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선적=북한적=총련계'라는 오해

<조선적이란 무엇인가>

by 오태규
20211120_1646581.jpg?type=w580


재일동포들이 가지고 있는 외국인등록증명서의 국적 및 지역란에는 '한국' 또는 '조선' 중 어느 한 단어가 써 있다. 물론 여기서 한국은 '대한민국'의 국적자임을 표시한다.


그러면 '조선'은 무엇을 표시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조선도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국적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조선은 국적 표시가 아니다. 무국적자를 가리키는 기호 또는 지역 이름이다.


이런 사정이 생긴 것은, 기본적으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일본의 재일동포 정책의 책임이 크다. 1910년 한일병탄으로, 당시 조선 사람은 모두 일본제국의 신민이 됐다. 그러나 일본이 패전 뒤, 재일동포들을 일방적으로 외국인으로 규정했다. 일본의 전후 평화헌법이 공포되기 전날인 1947년 5월 2일, 외국인등록령을 발령해 재일조선인을 "당분간 외국인으로 취급"한다고 하더니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앞두고 재일조선인의 일본 국적을 박탈했다. 식민지가 독립할 때는 식민 모국에 사는 식민지 사람들에게 국적선택권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일본은 그런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이때 국적이 박탈된 재일조선인들에게 부여된 기호가 출신지역을 가리키는 '조선'이었다.


일본이 한반도의 남부를 지배하는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했기 때문에, 1952년 샌프란시스코조약 이후에 한국을 국적으로 택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러나 한국 국적자가 폭발적으로 늘게 된 것은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다. 한일국교정상화에 따라 한국적의 재일동포의 지위가 조선적을 가지고 있을 경우보다 안정적이 되면서 한국적을 택하는 사람이 증가했다. 2019년 기준으로 볼 때, 한국 국적의 재일동포는 45만여명(이중 특별영주권자는 28만 5천명)이고 조선적의 재일동포는 2만8975명이다. 특별영주권자의 10%가량이 조선적 동포다.


그러면 조선적 동포는 모두 친북이고 친총련 인사인가? 냉전과 남북 대립 속에서 그런 오해가 생겼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다. 대표적인 인사가 4.3사건과 관련한 소설 <화산도>를 쓴 김석범씨다. 그는 지금 친북도 친총련도 아니지만 한국 국적을 택하지 않고 조선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는 통일조국을 원하기 때문에 통일될 때까지 어느 일방의 국적으로 선택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조선적 동포 중에는 이런 사람이 꽤 많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동포가 모두 친한 인사가 아니듯이, 조선적 중에도 친북 또는 친총련계, 친한 등 다양한 성향의 사람이 섞여 있다.


중요한 것은 국적이 이들의 이념적 정체성을 대표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적 동포들이 친북이라는 오해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복잡한 문제를 다각적으로 다룬 책이 <조선적이란 무엇인가>(명석서점, 2021년 1월, 이리화 편저)다. 나는 이 책을 귀국 전에 재일동포 3세 시인 정장 씨한테 받았다. 정 시인은 친북도 친총련계도 아니다. 지난해에는 그가 사는 히가시오사카시에서 민단과 함께 역사왜곡 교과서의 채택 반대운동을 주도해, 성공을 거뒀다. 그래서 내가 총영사 시절에 이런 공로를 인정해, 우수 동포 총영사상을 주기도 했다.


그는 김영삼 정권 때부터 이명박 정권 때인 2010년까지 5차례나 일본 법무성이 발행하는 '재입국허가서'를 가지고 국내 입국 비자를 신청했으나 모두 퇴짜를 받았다. 그 이유는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무국적의 재일동포는 한국정부가 발행하는 '여행증명서'를 소지해야 한다는 조항에 위반하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재일동포가 아닌 일본 거주 무국적자는 일본 법무성의 재입국허가서로 한국 입국 비자를 받을 수 있는데 재일동포 무국적자는 안 된다는 것은 논리의 모순이라면서 정부에 법 개정 청원운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이 나온 것도 그와 관련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그는 2018년 12월 뉴질랜드에서 재일코리안을 주제로 열리는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심포지엄 개최일까지 입국 비자를 받지 못했다. '조선적'이 문제가 되어 재일코리안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 참석하지 못한 사실이 조선적을 주제로 한 책을 내자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조선적이 법의 보호망에서 빠져 있고, 정치적인 영향으로 잘못된 조선적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가 퍼져 있으며, 조선적에 관한 연구와 서적도 거의 없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나누어 글을 썼다.


이 책은 서문 외에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부터 4장까지는 법과 정치를 중심으로 한 사회구조, 사회사상, 국제관계, 지정학적 상황의 관점에서 조선적 문제를 다뤘다 .5장부터 7장까지는 조선적으로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초점을 맞췄다. 또 북한 축구 국가대표 출신으로 활약했던 안영학씨를 비롯한 6명이 쓴 칼럼을 통해 각 장에서 다루지 못한 문제를 보완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최소한 조선적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고민을 하는지는 알 수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총영사 일기>와 <오사카총영사의 100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