게 한다는 조건으로 철군에 합의합니다. 두 사람은 영성의 보물을 모두 싣고 오로 돌아갑니다.


초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부개의 반란을 진압한 오왕은 일등 공신인 손무에게 벼슬과 보상을 하려 합니다. 그러나 손무는 부귀에 뜻이 없습니다. 단 한 번 세상에 나와 자신의 능력을 천하에 선보이고 손자병법을 남기고는 산속으로 은둔합니다. 오자서가 승상이 되고 백비는 태재가 되어 국정을 담당합니다. 일 년 만에 영성으로 돌아온 초소왕은 신포서에게 벼슬을 내립니다. 그러나 신포서는 지난날 오자서와 만난 사실을 알리지 않아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죄를 스스로 물어 처자와 함께 영성을 떠나 잠적합니다.


월나라의 조상은 순으로부터 양위 받아 하나라를 연 우왕의 후손이라고 전해집니다. 중국 동남쪽을 기반으로 존속해 오다 윤상에 이르러 처음으로 왕호를 사용합니다.


오왕 합려가 자만에 빠집니다. 궁궐을 크게 짓고 고소대라는 높은 대를 쌓아 환락을 즐깁니다. 태자 파가 병으로 죽고 부차가 태자가 됩니다. 월은 월왕 윤상이 죽고 아들 구천이 왕위를 잇습니다. 오왕은 부개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월이 부개를 도운 죄를 물으려 합니다. 오자서가 상중인 나라를 치는 건 예가 아니라고 말렸으나 이미 교만해진 오왕은 이를 무시합니다.


기원전 496년, 오왕 합려가 월나라를 치기 위해 출정하자 월왕 구천도 군사를 몰고 나옵니다. 강한 오군을 물리치기 위해 월왕은 전대미문의 전략을 구사합니다. 죄수 300명을 오군 앞으로 보내 차례로 자살하게 합니다. 엽기적인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자 오군은 기가 질렸고 이틈을 노려 월군이 급습합니다. 오군이 대패했고 오왕은 치명상을 입고 달아납니다.


춘추 네 번째 패자인 오왕 합려는 철군 도중 태자인 부차를 불러 월에 대한 복수를 유언으로 남깁니다. 부차가 왕위에 올라 복수를 준비합니다. 오왕은 궁전 뜰을 지날 때면 시자(侍者)를 시켜 월나라에 대한 복수를 상기시키게 합니다. 또한 땔나무로 만든 거친 잠자리에 누워 자면서 부친의 복수를 위한 결기를 다집니다.


삼년상을 마친 오왕이 월을 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합니다. 오자서가 대장이 되고 백비가 부장이 되어 진군합니다. 월왕도 오나라와 맞서기 위해 군대를 소집합니다. 월의 대부 범려와 문종은 승산 없는 전쟁을 피하자고 간청하나 월왕이 듣지 않습니다. 3년을 착실하게 준비한 오가 압승합니다. 월이 패하여 고성으로 도망가고 오군이 고성을 포위합니다. 3년을 절치부심한 오왕이 월을 병합하려 합니다. 이때 문종이 오의 허점을 노립니다. 백비에게 월나라의 미녀와 보물을 보냅니다. 탐욕스러웠던 백비가 오왕을 설득해 월왕이 부인과 함께 오왕의 종이 된다는 조건으로 월의 존속이 허락됩니다.


3년 동안의 와신(臥薪) 끝에 원수를 용서한 오왕과 16년을 준비해 복수한 오자서의 의지력은 크기가 다릅니다. 오자서가 오와 월은 공존할 수 없고, 월에는 범려와 문종이라는 뛰어난 신하가 있음을 들어 화친에 반대하지만, 오왕은 백비의 손을 듭니다. 지난날, 오자서를 오왕 합려에게 천거했던 피이라는 관상가가 백비를 보고는 간신의 상이라며 오자서에게 경고한 일이 있습니다. 오자서는 백비가 같은 초나라 출신이고 비무극으로 인해 부친을 잃었다는 동질감으로 백비를 중용했고 이제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오자서가 예언합니다. “월나라는 10년이 지나면 회복하고, 다시 10년이 지나면 흥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20년이 지나지 않아 오의 궁성은 늪으로 변할 것이다.”


