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태규 Apr 23. 2022

남의 일' 아닌 '브라질의 연성 쿠데타'

<위기의 민주주의>, 브라질, the edge of democracy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 간간이 브라질의 민주주의 후퇴 사례를 거론했다. 후보자 텔레비전 토론회에서도 "민주주의의 위기는 경제의 위기를 불러옵니다. 브라질이 대표적인 케이스죠. 혹시 '위기의 민주주의'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라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물은 바 있다. 그때 윤 후보는 간단하게 "봤다"고 하면서 시큰둥하게 넘어갔다. 나도 그런 영화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때까지 영화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후보의 말에 크게 공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대선이 끝난 뒤 코로나로 입원하면서 넷플릭스를 보게 됐고, 넷플릭스를 보면서 우연히 넷플릭스가 2019년 제작해 방영하고 있는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를 만났다. 한국과 브라질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 매우 비슷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몇 일 간격을 두고 2시간 짜리 다큐를 두 번이나 시청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브라질의 기득권 세력이 눈에 가시인 좌파세력의 지도자, 즉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과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을 기득권 언론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서 '사법 쿠데타'와 '의회 쿠데타'를 통해 축출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지켜줄 후보로 등장한 극우파 정치인 자이르 보우소나르(일명, 브라질의 트럼프)가 대통령 자리를 차지한다.


이 영화의 세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대략의 가닥을 보면,  '브라질 민주주의의 위기'와 '한국의 민주주의의 위기'는 하나의 뿌리에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물불을 가리지 않는 기득권 동맹의 이익 지기키와 이에 속수무책인 민주세력의 대응이다.


브라질 기득권 세력의 룰라 전 대통령과 지우마 대통령 축출의 명분은 그럴 듯했다. 룰라와 지우마의 혐의는 각각 브라질의 국영석유회사 페트라스브라질의 검은 자금을 받았고, 정부 회계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룰라가 창당한 노동자당이 발본적인 정치개혁에 나서지 않고 기득권 세력과 적당하게 타협하는 정치를 한 것이 검찰 수사의 빌미를 준 면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침해하는 세력을 쫓아낼 절호의 기회를 잡은 기득권세력의 공격은 무지막지했다. 그들은 부패의 구체적인 증거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여론조작을 주요 무기로 사용했다. 그에 동원된 세력은 검찰을 비롯한 사법부, 기득권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와 언론이다. 이들은 강고한 '삼각 편대'를 형성해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고 확산하며, 기어코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좌파 세력을 축출에 성공했다.  


우선 검찰이 나선다. 검찰은 '세차 작전'으로 정치권과 경제계의 부정부패 수사에 착수한다. 그동안 관행처럼 굳어졌던 정경 유착 비리를 전례없이 파헤치는 검찰의 모습에 많은 시민들이 열광하고, 수사를 주도하는 세르지우 모루 검사는 일약 국민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는 비리를 발본적으로 뿌리뽑는 데로 나가지 않고 룰라와 지우마로 대표되는 좌파 세력의 제거에 촛점을 둔 편파 수사로 흐른다. 그리고 검찰의 수사를 기득권 세력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의회와 기득권세력의 나팔수인 미디어가 증폭하면서 여론몰이로 쿠데타를 성공시킨다.


'브라질의 위기'에서 나온 좌파 축출 쿠데타는 무력을 앞세운 전통적인 군사 쿠데타가 아니었다. 검찰과 의회, 미디어를 앞세운 '연성 쿠데타'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섬뜩하고 무섭다.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비교적 강고하게 정착된 우리나라에서도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군사 쿠데타보다는 이런 식의 연성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조국 사태'를 포함한 검찰의 편파적인 수사 행태와 기득권 미디어들의 응원 보도, 그에 이은 문재인 정권의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의 집권을 브라질과 비슷하 연성 쿠데타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구체적인 사건의 전개 과정은 다르지만, 검찰과 미디어, 우파 정치세력, 부자들의 강고한 동맹이 윤석열 정권 창출의 원동력이 됐다는 점은 브라질의 경우와 매우 비슷하다.


나는 이 다큐를 보면서 룰라가 이 사태를 되돌아보면서 "하원에서 새로운 언론규제법을 발의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고 말하는 대목이 아직도 귀에 어른거린다. 그만큼 언론이 룰라의 감옥행과 지우마의 탄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이 다큐는 브라질은 9대 가문이 브라질 언론을 좌지우지하고 있고, 아직도 플랜테이션 농장주 가문이 수백년과 노예제와 특권으로 상징되는 브라질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작동하려면 기득권에서 자유로운 제대로 된 언론이 필요하다는 경고처럼 들렸다.


또 한 가지 눈에 띈 것은 브라질은 기득권 세력과 피지배세력이 극명하게 양분되어 있지만, 노조를 중심으로 한 피지배세력의 전투력이 대단하다는 점이다. 룰라가 감옥을 가기 전에 머물렀던 금속노조 회관 주위에는 수십만명의 지지자들이 모여 룰라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부자들은 계층 투표를 하는 데 반해 빈자들은 계층 배반적 투표를 하는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 다큐를 만든  페트라 코스타 감독은 브라질의 유수한 건설회사를 창업한 사람의 손녀이자 혁명가 부모의 딸이다. 기득권 세력의 일원이자 반기득권세력의 비판자인 덕에 양쪽의 인물들에 자유롭게 깊숙하게 접근해 그들의 육성을 담았다. 그것이 이 다큐의 최대 장점인 것 같다.


이 다큐의 마지막에 룰라는 아직 감옥에 있고, 모루는 보우나소르 정부의 법무장관으로 있다는 자막이 나온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해 12년 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던 룰라는 2021년 3월 대법원의 실형 무효 판결로 석방되어, 10월 실시되는 대통령선거에 유력 후보로 다시 부상되고 있다. 반면, 룰라를 감옥에 보냈던 모루는 2021년 4월 보우소나르 대통령을 비난하며 법무장관 직을 사퇴했다. '위기의 민주주의'가 전했던 브라질이 올해 10월 어떤 반전을 이룰지 궁금하다.


한국의 민주주의에 위기를 느끼는 사람들은 <위기의 민주주의, 영어 제목 The edge of democracy)를 찾아 보면, 좋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강추한다.


작가의 이전글 질문은 모든 뉴스의 출발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