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를 먹다: 천 마리 개구리도 한 입부터

두려움이 하기싫어병을 불러올 때

by 익명의 오소리

한창 영어공부와 자기계발에 열을 올리던 20대 초중반 무렵, 인생 최초로 영어 원서를 완독했다. 당시 일하던 직장에서 (하라는 일은 안하고) PDF파일을 다운받아 이면지에 모아찍기 신공으로 뽑아 마젠타색 왕 집게로 집어놓은 채 형광펜으로 줄을 쳐가며 읽었던 책은, 이제는 빠알간 뺨의 호호할아버지가 되어서도 반짝이는 눈을 한 채 인스타그램 비디오에 출연하시는 (찰스 핸디와 함께 인생의 양대산맥 할아버지인) 브라이언 트레이시가 쓰신 "Eat that frog!"였다. 당시 토익 쪼렙 수준이던 나에겐 생소했던 단어, "procrastinate"가 책에 수두룩하게 등장하며 내 눈을 사로잡았다. 책의 내용은 다름아닌 '미루는 습관' 그리고 우선순위 매기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꼴 보기 싫고 역한 개구리를 어떻게 먹어치울 것인가?


여기서 말하는 개구리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지만 가장 어렵고 하기 싫은 골칫거리'를 뜻한다. 일을 미루는 대체로 가장 흔한 핑계인 '귀찮다'와 '하기 싫다'는 말 뒤에는 다양한 감정과 이유가 숨어 있다. 사람마다 내 인생을 가로막는 '개구리'는 다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우리가 가장 하기 싫고 가장 미루고 싶은 것들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중대한 일들인 경우가 많다. 취업준비생이 이력서를 쓰지 못하고, 작가가 글을 쓰지 못하고, 화가가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할 일을 미루는 가장 흔한 핑계인 '귀찮다'와 '하기 싫다'는 말 뒤에는 다양한 감정과 이유가 숨어 있다. 해야 하는데 정작 엄두가 나지 않아 산처럼 쌓인 '해치울 일'이 나를 압도하는 경험을 누구나 해 보았을 것이다.


여기에 이직을 간절히 원하지만 이력서를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가장 큰 두려움은 자신의 부족한 기존 경력으로 인해 더 나은 곳으로 이직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 잘해야 한다는 부담, 해봤자 안될 일에 공연히 시간낭비를 하지 않겠다는 잘못된 자기 사랑(나님은 매우 소중하므로 나의 에너지를 허투루 쓰고자 하지 않는 인색함)이다. 하지만 이력서를 쓰지 않으면 원서를 낼 수 없고, 원서를 내지 않으면 합격도 불합격도 할 수 없으며 이직은커녕 면접의 기회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또한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결과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에서 벗어나 진짜 목표인 이직을 하기 위해서 어떤 작업을 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첫째, 왜 이직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연봉, 형편없는 복지, 강압적 분위기, 기나긴 출퇴근.. 떠나야 하는 수많은 이유가 있고 내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는지 살펴야 한다. 나는 더 좋은 데 갈 자격이 없어서 이러고 살아도 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로 살면 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지쳤고 더 나은 환경으로의 변화를 원하기 때문에 이직이 하고 싶은 게 아닌가? 내가 더 나은 환경에 가기를 원한다면 결국 내가 나서서 일해야 한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음을 다시 확인한다.


둘째, 태산을 흩어 티끌로 만든다. 산처럼 쌓여 있는 일들도 주 단위, 일 단위, 시간 단위, 분 단위로 세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적 이직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브레인스토밍을 해 보면 효과적이다. 경력을 바탕으로 나의 역량과 성취,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경력기술서 우선순위에 따라 쓰기, 서류 통과율을 높이는 효과적 방법, 이력서와 커버레터, 레주메에 꼭 들어가야 할 내용, 어떤 회사/직종/산업분야에 지원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증명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브레인스토밍 후 우선순위 바탕으로 할 일을 순서대로 나열하고, 세분화된 타임라인을 기반으로 데드라인을 정한 다음 하나씩 해치우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궁극적인 목표를 잃지 않는 것이다. 큰 일을 세분화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디테일에 집착하다가는 큰 그림을 놓치고 산으로 가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 얼굴을 그리려는데 속눈썹 한올한올 큐티클 층까지 다 그리다가는 그 그림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다.


셋째, 세분화한 내용을 바탕으로 계획을 세우되, 실제 내 역량의 최대치보다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실현 계획을 세우고 하루하루 이를 달성해 나가면서 스스로를 날마다 칭찬하자. 인간은 간사해서 작은 과업을 이룬 나를 훌륭하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자기효능감을 회복할 수 있지만, 실패 가능성이 큰 일이었을지라도 실패하면 상처를 받는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단계라면 더더욱 나 자신에게 여백을 주면서 서서히 일을 진행시키자. 벼락치기에도 때가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결코 아니다. 절대 무리한 상황과 계획으로 나를 몰아가지 말자. 애초에 지키지 못할 계획을 세워놓고는 언제까지 이거 이거 이거 다 하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라는 두려움에 젖어 나를 몰아붙이고 못해냈다고 때리지 말아야 한다. 내가 아니어도 나에게 함부로 하고 때리고 비난할 자들은 지천에 널려 있다. 적어도 나는 나더러 잘했다고 칭찬하고 추켜세울 줄 알아야 다음 스텝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넷째, 못 하겠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무책임한 말처럼 들리지만, 남과 나의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어떤 일도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 않으면 안돼'라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게 되며, 비로소 주변을 돌아보고 벼랑에 몰려 있던 위축된 마음을 돌이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일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정말 압박에 시달린다면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 이직을 못 하고 현재 회사에 계속 남거나 백수가 될 경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며 앞으로 내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사실 이 단계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벼랑 끝에 서 있다고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절박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될 일이라면 언젠가 반드시 되는 법이라고 느긋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오히려 원하는 결과에 가까이 가는 것도 어려워진다. 같은 맥락으로, 사전 준비는 철저히 하되 면접은 대충 수다나 떨러 간다고 생각하자. 그래야 느긋하게 진짜 내 모습을 편안한 상태에서 보여줄 수 있다.



마인드컨트롤이 반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 나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객관적, 정량적으로 상황을 분석해 본다면 안 될 일은 포기하더라도 가능성이 있는 일에 집중해서 좋은 성과를 내면서 살아가는 데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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