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태규 May 30. 2022

한국 민주주의 좀 먹는 '정치 보도'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 브로더, 전통 미디어, 정치부 기자

우리나라 전통 미디어의 뉴스룸은 뉴스 영역에 따라 크게 정치부, 사회부, 경제부, 국제부, 문화부, 스포츠부로 나뉜다. 최근 우리나라의 언론 신뢰도가 선진국 중에서 바닥 수준으로 평가 받고 있는데 그 책임을 기자들에게 묻는다면, 어느 한 특정 부서 기자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전체 부서의 합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책임 있는 한 분야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정치 기사를 쓰는 정치부를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 기사를 담당하는 사회부도 유력하게 물망에 오를 수 있겠지만 검찰 기사는 사실상 정치 기사와 성격이 비슷하므로 이것이 정치 기사가 가장 큰 문제라는 평가를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의 정치 보도>(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김준형 등 10명 지음, 2022년 1월)는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가 '저널리즘의 발전이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생각 아래 시리즈로 내고 있는 한국 저널리즘 현장에 대한 비판서 중 가장 최신작이다. 책을 제20대 대선(2022년 3월 9일) 투표일 전인 2022년 1월에 출간한 것으로 보아 대선 보도에 경종을 주자는 의미도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20대 대선 보도는 이 책의 지적에서 한 발짝도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후퇴되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정치 보도는 '빨아서도 쓸 수 없는 걸레'처럼 구제 불능 상태에 있는 것 아니냐는 좌절감마저 든다.

이 책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은 한국 언론의 후진성, 그 가운데서도 정치 보도의 후진성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독립 변인으로서 정치 보도를 분석하고 있다. 정치가 후진 것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정치인에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접근법에서 벗어나 정치 보도가 바뀌면 정치인과 정당, 국회 등 정치 현장의 일하는 방식도 바뀌면서 시민 중심의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정치 보도를 분석했다. 

이 책은 1부(1, 2, 3 장)와 2부(4, 5, 6장)로 돼 있는데, 1부는 한국의 정치 보도를 미국의 정치 보도와 비교하는 연구들로 구성됐다. 2부는 한국과 미국의 정치 보도의 현장을 다뤘다. 나는 1부보다 2부를  훨씬 재미 있게 읽었다. 특히, 우리나라 정치부 기자 6명을 집중 인터뷰해 쓴 5장(디지털시대의 정치 기사 취재 관행)은 우리나라 정치 기사가 어떤 과정을 통해 생산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는 1990년대에 정치부 기자로 현장을 취재했었는데 그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사를 취재하고 있었다. 이른바 각 사 기자 5~6명이 '구미'라는 조직을 만들어 카톡방을 운영하며 '협업(담합?)' 취재하는 방식이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기사 생산량은 늘고 취재 인력은 부족한 상태에서 나온 '어느 정도 불가피한 창조물'이겠지만, 나는 이것이 현장 취재를 경시하고 붕어빵식 기사를 양산하는 '괴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톡방의 성원끼리 역할을 분담해 취재한 내용을 모아서 그것을 토대로 일상적으로 기사를 쓴다면, 회사 별로 차이가 있는 기사를 어떻게 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반면, 4장(정치보도의 새로운 지평)은 미국의 전설적인 정치 기자인 데이비드 브로더가 60년 가까이 취재 현장을 지키며 '정치 기자의 기자'로 명성을 얻는 과정을 전기적 방식으로 추적했다. 그는 이른바 발품을 파는 취재를 중시했다. 즉, 기사 하나를 취재하기 위해 기꺼이 시민 70명을 만나는 시민 중심의 정치 기사를 썼다. 또 정치인의 말을 전하는 기사로는 정치인의 선전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음을 간파하고 정치 보도에서 '사실 확인(팩트 체크)'를 중시했다. 우리나라 정치부 기자들이 정치인의 말이라는 '객관성의 방패' 에 숨어 마구 전하는 것과 전혀 딴판의 접근법이다. 브로더의 예는 우리나라 정치부 기자들이 정치인의 말 전달 중심으로 얼마나 안이하게 보도하고, 그럼으로써 정치 기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는지 반면교사로 보여준다. 

이 책은 정치 보도 한 분야만 다루고 있지만 분량은 456페이지나 된다. 그만큼 우리나라 정치 보도의 문제에 대해 저자들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듯하다. 실제 책을 읽어 보면 우리나라 정치 보도가 왜, 어떻게 문제인지 잘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정치 보도의 개선을 위해 다섯 가지 제언을 하며 끝을 맺고 있다.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는 '정치보도의 미래를 위한 제언'이란 제목의 에필로그에서 @시민이 주어로 등장하는 기사를 더 많이 쓸 것 @정치인 중심의 취재에서 탈피할 것 @사건성 기사에서 탈피할 것 @배타적 정당 출입기자제를 탈피해 일 중심 취재 체제를 갖출 것 @정치 기자는 현실정치와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전문성을 기를 것을 제시했다. 

우리나라의 정치부 기자들이 하나도 소홀함 없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들이지만, 대다수 기자들은 십중팔구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탁상공론이라며 외면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20대 대선 보도에서 목도했던 것처럼 우리나라 정치 보도는 더욱 열화해 갈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많아진다면 그들도 마냥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와 개선책을 외면하진 못할 것이다. 비관적인 현실이지만 이런 책의 존재로 낙관의 끈을 완전히 놓을 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 선거 여론조사, 무엇이 문제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