월왕 부부는 문종에게 나랏일을 맡기고 범려와 함께 오로 갑니다. 오왕 합려의 무덤 옆에 석실을 짓고 부부가 함께 기거하며 말을 기르는 종살이를 시작합니다. 범려가 곁에서 월왕을 섬깁니다. 오왕이 범려의 충성심을 탐냅니다. “어진 여자는 망한 가문에 시집가지 않고, 지혜로운 신하는 망한 나라에서 벼슬 살지 않는다고 들었다. 망한 월을 버리고 과인과 함께 부귀를 누릴 생각은 없는가?” 범려가 답합니다. “전쟁에 진 장수는 용맹을 말하지 않고, 망한 나라의 신하는 정치를 논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신이 부족해 월이 망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과분한 은덕을 입었는데 어찌 부귀를 탐할 수 있겠습니까?”


3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오자서는 월왕을 죽여 후환을 없애라고 여러 차례 간하나 백비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월왕이 병든 오왕의 변을 핥으면서까지 정성을 다하자 오왕은 월왕의 귀국을 허락합니다.


귀국한 월왕은 이때부터 범려와 문종의 보좌를 받아 지난날의 치욕을 갚기 위한 준비를 시작합니다. 선정을 베풀고 출산을 장려하고 7년 동안 세금을 걷지 않습니다. 자신에겐 엄격해 허름한 의복에 험한 음식을 먹으며 백성들과 고락을 같이합니다. 매일 곰의 쓸개를 핥으며 복수의 결기를 다집니다.


오에 대한 복수를 위해 월의 상하가 바삐 움직일 때 오왕은 자만합니다. 합려가 지은 고소대를 부수고 커다란 규모의 고소대를 다시 짓습니다. 월왕이 이 소식을 듣고 건축에 쓰일 좋은 목재를 구해 보냅니다. 오왕은 월왕의 충성심에 감동하고 월왕은 오왕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아 기뻐합니다. 오자서가 간합니다. “하걸왕은 영대를 짓고 상주왕은 녹대를 지어 재정이 파탄 나고 백성은 고난에 빠졌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라와 상나라가 망했습니다. 월왕이 재목을 구해 보낸 것은 왕께서 옛일을 따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왕이 듣지 않습니다.


오왕이 고소대를 완공하자 월은 미녀 두 명을 뽑아 노래와 춤을 가르친 뒤 오왕에게 보냅니다. 중국 역사상 유명한 경국지색 서시입니다. 오왕은 월왕의 충성심에 감동하고 월왕은 오왕이 입을 서시의 화를 예견하며 기뻐합니다. 오자서가 간합니다. “하걸왕은 말희를 얻고 상주왕은 달기를 얻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라와 상나라는 망했습니다. 월이 서시를 보낸 것은 왕께서 옛일을 따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왕이 듣지 않습니다. 오왕은 서시와 즐길 각종 토목공사를 벌입니다. 재정이 고갈되고 백성들이 고통을 겪습니다.


월의 계획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오왕의 관심은 중원에 있습니다. 초, 진(晉), 제는 내부 문제에 발목 잡혀 패권을 잃습니다. 오왕이 군위계승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는 제를 치려 합니다. 오자서가 월이라는 화근을 두고 멀리 있는 제를 치는 일은 위험하다고 간하나 듣지 않습니다. 오왕이 대승을 거두고 귀국합니다. 월나라 문제로 사사건건 부딪히던 백비가 오자서를 참소합니다. 오자서의 충성심만은 인정하던 오왕도 백비의 참소로 흔들립니다. 오자서에게 촉루검을 보내 자살하게 합니다. 유전자 전체가 신념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찬 오자서가 마지막 순간에 했다는 말입니다. “내 무덤에 재나무를 심고, 내 눈은 도려내 동문에 걸어라. 재나무는 자라 부차의 관이 될 것이며, 내 두 눈은 오가 월에 짓밟히는 것을 증언하리라.”


