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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Apr 25. 2022

'낙제점 한국언론'을 고발한다.

<버릴 관행, 지킬 원칙>, 좋은 언론, 기레기

한국 언론을 점수로 매긴다면 낙제점이다. 어느 한 분야가 낙제가 아니라 전 분야가 낙제점이다. 이런 평가는 새로울 것도 없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매년 38개 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2016년부터 19년까지 4년 연속으로 신뢰도에서 꼴찌를 기록한 바 있다. 굳이 국제 기관의 평가가 아니더라도 2022년 3월에 실시된 제20대 대통령선거 보도만으로도 한국 언론이 얼마나 처참한 수준에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가 기획하고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이 낸 <버릴 관행, 지킬 원칙>(2021년 10월)은 말로만 보고 듣던 한국 언론이 얼마나 저급하고 망가져 있는지를 생생하게 글로 밝히고 있다. 점잖게 책 제목을 '버릴 관행, 지킬 원칙'으로 달았지만, 이 책은 한국 언론이 지금 하고 있는 관행을 싹 다 버리지 않으면 독자의 신뢰를 영영 회복할 수 없다는 준엄한 경고를 날리고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이 책을 기획한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는 한국의 저널리즘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인정받는 다른 산업 부문에 걸맞는 발전을 이뤄왔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국내 언론학 교수 몇몇이 만든 연구회다. 이 책을 쓴 필자 8명 중 5명은 언론 현장에서 기자생활을 경험했던 학자다. 이 책이 한국 언론의 문제를 생생하게 고발할 수 있는 것도 현장과 이론을 두루 아는 필자들의 능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한다'는 말이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한국 언론 상황에 이 말을 빗대면, '언론이 학계(국민)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계(국민)가 언론을 걱정한다'는 말보다 더욱 절적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내가 학계를 무시하고 경시해서가 아니라 언론인 출신의 한 사람으로서 언론이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이렇게나마 표시하고 싶었다.


이 책의 머리말(취재 보도 관행에 대한 성찰을 기대하며)의 한  대목은 필자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 언론의 취재 보도 관행에 대한 문제의식이 집약되어 있다. 길지만 옮겨 본다.


"뉴스 미디어는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뉴스의 불확실성을 통제하면서 시공간의 제약과 인력 등 자원의 제한 속에서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뉴스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 언론은 뉴스 수집에서 보도 방식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쉽게 반복할 수 있는 여러 관행을 정착시켜왔다. 객관주의 보도라는 거시적 양식부터 출입처 중심의 취재, 공인된 취재원 중시, 보도자료 의존, 역피라미드식 기사 쓰기 같은 양태들이다.


그러한 취재 보도의 관행들이 만들어내는 한국 저널리즘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과연 언론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며, 이대로라면 한국 민주주의는 과연 지속 가능할까 하는 우려를 떨칠 수 없을 정도로 가능 장애가 심각하다. 디지털 뉴스 공간은 트래픽을 끌려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타블로이드형 뉴스로 뒤덮이고, 진영 논리에 빠져 사실과 주장이 뒤범벅된 기사를 양산하는 정파적 보도로 인해 여론은 분열되고, 언론의 신뢰는 추락하고 있다. 시민 누구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진실되고 공정하며 높은 수준의 품질을 구현하는 좋은 저널리즘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규탄하는 필자들의 말에 더하고 뺄 말이 거의 없다. 문제는 이들의 지적하는 언론 상황이 점차 개선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더욱 악화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책은 모두 5개 장으로 나뉘어 있다. 저널리즘의 원칙과 윤리를 다룬 1장(9 편의 글)과 사실 확인과 검증을 취급한 2장(11편)이 전체 내용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저널리즘의 기본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취재 보도 윤리와 사실 확인이 언론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고, 필자들이 이에 관해 할 말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3장은 취재원과 인용(7편), 4장은 뉴스 기사와 영상(8편), 5장은 분야별 보도(7편)를 각각 다루고 있다. 5개 장으로 나뉘어 있지만, 읽다 보면 장의 구별이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서로 중복되거나 연관되어 있는 내용이 많고, 모두 현장에서 벌어지는 나쁜 관행을 지적하고 질타하고 개선을 촉구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알려졌다.", "전해졌다." "~라는 관측이다." 등의 무주체 피동형 문장과, 기사의 서술어에 "강조했다."   "분노했다." "주장했다"는 감정적 표현은 기자들과 데스크의 각성으로 가장 쉽게 고칠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따옴표 제목과 따옴표 기사의 남발도 그렇게 개선이 어렵지는 않다고 본다. 다만 따옴표 제목은 언론사나 기자들의 정치적 편향을 마치 객관적인 보도인 것처럼 위장하는 데 주로 쓴다는 점에서 무주체 피동형 문제보다는 개선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대선 뒤라는 시기의 특수성 때문이라 그런지 여론조사 보도의 문제점을 다룬 5장의 '조국 정국과 여론조사 보도 : 정치갈등 국면마다 넘쳐나는 여론조사 보도의 허실'과 '21대 총선 여론조사 보도의 현주소'가, 나의 눈에 쏙 들어왔다. 두 글은 오차범위 안의 여론조사를 순위로 표시하는 보도, 다른 기관의 여론조사를 시계열의 변화인 것처럼 보도, 전략커뮤니케이션의 도구화한 여론조사 보도의 문제점을 생생하게 잘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보도가 앞으로 있을 6월 지방선거 보도에서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이 책이 20대 대선 한 참 전인 2021년 10월에 출간됐지만, 21대 대선 당시의 여론조사 보도는 이 책에서 지적한 것보다 더욱 악화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보도 문제 하나만 봐도, 언론계가 문제를 몰라서 고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다 알면서도 안 고친다고 보는 게 맞다. 현상을 보면, 우리나라 언론은  '진실되고 공정하며 높은 수준의 품질을 구현하는 좋은 저널리즘'은 안중에 없고 거짓이고 불공하고 저열해도 좋으니 언론사의 정치적 입장이나 장사에 유리한 기사'에만 매달리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 언론인과 언론사의 대오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이 책의 경고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해법은 시민밖에 없다. 한 나라의 정치가 시민의 수준을 반영하듯이 한 나라의 언론도 시민의 수준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기자나 언론사가 좋은 언론, 신뢰받는 언론에 관심이 없으면, 시민이 좋은 언론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 시민이 좋은 언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언론의 사정을 잘 알아야 한다. 이 책은 한국 언론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파악아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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