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진 속에 담긴 60년대 오사카 재일동포들의 삶

<이카이노-일본 속 작은 제주>, 조지현 사진집

by 오태규
20220125_1420001.jpg?type=w580

4.3 사건을 다룬 김석범의 장편 소설 <화산도>를 보면 '이카이노'라는 오사카의 재일동포 밀집 거주지의 지명이 자주 나온다. 대표적인 재일시인 김시종도 <이카이노>라는 제목의 시집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지금 오사카에서 이카이노라는 지명을 찾을 수 없다. 1973년 행정개편 때 사라졌다. '이카이노바시'라는 버스정류장 이름에서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한창 경제성장이 벌어지던 때인 70년대에 이곳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이카이노라는 지명을 없애달라고 했다. 부락마을과 함께 일본 안의 2대 차별 대상인 재일동포의 밀집지인 이카이노라는 지명이 땅값 상승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게 이유였다.


이름이 없어진 이카이노는 지금 행정구역으로는 히가시나리구와 이쿠노구에 걸쳐 있다. 특히, 이카이노로 불리는 지역에는 제주도 출신 동포들이 많다. 1923년 제주-오사카 간 연락선 기미가요마루가 생기면서 돈을 벌기 위해 공업지인 오사카로 오기 시작한 것이 제주 출신 동포의 1차 오사카 대이동였다면, 4.3 사건 이후 피난이 2차 대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오사카에는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해 제주 출신 동포가 많은데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카이노의 한 지역이었던 이쿠노의 조선시장, 지금 이름으로 코리아타운은 전국적인 관광지로 변했다. 한국의 음식과 멋을 즐기기 위해 주말에는 1만명이 넘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찾고 있다. 마을 이름을 없애 달라고 민원을 하던 시기와 비교할 때 상전벽해가 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유명세를 띄게 되면서 코리아타운의 명암도 갈리게 됐다.


<이카이노>(도서출판 각, 조지현 찍음, 2019년 2월)는 코리아타운이 조선시장으로 불렸던 시절, 일본 사회의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시절, 남북 분단 및 대립과 함께 동포사회도 양분돼 으르렁거렸던 시절의 동포 생활 모습을 담은 귀중한 사진집이다. 2003년 일본의 신조사에서 출판했던 <이카이노-추억의 1960년대)를 모체로 해 펴낸 책이다.


이 책에는 사진과 함께 글도 5편 실려 있다. 저자인 조지현, 그의 딸 조지혜, 김석범, 김시종, 이지치 노리코 오사카시립대 교수의 글이다. 이들은 모두 제주 출신이거나 제주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조지현씨는 10살 때인 1948년 즉 4.3사건이 나던 때 오사카로 건너왔고, 소설가 김석범, 시인 김시종 모두 제주 출신이거나 제주에 산 적이 있다. 유일한 일본인 필자인 이지치 교수(인류학)는 제주에 수년 간 거주하며 해녀를 연구한 반 제주사람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진들은 1965년부터 70년까지 동포들의 삶과 삼터의 모습이다. 사진 하나하나에 당시 동포들의 고단한 생활, 이국에서도 민족성을 잃지 않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모습, 열악한 주거 환경, 동포 사회까지 깊숙하게 영향을 주고 있는 남북 대립의 분위기가 잘 담겨 있다. 특히, 조지현씨는 '연출하지 않는 스냅 사진'을 고수하는 리얼리즘 사진을 철저히 추구하는 사진가였다. 때문에 흑백 모노크롬의 그의 사진은 당시 동포의 생활 현장을 더욱 실감나게 살려내고 있다.


이 사진들은 당시와 상전벽해로 바뀐 코리아타운과 그 주변을 되돌아보는 기준점으로도 매우 의미가 있다. 사람들은 현재만 보고 과거의 어려움을 잊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진들은 지금의 화려함과 발전이 당시의 고난과 고통을 기반으로 이뤄진 것임을 보여준다.


내가 총영사로 재직하던 시절인 2019년 2월에 서울에서 이 책과 같은 이름으로 전시회가 있었다. 조지현씨는 3년 전인 2016년에 이미 작고한 상태였다. 나는 서울의 전시회 소식을 듣고, 오사카문화원이나 총영사관 홀에서도 조지현씨가 찍은 <이카이노> 사진 전시회를 열고 싶었다. 그러나 코로나 감염 사태 등으로 끝내 성사를 시키지 못하고 귀국했다. 지금까지도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이 책이 국내의 시민, 재일동포 후세, 그리고 현지 일본인들에게 고난과 차별을 뚫고 살아온 재일동포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널리, 그리고 실감나게 알려주는 데 공헌했으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