백비가 승상이 됩니다. 오왕이 중원의 제후들과 회맹을 위해 오의 핵심 전력 모두를 데리고 떠납니다. 도성은 태자 우가 남아 지킵니다. 월왕이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기원전 482년, 구천은 12년 전 부차에게 당한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출정합니다. 월에 대한 방비가 없던 오는 속수무책으로 당합니다. 태자 우가 죽고 고소대는 불에 타 사라집니다. 오왕이 돌아와 월과 일전을 벌이나 지치고 사기가 저하된 오군은 십수 년을 벼르고 벼른 월군에 짓밟힙니다. 오왕이 화평을 청합니다. 오를 멸망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 판단한 월왕이 화평을 받아들입니다. 월과의 화평으로 패망의 위기에서 벗어난 오왕은 15년 전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때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여전히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습니다. 반면 월왕은 오에 가할 최후의 일격을 준비합니다.


기원전 476년, 월이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 3년이 지나 오의 도성이 함락됩니다. 오왕이 월왕에게 사자를 보내 지난날 월왕이 받았던 벌을 받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자신이 월을 존속시켰듯이 오의 존속을 인정해 달라는 의미였습니다. 월왕이 측은한 생각이 들어 받아들이려 하자 범려가 말합니다. “지난날 하늘이 오에게 월을 주었으나 오왕이 천명을 거역하고 받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늘이 월에게 오를 주려 합니다. 어찌 천명을 거역하려 하십니까?”


월왕이 오왕에게 사자를 보내 100호의 식읍을 줄 테니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라고 합니다. 절망에 빠진 오왕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습니다. 오왕 합려의 성과를 이어 중원의 패자인 진(晉)과 패권을 다툴 정도로 마지막까지 국제사회의 강자로 군림하다 신흥 국가인 월에 의해 나라를 망친 오왕이 죽음을 결심하고 떠올린 사람은 합려도 서시도 백비도 아닌 오자서였습니다. “죽어 오자서를 대할 면목이 없다. 죽거든 내 눈을 가려다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두 주인공인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 거친 잠자리에 누워 자고(臥薪), 곰의 쓸개를 핥으며(嘗膽) 서로에 대한 복수의 결기를 다졌던 두 사람,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구천이 됩니다. 궁전 뜰에 시자를 세워 놓고 자신이 지날 때마다 “부차야 구천이 아비 죽인 사실을 잊었느냐?”라고 외치게 해 혹시라도 복수에 대한 집념이 무뎌질까 경계했던 오왕도 2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각고했던 월왕에겐 미치지 못합니다.


오나라 궁궐에서 신하들의 첫 조례를 받는 자리에서 월왕은 백비와 그 일족을 도륙 내 훗날에 대한 경계로 삼습니다. 백비를 죽인 건 충신 오자서를 위한 복수였다고 말함으로써 훗날에 대한 모범으로 삼는 일도 잊지 않습니다.


월왕은 중원의 제, 진(晉), 송, 노와 회맹을 맺고 춘추 다섯 번째 패자가 됩니다. 패망의 위기를 딛고 일약 패권국가가 된 월, 그 중심에 있던 범려가 돌발행동을 합니다. 월나라 부흥의 또 다른 축이었던 문종에게 편지를 남기고 도망치듯 제나라로 잠적합니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고 했소. 왕은 고난을 함께할 수는 있어도 영화는 함께 하지 못할 상이오. 하루빨리 월을 떠나 일신의 안녕을 구하시오.”


문종은 범려의 말을 반만 따릅니다. 병을 이유로 은퇴하지만, 월을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오라는 적을 제거하고 난 뒤 문종이라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신하는 월왕에게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문종을 병문안한 월왕이 칼을 풀어놓고 나옵니다. 오왕이 오자서에게 보냈던 촉루검입니다. 오자서가 그랬듯이 문종도 칼을 물고 엎어집니다.


20년 세월을 오직 나라를 위해 권토중래했던 문종은 결국 토사구팽의 고사가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됩니다. 오가 망하고 4년이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한 문종, 한 나라를 멸망시킬 일곱 가지 계책 중 세 가지만을 써서 오나라를 멸망시켰다는 그는 남은 네 가지 계책으로 인해 월왕의 두려움을 사 결국 자신을 망칩니다. 한 나라를 망칠 일곱 가지 계책도 결국 한 몸 보호할 계책은 되지 못합니다. 그로부터 5년 후 월왕 구천도 일생의 영욕을 뒤로하고 죽음을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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