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은 처음입니다만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by 충청도 여장사람

덜렁거림이 문제다.


어제 분명히 봤다.

어린이집에서 체험학습 간다고,

원복 입혀 보내라는 공지를.


“오케이.”


확실하게 이해했고,

확실하게 기억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주 확실하게 잊어버렸다.


아침이 되자마자

나는 갑자기 스타일리스트가 되어 있었다.


이 옷은 좀 밋밋하고,

저 옷은 너무 평범하고,

이건 오늘 같은 날 입히기 아깝고—


고르고, 또 고르고,

쓸데없이 신중하게 고민해서

결국 제일 예쁘게 입혀 보냈다.


그리고 나서야 생각났다.


아.

오늘 원복이었지.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깜빡깜빡하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항상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대충 넘기는 습관일지도 모른다.


근데 또

골 빠지게 생각해 봐야 뭐하나.


이미 애는

제일 예쁜 사복 입고

혼자 튀고 있을 텐데.


결론은 하나다.


나는 오늘도

문제를 정확히 파악했지만

고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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