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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Apr 11. 2022

<파친코>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본 재일동포 고단한 삶

<파친코>, 이민진, 순자, 선자, 윤여정



최근 재미동포 1.5세 소설가 이민진씨가 쓴 재일동포 가족 연대기 <파친코>(문학사상,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2018년 3월)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애플TV+가 드라마를 만든 것이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호평과 함께  인기를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애플TV+의 드라마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책은 한국어로 번역된 2018년 봄에 읽은 바 있다. 이 책이 2017년 영어로 출간되자마자 영미권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감동하고 추천한 책이라는 얘기가 전해진 터였다. 당시 나는 오사카총영사로 내정되어 부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소설의 주무대가 오사카인 만큼 읽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책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은 지 4년 정도 됐으니 대강의 줄거리는 알지만 구체적인 얘기는 가물가물해졌다. 그래서 애플TV+로 다시 각광을 받게 된 것을 계기로 서가에 꼽혀 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지만 비교적 가벼운 소설의 경우 반복해 읽은 데는 괜한 저항감이 따른다. 등산을 할 때 올라갔던 코스로 다시 내려오기 싫은 것과 마찬가지 심리라고나 할까. 하지만 어떤 때는 반복이 지루함이 아니라 새로운 발견을 선사할 때가 있다. 이번 <파친코>의 재독이 그랬다.


 이 책을 재독하면서 무엇보다 이 소설의 주요 무대인 오사카가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소설에서 빈민굴로 묘사됐던 재일동포 밀집지역인 이카이노(지금은 이쿠노구와 히가시나리구로 변경)를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맛봤다. 이카이노의 중심지였던 이쿠노구 코리아타운은 지금 한류의 중심지로 완전히 탈바꿈한 상태다. 또 일본에 살면서 파친코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지만 파친코를 경영하는 재일동포들을 많이 만난 적이 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그 세계를 더욱 쉽고 생생하게 이해하게 됐다. 재일동포 가운데는 파친코로 부를 이룬 사람이 꽤 많다. 지금 일본에서 가장 큰 파친코 그룹인 마루한을 운영하는 한창우(지금은 한국이름으로 귀화해 일본인이 됨)씨가 대표적인 예다. 파친코를 운영하는 동포들은 그 업종을 유기업이라고 한다. 아마 파친코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리고 이들은 파친코로 돈을 번 뒤에는 건설업, 요식업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도 음습한 이미지에서 탈피하려는 시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파친코는 일본 사회의 차별 때문에 어엿한 직장에 취업할 수 없었던 재일동포들에게 부를 가져다 주는 수단이었지만 나쁜 평판이 따라붙는 업종이기도 하다. 이민진씨가 책 발문에 쓴 신세진 사람들의 명단에서 총영사 시절 알게 된 몇 명의 익숙한 이름을 발견한 것도 재독의 작은 기쁨이었다.


되돌아 보니, 내가 3년 동안 오사카총영사로 일하면서 이 책을 꽤 많이 의식했던 것 같다. 동포들을 만날 때마다 재미동포가 쓴 <파친코>라는 소설이 있다는 소개를 자주  했고, 저자인 이민진씨를 오사카로 초대해 강연회를 하려는 시도를 수 차례 하기도 했다. 그가 한국말도 일본어도 전혀 하지 못한다는 정보를 알고, 강연회를 하려면 영어와 일본어 통역이 필요하겠다는 마음의 준비도 해뒀다. 하지만 나의 열의와 달리 이민진씨 초청 강연회는 전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나는 미국에서 소수자로 사는 재미동포가 일본의 소수자인 재일동포를 소재로 쓴 소설이 재일동포에게 같은 소수자로서의 보편성이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민진씨 초청 강연회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 감염 확산이라는 사정도 있어 동력이 붙지 않았다. 더 큰 요인은 바닥의 관심이 크지 않았다. 재일동포들은 내가 말할 때는 관심을 보이면서도 책 내용을 잘 몰랐기 때문인지 열성을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2020년 7월에야 문예춘추에서 이 책의 일본어판이 나왔으니 그럴 만했다. 더욱이 책이 나온 시점은 코로나가 창궐했던 시기였다. 그래도 나는 내가 재임하면서 이민진씨를 초청해 오사카에서 강연하지 못한 것이 아직까지 못내 아쉽다.


이 소설은 한일병합이 이뤄진 1910년부터 1989년까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재일동포 4대가 디아스포라로서 일본 땅에서 악전고투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윤여정이 드라마에서 분한 선자(한국소설에서는 '순자'로 나옴)를 기준으로 선자의 어머니 양진, 남편 이삭, 아들 노아와 모자수, 손자 솔로몬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이국에서 고단하지만 꿋꿋하게 사는 재일동포 4세대의 모습이 한 편으로 안스럽고 또 한 편으로는 감동적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재미동포와 재일동포의 차이가 눈에 바로 들어왔다. 이것은 재미동포 출신의 작가가 아니면 포착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삭의 둘째 아들 모자수는 아들 솔로몬이 파친코의 굴레를 벗어나도록 미국 컬럼비아대에 유학시킨다. 솔로몬은 졸업 후 영국계 금융회사의 도쿄지사로 부임하면서 그의 대학 동창이자 연인 한국계 미국인 피비와 함께 온다. 그러나 피비는 일본 생활에 전혀 적응하지 못한다. 미국의 이민자 시각에서도 일본의 이민자의 생활이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재일동포들이 일본에서 출생했으면서도 한국여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 한국 이름과 이름 병행해 살아야 하는 것, 지문 날인을 해야 하는 상황, 노골적인 차별은 미국 이민자의 눈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결국 피비는 솔로몬과 결혼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나는 이 대목을 이민진씨가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일본의 편협함을 고발하는 것이라고 봤다. 이 소설의 결말이 솔로몬이 아버지의 파친코를 물려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비슷한 메시지일 것이다. 애플의 드라마에 대해 일본 사람들의 반발이 많다는 뉴스를 봤는데, 이런 고발이 그들을 거북하게 했을 것이다.


<파친코>는 그동안 특수성의 영역에만 머물던 재일동포의 삶을 보편적인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이 소설은 그런 기준으로 불 때조차 재일동포는 너무 열악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여실하게 드러내며 재일동포 문제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파친코>의 미흡한 점도 있다. 1910년부터 1989년까지의 시기를 다뤘으면서도 재일동포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을 큰 역사적 사건이 생략되거나 스쳐지나가듯이 다뤘다. 1950년 일어난 한국전쟁과 이것이 재일동포에 준 영향, 남북 분단과 함께 일본 안의 민단과 총련의 치열한 대립과 갈등, 재일동포의 민족교육운동 등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소설 중간 중간에 에피소드로 지문날인, 북송,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내용이 삽입돼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재일동포의 고난의 삶을 재현하는 데 턱없이 모자라다. 


이 책은 재일동포를 소재로 한 최초의 영어 소설로 꼽힌다. 이제까지 일본어로 쓰인 재일동포 소설이 영역돼 소개된 적은 있지만 처음부터 영어 원작으로 쓴 소설을 없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도 이 소설은 충분히 주목받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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