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기원전 11세기 말, 상나라 주왕의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상의 제후국이었던 주나라 희발(주무왕)은 지지세력을 규합해 상을 멸하고 주나라를 종실(宗室)로 만듭니다. 그로부터 9대가 지나 10대 주여왕이 즉위하자 정치가 혼탁해집니다. 사치스럽고 오만한 주여왕을 백성들이 비방합니다. 왕은 무사들을 고용해 비밀 경찰대를 조직하고 의심스러운 자들을 색출해 처형하는 공포정치를 실시합니다. 언로가 막히고 비방이 그칩니다. 왕이 기뻐하자 지혜로운 신하였던 소공은 언론탄압이 얼마나 위험한 통치수단인지를 설명합니다.
“비방이 그친 것이 아니라 입을 막은 것입니다. 입을 막는 것은 물을 막는 것과 같습니다. 막혔던 물이 터지면 모든 것을 한 번에 쓸어가 버리듯, 언론을 억압하면 당장엔 복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한순간 폭발하게 되고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립니다. 백성들의 입을 열어 소통하게 하는 것은 물고를 터 흐르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왕이 듣지 않습니다. 백성들의 입은 여전히 막혀있었고 제후국도 주왕실로부터 멀어져 입조하지 않습니다. 언로가 통제된 채로 3년이 지나자 막혔던 물이 터지듯 백성들의 분노가 폭발합니다. 백성들이 봉기하고 왕은 국외로 도망갑니다. 백성들이 태자 정을 보호하고 있던 소공의 집을 포위합니다. 소공이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켜 태자를 구합니다.
이때부터 14년간 신하들이 왕이 없는 정부를 이끕니다. 신하들이 화합해 정치하는 공화(共和)가 시작됩니다. 영어의 ‘republic’을 ‘공화’로 번역하는 것은 이 시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공화 원년은 기원전 841년으로 이때부터 중국 역사의 연대가 명확해지며 중국역사의 문자기록이 보존되기 시작하는 역사시대가 시작됩니다.
공화 14년인 기원전 828년, 왕이 망명지에서 죽자 태자 정이 즉위해 주선왕이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된 주선왕은 신하들과 함께 선정을 펼칩니다. 나라가 안정되자 제후국들은 다시 주나라를 종실로 인정해 입조합니다.
지난 대선은 ‘지지하는 후보의 장점’보다는 ‘지지하지 않는 후보의 단점’이 키워드가 된 선거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장점을 알리기보다 상대의 단점을 공략하는 네거티브가 주요전략이 되었지요. 저 또한 같은 이유로 단점이 더 커 보인 윤석열 당선자의 낙선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모든 바람이 다 이루어지면 바람이겠습니까? 윤석열 당선자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검사시절 강점이었다는 친화력을 발휘해 국민통합만이라도 이루시길 바랍니다.
후보 지지율엔 ‘지지하지 않는 후보의 단점’이 포함되었지만, 대통령 지지율엔 더 이상 프리미엄이 되지 않습니다. 이재명 후보의 단점을 크게 보고 당선자를 지지했던 많은 국민이 언제든 돌아설 수 있습니다. 극단적 여소야대에 지지율까지 받쳐주지 않으면 식물정부가 됩니다. 대한민국의 5년이 삭제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검사와 대통령은 다릅니다. 검사가 밀어붙이면 소신이 되지만, 대통령이 밀어붙이면 독선이 되고 아집이 됩니다. 불필요한 논쟁으로 시작부터 국론을 분열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