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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오소리 Mar 20. 2021

멍게 비빔밥을 만들어 보자

집밥요정 오소리의 요리하는 글쓰기 (8)


멍게에서 바다 내음이 난다며 좋아하는 사람도 간혹 있긴 하지만, 보통 사람들처럼 나도 멍게를 썩 즐겨 먹는 편은 아니다. 회 먹을 때 초고추장보다 간장과 와사비를 선호하다 보니, 간장을 찍어 먹으면 특유의 향이 겉돌아 버리는 멍게에 큰 관심을 보일 이유를 못 느꼈기도 하고.


그러던 어느 날 멍게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발견했는데, 바로 회덮밥처럼 만든 멍게 비빔밥이었다. 어머니랑 밖에서 식사할 일이 생겨서 각자 비빔밥을 하나씩 시켜 먹었는데, 멍게를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물론 나에게도 대만족이었다. 이때의 기억을 살려, 멍게를 좋아하지 않는 다른 가족들도 즐겨 먹을 수 있는 (대략의) 레시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가족들과 먹을 분량을 3-4번 반복해서 만들어 보니, 이제 뭐 멍게 다듬는 건 일도 아니다.


멍게 비빔밥. 양념장을 뿌리기 전의 모습이다.

멍게 비빔밥 재료:

4인분 기준으로 여자 주먹 반만한 멍게 6마리 정도. 선물로 들어온 멍게라 몇미인지 기재할 수 없는 게 아쉽다고 한다.

비빔밥용 야채: 상추, 깻잎, 당근, 양파, 깐마늘 or 저민 마늘 (상추와 깻잎이 80%)

소스: 초고추장, 레몬즙(식초나 lazy lemon으로 대체 가능), 꿀(설탕이나 올리고당으로 대체 가능), 다진마늘(생략 가능), 생와사비, 간장(계란밥용 일본 간장 등 심심 달달한 간장이면 매우 좋음)

기타 옵션: 향신즙 (심영순 여사님 레시피: 미리 만들어 놓은 것 활용)


Round 1. 멍게 손질

0. 멍게를 다듬을 때 옷이나 이곳저곳에 내용물이 튈 위험이 있으므로 앞치마를 준비하거나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비린내에 대응할 멘탈 및 스테인레스 비누를 준비한다)

1. 멍게는 생물로 준비하고 외관을 깨끗한 물에 씻는다. 별도의 해감은 필요없다. 개인적으로 멍게는 가위로 다듬는 것을 선호하는데, 살과 내장을 발라낼 때 칼보다 간편하기 때문.

2. 빨간 돌기 부분을 위로 가게 하고, 뿌리같은 수염이 자란 부분을 밑둥이라고 가정한 뒤 다듬기를 시작한다.

가위로 밑둥부분을 꼬집듯 잘라 구멍을 내고, 가위 날을 넣어 가로로 겉껍질을 잘라낸 다음 세로로 껍질을 길게 잘라내고, 껍질과 속살을 분리한다. 요령이 생기면 빨갛고 뾰족한 부분의 안쪽에서 노란 속살을 깔끔하게 떼어낼 수 있다. 빨간 돌기 부분은 뽀독뽀독 씹어 먹기도 하지만, 비빔밥에서는 쓰지 않기로 한다.

3. 알맹이만 분리한 멍게는 세로로 배를 갈라, 뱃속의 액체가 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내장을 제거한다. 꽈리모양의 물렁물렁한 갈색 덩어리 및 식물 플랑크톤 등의 이물질을 적당히 제거하도록 한다. 멍게 속살을 물로 씻어내면 멍게 특유의 향이 없어지므로 유의한다.

4. 손질한 멍게는 2x2센티 크기로 썰어 둔다.

리빙포인트: 이 과정을 생략하려면 동네 횟집에서 멍게 1kg 사고 다듬어 달라고 하면 됩니다. 돌기 부분은 발라내고 알맹이만 사용합니다. 그럼에도 멍게 다듬는 얘기를 구구절절 쓴 이유는 나 멍게 잘 다듬는다고 자랑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 아시겠어요?


Round 2. 비빔밥 야채 손질하기: 준비한 야채는 잘 씻어서 먹기 좋게 손질한다- 라고 하면 너무 밉기 때문에 상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상추와 깻잎은 씻어낸 후 물기를 잘 털어낸 다음 세로를 1cm 간격으로 썰어두고, 당근은 가늘게 채썬다.

2. 채썬 양파와 얇게 저민 마늘은 물에 담가 매운 맛을 제거한 다음 건져낸다.

3. 야채 비중은 상추 4, 깻잎 4, 양파 1, 당근 0.7, 마늘 0.3 정도의 비율이라고 생각하면 되며 기호에 따라 가감한다. 당근은 예쁜 색깔, 양파는 아삭한 맛을 살리고 비린맛을 잡아주고, 마늘은 뒷맛을 깔끔하게 잡아주는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Round 3. 소스 만들기: 4인분 기준으로 공기밥 그릇 2/3 정도 채우면 넉넉하게 두고 먹을 수 있다. 멍게에서 나는 바다향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그 향이 부담없이 야채와 은은하게 어우러지는 소스를 만들어 보자.

1. 초고추장 7, 간장 1.5, 참기름 0.5, 꿀 0.5, 레몬즙 0.4, 생 와사비 0.1의 비율로 골고루 섞는다.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비율이므로 참고만 한다)

2. 간을 본 뒤 기호에 따라 필요한 것을 조금씩 가감한다. 이 때, 기본 베이스 초고추장이 지나치게 짜고 진할 경우에는 소량의 물을 섞어 농도를 유지한다. 모든 과정을 마친 소스의 농도가 대략 토마토 케첩 정도의 농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3. 저민 마늘을 비빔밥 야채에 추가할 수 없을 경우, 소스에 다진 마늘을 1/2티스푼 섞는다.

4. 옵션: 멍게 특유의 향을 잡아버리지 않는 선에서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향신즙을 1작은술 첨가한다.


Round 4: 플레이팅

1. 적당히 꼬들꼬들하게 지어진 밥 위에 야채를 빙 둘러 얹은 다음, 가운데에 멍게를 담는다.

2. 양념장을 두르고 신나게 비벼 먹는다.


Takeaway: 적당한 농도, 새콤달콤 칼칼 짭짤 고소하되 어느 하나가 두드러지지 않아 마냥 가볍지 않은, 비빔밥 소스라고 하기에는 조금 심심한 소스와 와사비가 주는 뒷맛의 개운함이 포인트. 멍게가 알아서 다 하겠거니- 하고 초고추장만 들이부은 멍게비빔밥은 결코 맛있을 수 없기에, 멍게 비빔밥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밸런스"임을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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