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은 처음입니다만

삐빅 39도 비상 비상 비상

by 충청도 여장사람

일요일 밤, 잠들기 전 큰아이 얼굴이 벌겋다.

설마 아니야, 아니야… 삐빅. 39도.


아… 내일 나의 하루는 없겠구나.

해열제를 서둘러 먹이고 병원 앱을 켠다.

예약 완료. 이제부터는 생존 모드다.


애들이 아프면, 나의 하루는 그대로 마감이다.

그날의 계획도, 다짐도, 심지어 커피 한 잔의 여유까지도

모두 잠시 중단이다.


집은 순식간에 임시 병동이 된다.

나는 간호사이자 요리사이자 약사다.

아니, 간헐적으로 울리는 체온계 알림음까지 고려하면

24시간 비상대기 요원쯤 된다.


큰아이가 독감에 걸렸다.

큰일이다. 연쇄 반응이 시작될 것이다.

나는 즉시 비상조치를 취한다 — 분리 수용.

큰아이는 입원 결정,

아직 괜찮은 둘째는 친정엄마께 긴급 지원 요청.


그런데 그 순간, 들려온 비보.

“둘째도 열이 난다네…”


둘 다 입원은 힘들다.

그럼 나는 그냥 없다고 봐야 한다.

둘을 떼어놔야 나도 살고, 저들도 산다.


이게 바로 나의 위기 대응 매뉴얼이다.

누군가는 이걸 ‘육아’라 부르고,

나는 이걸 ‘전시 상황’이라 부른다.


이 상황에서 남편은 제삼자,

진두지휘는 나,

그 밑에서 뛰는 행동대원은 친정엄마.

웃픈 조직도다.


이때에는 그냥 생각의 버튼을 꺼야 한다.

나를 잠시 없애야 아이들에게 전념할 수 있다.

독감이니 일주일은 이 상태겠지.

생각을 닫고, 마음을 닫고,

오늘도 병실에서 아이와 하루를 버틴다.


도대체 백신은 왜 맞는 걸까.

있는 대로 다 맞고, 다 걸린다.

좋은 건 다 챙겨 먹는 아이들인데

왜 맨날 아플까.


그 생각이 슬금슬금 올라오지만

꾸역꾸역 삼켜본다.

이 또한 지나가리…

그리고 다시 또 올 테지만.


그때도 나는 칼과 총 대신 해열제와 체온계를 쥐고 전쟁터 한가운데 서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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