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공생의 동아시아'를 구축할 것인가

<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묻다>, 백영서, 창비

by 오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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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총영사 임기가 끝나갈 무렵인 2021년 4월 중순께 리츠메이칸대 국제학부 부학장으로 있는 나카토 사치오 교수와 송별 점심을 했다. 그때 함께 기미지마 학부장(헌법학)도 동석했다. 이때 기미지마 학장이 피식민지 경험이 없으면 쓸 수 없는 책이라면서 한국인 저자가 쓴 두 권의 일본어 책을 가지고 나왔다.

한 권은 김항씨가 도쿄대 박사학위 논문을 단행본으로 펴낸 <제국일본의 문턱>(암파서점, 2013년)이다. 이 책은 나의 서평 시리즈에서 <'새로운 동아시아' 건설을 위한 제언>이란 제목으로 이미 소개한 바 있다. 그때 나머지 한 권의 책도 기회를 보아 소개하기로 약속했는데, 그 책이 바로 <공생에의 길과 핵심현장>(법정대학출판국, 2016년 7월, 백영서)이다. 한국에서 2013년에 창비 출판사에서 <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로 출판된 것을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다.

김항씨의 책은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지 않아 일본어로 읽었지만, 백영서 교수의 책은 바로 한글 책을 구해 읽었다.

중국사 전공의 학자이자 <창작과 비평> 주간으로 일하는 저자는 "연구자이자 교육자이고 또한 편집자로서 역할을 수행해온" 자신의 정체성에 어울리게 학술과 실천을 융합한 관점에서 동아시아 공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학문과 실천을 겸비했기 때문에 책 내용이 학술적이지만 공허하지 않고 실천적이지만 허황되지 않게 다가온다.

저자는다섯 가지 핵심' 개념을 사용해 동아시아를 탐색한다. 우선 동아시아를 "동북아와 동남알르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정의하되, 실천을 강조하기 위해 '실천과제로서의 동아시아(또는 프로젝트로서의 동아시아)를 핵심어로 사용한다. 두 번째 핵심어는 '이중 주변의 시각'이다. 저자가 2001년 대만과 나고야에 반 년씩 체류하면서 얻은 경험이 반영된 관점이다. 그때 중국의 일부이기도 하고 중국이 아니기도 한 복잡한 정체성을 가진 대만인, 한때 식민지였던 대만을 보는 일본인의 착종된 시각을 접하면서 "서구 중심의 세계사 전개에서 비주체화의 길을 강요당한 동아시아라는 주변의 눈과 동아시아 내부의 위계질서에서 억눌린 주변의 눈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눈을 뜨면서 발견한 개념이 바로 '이중 주변의 시각'이다.

다음은 '핵심 현장'이다. 쉽게 말해, 핵심 현장은 국가 사이의 모순이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는 국가 사이의 경계가 흐린 회색지대를 가리킨다. 저자는 핵심 현장이 이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핵심어라면서 이중 주변의 시각을 요구하는 곳이자 그것이 가장 잘 적용되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대만, 오키나와, 한반도다. 아마 기미지마 교수가 피식민지를 체험한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쓸 수 없는, 그런 경험이 없는 일본인 학자는 절대 시도할 수 없는 시각이라고 말한 것은 이 대목을 말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핵심 현장을 찾아가 연대활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동아시아가 서로 연동한다는 깨달음도 저절로 얻게 됐다면서 '연동하는 동아시아'를 또 하나의 핵심어로 제시했다. 저자는 "연동에는 부정, 긍정의 의미가 모두 포함된다. 문제는 어떻게 분쟁, 갈등의 악순환이 아닌 평화, 번영의 선순환으로 동아시아를 이끌 것인가"라면서 "바로 이 때문에 '연동하는 동아시아'라는 핵심어는 동아시아의 과거와 오늘을 설명하는 도구인 동시에 동아시아 공생사회의 미래를 구성하고 실현하는 실천과제임을 일깨운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마지막 핵심어는 '복합국가'다. 저자는 사전적 의미의 복합국가는 두 개 이상의 국가의 결합체로 간주되는 국가형태, 즉 구체적으로 연방과 국가연합, 종주국/보호국 등이지만 그것보다는 복합국가가 한국사회의 통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창안된 실천적이고 실험적인 의미라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 개념은 1972년 7.4공동성명 뒤 천관우씨에 의해 처음 제기된 뒤 "단일국가가 아니라 온갖 종류의 국가형태, 죽 각종 국가연합과 연방국가를 포괄하는 가장 외연이 넓은 개념"(백낙청)으로 발전돼왔다면서 남북한이 평화적 합의에 의해 창의적인 복합국가 형태를 구현하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자치권 운동의 진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중국이 대만과 홍콩과 관련해 창의적인 해법을 찾아내는 데 분단 한반도의 복합국가 실천경험이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표시했다.

이 책은 강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패권적인 시각이 아니라 국가 체제의 경계에 있는 약자의 관점에서 동아시아 공생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강자는 독점과 지배를 원하지만 약자는 공생과 나눔을 원한다는 점에서, 핵심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은 실질적인 공생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의 동아시아 정세를 보면, 미-중 갈등이 점점 심화되면서 회색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걱정도 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생의 동아시아'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에 대한 욕구가 더욱 절실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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