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 들통난 이준석 대표의 궤변

JTBC 가면토론회

by 오태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월 16일 '마라탕' 가면 토론 참석과 관련해,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경향신문>의 17일자 사설(제1야당의 대표가 '가면' 뒤에 숨어 다른 정당 비판하디니)에 대해 반박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글을 올렸다.


다음은 이 대표의 반박과 <경향신문> 사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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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해당 프로그램은 오히려 계급장을 떼고 정치적 지위나 사회적 유명세가 아닌 논리를 보라는 취지로 기획된 프로그램입니다.

출연자의 신분을 출연자가 노출시키지 않은 상황에서 전혀 문제될 바가 없으며, 오히려 경향신문이 출연자의 신분을 단정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문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익명에 숨어서 이야기할 필요도 없이 방송사의 포맷인 가면 없이 저는 더 신랄하게 안철수 후보에 대한 평가를 합니다. 따라서 하지 못할 말을 하기 위해 가면을 쓴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사설 쓰기 전에 해당 방송을 제대로 보기나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반 예능인 프로그램인데 이런 사설까지 쓰는 것이 황당합니다.

복면가왕은 평소에 안 보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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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 대표가 ‘가면’ 뒤에 숨어 다른 정당 비판하다니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가면을 쓴 채 익명으로 진행되는 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다른 당 대선 후보들을 비판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이 대표는 지난 5일과 12일 JTBC <가면토론회>에 출연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비판하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 대표 측은 이 같은 보도를 부인하지 않았으며, JTBC 측은 “공식적으로 출연자를 확인해드리기 힘든 입장”이라고 했다. 대선이 두 달도 남지 않은 민감한 시기에 제1야당 대표가 가면 뒤에 숨어 ‘제3자 시각’인 양 다른 당 후보를 비판하는 것은 명백한 반칙이고, 얄팍한 술수다. 국민의힘과 윤 후보가 강조해온 ‘공정’ ‘상식’의 가치와 거리가 먼 행태를 당의 얼굴인 대표가 저질렀다니 유감이다.


이 대표로 추정되는 논객 ‘마라탕’은 윤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 의혹을 두고 “허위 이력 기재나 이런 것들이 있다 한들, 대한민국 영부인 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려면 전과 4범 이재명 후보는 대통령직 사퇴하는 게 맞다”고 했다. 안 후보를 겨냥해선 “계속 실패했는데, 같이 망하는 데에 희망을 걸자고요?”라고 말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론과 관련해선 “이(준석) 대표도 여가부 관련 토론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며 ‘셀프 비평’을 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더 이상 정치평론가가 아니다. 제1야당 대표가 기성 정당과 이해관계 없는 젊은 논객인 양 굴며 상대 후보를 깎아내린 것은 잠재적 유권자인 시청자를 기만하는 행위다. 이 대표는 대선 승리를 위한 ‘비단주머니’가 20개쯤 있다고 해왔는데, 가면 뒤에서 유권자 판단을 흐리려는 시도도 포함됐던 것인지 묻고 싶다. 정치권 쇄신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30대 정치인의 경박한 처신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JTBC 측은 해당 프로그램을 ‘가면 쓴 논객들이 다양한 사회문제를 두고 벌이는 3 대 3 토론 배틀 프로그램’이라 소개하고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민감한 제1야당 대표가 가면만 쓰면 ‘논객’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말인가. 상업적 목적이든 혹은 다른 의도든 JTBC 측 상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의 출연이 사실상 공개된 만큼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더 이상 담보하기 어렵다고 본다. 이 대표와 JTBC는 해명하고 사과해야 한다. 이 대표가 프로그램에서 하차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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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대표의 글을 읽으면서 눈을 의심했다. 하버드대학까지 나왔으니 머리 탓은 아닐 것이고, 나이도 40대를 바라보고 있으니 경험 부족 탓도 아닐 것이다.


나는 경향신문이 사설로 이 대표의 문제를 지적하기 전에 블로그와 페이스북 투고(2022년 1월 16일)를 통해, 이 대표의 '마라탕' 복면 토론 참석과 관련해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하나는 대선을 앞두고 공당의 대표가 얼굴을 가리고, 즉 일반 시민인 것처럼 가장한 채 선거 쟁점에 관해 비판하는 것이 '정치 윤리'에 위반한다는 것이고, 둘은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JTBC>가 공당 대표라는 신분임을 알고도 선거 쟁점에 관해 일방적인 발언권을 준 것은 '방송 윤리'의 타락이라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선거법 위반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의 사설은 나의 의견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건전한 상식에 입각한 정론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표는 <경향신문>의 사설이 마음에 걸렸던지 반응을 했다. 나의 그의 반응을 보고 두 가지 점에 놀랐다. 하나는 '마라탕'의 정체에 관해 그동안 부인도 시인도 않던 자세에서 교묘하게 마라탕이 자신임을 시인한 것이다. "경향신문이 출연자의 신분을 단정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없던 문제를 만들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전형적인 책임 떠넘기기, 적반하장의 논리다. 이를 보면서 이 대표는 말을 잘하고 토론 기교는 뛰어날지 모르지만, 공적 인물에 맞는 윤리 감각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또 한가지는 반박 논리의 허접함이다. 자신이 가면을 쓰지 않고도 더 신랄하게 상대후보를 비판하는데 가면을 쓰고 한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것이다. 정말 공당의 대표가 비판하는 것과 일반인을 가장한 비판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를 모르는 하는 말인지,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전자라면 멍청하고 후자라면 사악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공당의 대표의 말과 '익명의 일반인'의 말은 같은 말이라도 무게와 파급력, 여론 소구력이 다르다는 점만 지적해 두고자 한다. 마치 '복면가왕'과 '복면토론회'가 같은 오락프로그램인데 이런 것까지 사설거리가 되느냐는 얘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자제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이 대표의 자세는 전혀 사리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정치인의 윤리에도 어긋난다. 경향신문 사설의 주장처럼, 이 대표와 JTBC는 사과하고, 이 대표는 프로그램에서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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