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은 처음입니다만

‘척‘전문가

by 충청도 여장사람

척 전문가의 육아


나는 결혼 전, 아니

그보다 한참 전 학생 시절부터

아주 큰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내 단점.

‘척’.


괜찮은 척.

좋은 척.

나이스한 척.


전~혀 괜찮지 않은데도

속으로는 끙끙 앓고 있는데도

나는 늘 모든 게 오케이인 사람처럼 굴었다.


오케이 척.

척. 척. 척.


이건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속은 불구덩이다.

속은 꽉 막힌 고속도로다.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열만 오른다.


그런데 겉모습만 보면

“저 사람 인생 참 편하게 산다.”

그렇게 보일 만큼 멀쩡하다.


나는 늘 그렇게

‘척’하면서

척을 지고 살았다.



나는 그게

육아와 살림에서도 통할 줄 알았다.


아니다.


육아는

내가 살아온 세상이 아니었다.


살림, 집안일?

이것 또한

내 세상이 아니었다.


그동안 나는

척하는 척하면서

많은 것들을 대충대충 넘기며 살았다.


싫어도 괜찮은 척,

힘들어도 아닌 척,

서운해도 티 안 나는 척.


그런데 육아와 살림은

대충이 통하지 않았다.


아이의 행동 하나,

아이의 말 한마디,

어질러진 집구석.


전혀 괜찮지가 않다.


그런데도

나는 괜찮은 척을 한다.


아이한테 나이스한 척,

여유 있는 엄마인 척.


하지만 육아는

연기력이 필요한 세계가 아니었다.


감정은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았고

대충 넘긴 문제는

다음 날 두 배가 되어 돌아왔다.


나는 그동안

어른인 척은 잘했지만

엄마인 척은 통하지 않는 세계에 들어와 버렸다.



내가 대충 넘겨 쌓아 두면

언젠가 아이가 대신 터뜨려주는 세계.


손톱이 자랐다.

‘내일 깎아줘야지.’ 하고 넘기면

그날 오후 아이 얼굴엔 긁힌 자국이 생긴다.


미뤄둔 감정,

미뤄둔 말,

미뤄둔 돌봄은

바로 결과로 돌아오는 곳.


이 세계에서는

나이스한 척이 오래가지 못한다.


나 스스로에게도

통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다 안다.


내가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을 한다는 것.

화가 나 있는데 참고 있다는 것.


어쩜 그렇게 귀신같이 아는지.


반면 우리 남편은 모른다.

내가 참고 있는 것도.

(…이 부분은 아직도 조금 서운하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는 말한다.


“엄마 지금 화가 좀 나서 혼자 있고 싶어.”

“엄마에게 시간이 조금 필요해.”


아이들은 무서워하면서도 받아들인다.

엄마가 다시 돌아올 걸 안다.

알겠다고 말하고 자리를 비켜준다.


나는 한숨을 돌린 뒤

다시 돌아가

왜 화가 났는지 설명한다.


이것이 우리의 방식이 되었다.



감정의 솔직함이 통하는 세계.

서로의 마음을 받아주는 세계.


생각해 보니

나는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척’을 쌓아온 게 아닐까.


특히 남편에게.


그래서 오늘도

솔직해지려고

입을 움직여본다.


그런데.


여전히

그건 어렵다.


그건 남편이 나쁘거나 둔하다거나

(… 좀 둔하긴 하다.)

그런 게 아니다.


아이들 앞에서는

내가 ‘엄마’로서 솔직해질 수 있었다.


엄마는 감정을 설명해야 하는 역할이니까.

엄마는 화가 나도

왜 화가 났는지 말해줘야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남편 앞에서는

아직도 나는


괜찮은 척,

좋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서운하지 않은 척을 한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아마도 이거다.


내가 선택한 삶이고

내가 선택한 사람이고

내가 원해서 들어온 세계인데


그 앞에서


“나 힘들어.”

“나 벅차.”

“나 지금 버겁다.”


라고 말하는 건

어쩐지 내가 패배한 것 같아서.


내가 잘못 선택한 것처럼 들릴까 봐.

내가 이 삶을 감당 못 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생각해 보면

그는 모르는 게 아니다.


늘 내가

무너지지 않는 사람처럼 굴었고,

감정이 크게 출렁이지 않는 사람인 척했으니까.


그러니

그가 내가 괜찮은 줄 아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남편 앞에서만큼은

나는 아직도 ‘척’ 전문가다.



내가 제일 오래 속여온 감정은

남편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향한 것이었다.


솔직함이 통하는 집에서

나는 나에게만 솔직하지 못하다.


표현하고 싶은 감정과

말하고 싶은 마음을

한가득 담아두고 있으면서도


나는 나에게

“괜찮아.”라고 먼저 말해버린다.


아이들에게는

감정의 이름을 알려주고,

마음은 숨기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나는

아직도 ‘척’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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