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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May 23. 2022

TV 뉴스도 '국제 열등생'이긴 마찬가지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 텔레비전 뉴스, 품질

좋은 저널리즘(quality journalism)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핵심 조건이라는 믿음 아래, 뜻 있는 언론학 교수들이 2016년 창립한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가 신문 기사의 품질 비교연구에 이어 제2탄으로 내놓은 책이 <텔레비전 뉴스의 품질>(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20년 11월)이다. 첫 작품(<기사의 품질>)이 나온 지 2년 6개월 만에 나온 책이다. 그만큼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들어간 책임을 짐작할 수 있다. 책 페이지 수만 봐도 전작에 비해 100 페이지 이상 두껍다. 

이 책은 국내 지상파(KBS, MBC, SBS)와 종합편성 방송사(JTBC, TV조선, 채널 A, 매경TV) 7곳의 대표적인 뉴스를 미국의 NBC, 영국의 BBC, 일본의  NHK  비교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전에도 국내 방송 뉴스와  해외 방송 뉴스를 비교하는 작업은 꾸준히 이뤄졌지만 소수의 방송사를 대상으로 특정한 주제에 맞추어 제한적으로 이뤄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필진을 밝혔다. 이번 연구는 국내 방송 뉴스 시장을 주도하는 지상파와 종편 모두를 3개 국의 대표 방송사와 비교한 전례 없이 폭 넓은 규모일 뿐 아니라 뉴스 품질을 주제로 44개 항목에 걸쳐 다각적으로 비교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회서비스관계망(SNS)의 확산으로 신문, 방송 가릴 것 없이 저널리즘 생태계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큰 환경의 변화를 겪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파괴' 현상이 뉴스의 유통, 소비 지형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한국의 뉴스 생태계도 디지털 파괴의 큰 영향 속에 있다. 특히, 종이 신문을 비롯한 전통매체에 대한 의존도가 날개 없는 새처럼 추락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방송 뉴스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국내외에서 실시되는 매체 선호도 조사를 보면, 방송 뉴스가 종이 신문 등 다른 매체에 견줘 압도적으로 앞선다. 그러나 선호도가 높다는 것이 바로 품질이 높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보면 그 실상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해외 대표 방송과 우리 방송을 비교한 결과, 뉴스의 심층성, 다양성, 투명성, 공정성 같은 지표 대부분에서 해외 방송에 뒤처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보면, 국내 방송 뉴스는 리포트의 시간(1분 29초)이 해외 방송 뉴스(1분 36초~2분 34초)에 비해 사실 전달의 양과 깊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뉴스 형식도 단순한 사실 전달 위주의 스트레이트형 기사가 절반(47.7%)에 달하고, 정보의 출처는 보도자료(44.2%)와 발생 사실(33.5%)에 크게 의존했다. 반면 미국과 영국의 방송은 스트레이트형(3.2~6.5%)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정보 출처도 기획한 내용(33.9~54.8%)이 많았다.

신문 기사 비교 때와 마찬가지로 기사에 등장하는 취재원 수, 신원이 드러나는 투명 취재원 수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다른 나라에 없는 한국 신문 기사 특유의 관행이 방송 뉴스에서도 그대로 남용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취재원의 발언을 기사 제목으로 삼는 것이 대표적이다. 뉴스를 자의적으로 왜곡할 수 있는 이런 관행은 다른 나라 방송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리포트의 마지막에 주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게 한 채 주관적 생각을 담는 문장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라는 관측이 있다"로 끝나는 매듭 말이다. 국내 방송 뉴스에서는 26.5%가 이런 문장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3개 해외 방송에서는 거의 없었다. 

방송 뉴스는 기사 뿐 아니라 영상과 소리가 들어가는 것이 특색이다. 그래서 영상과 소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요소다. 국내외 방송 뉴스의 비교 결과, 화면과 소리를 인위적으로 변조 또는 편집하는 보도들이 국내 방송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예를 들어, 일부라도 모자이크(또는 화면 흐리기) 처리를 한 리포트의 비율이 국내 방송은 절반(53.2%)을 넘는 반면에 NBC와 BBC, NHK는 각각 12.9, 9.7, 1.6% 에 불과했다. 국내에서는 10건에 2건 정도 들어가는 음성 변조도 해외 방송에서는 거의 없었다. 이런 영상과 소리의 인위적인 변조는 뉴스의 가장 중요한 사실성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국내 방송 뉴스와 해외 방송 뉴스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품질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지만, 국내 방송끼리의 비교에서는 커다란 차이가 없고 고만고만했다. 물론 인력과 자본에서 우위에 있는 공중파가 종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품질의 뉴스를 생산하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방송산업의 중추이며 방송 저널리즘의 품질을 이끌어가는 리더인 공영방송이 다른 나라 공영방송에 비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두드러졌다. 

이 책은 한국 방송 뉴스의 문제를 야기한 원인으로 시청률 지상주의에서 보듯이 저널리즘 규범보다 상업주의 규범의 중시, 취약한 취재 환경 속에서 양산되는 정형화된 뉴스 생산 구조, 당일치기식 취재 보도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피동적이고 피상적 뉴스, 관행과 외부 환경을 탓하며 무시되는보도 원칙을 꼽았다. 방송 현장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뉴스의 품질 저하가 우리 사회의 문화와 환경 등에 기인하는 것이 많다고 항변했으나, 연구진은 문화와 환경 요인을 인정하면서도 너무 쉽게 문화와 환경 탓을 하며 저널리즘 원칙을 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책은 "이번 연구 결과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언론의 신뢰와 평판이 추락하는 원인을 외부 환경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언론의 본질인 뉴스의 품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방송 뉴스 혁신의 방향으로 4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시청자들이 신뢰하고 찾을 수 있는 고품질 뉴스를 만들어내는 과제에 집중할 것, 둘째 뉴스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통해 경쟁자와 질적인 차별점을 지니는 자신만의 뉴스를 만드는 데 역량을 모을 것, 셋째 보도 영상의 사실성을 경시하며 인위적인 가공을 당연시하는 관행을 바꿀 것, 넷째 시민이 언론을 감시하는 시대를 맞아 시청자앞에서 정직할 것을 제시했다.

 방송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과 방송 뉴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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