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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un 20. 2022

아베 정권의 폭주에 정면으로 맞선 여성 저널리스트

도쿄신문, 아베, 모치즈키, 여기자

2020년, 제43회 일본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신문기자>라는 영화가 작품상, 남우 주연상, 여우 주연상을 휩쓸었다. 일본 아카데미상은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최고의 영화상이다. 그때 여우 주연상을 받은 배우가 한국의 심은경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가 한국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는 정권 핵심과 연결된 대학 비리 문제를 고발하려던 내각 고위 관료의 자살 사건과 함께 날아온 제보를 한 신문사의 여기자(심은경 분)가 추적하는 내용이다. 영화는 2019년 9월에 일본에서 개봉됐다.


당시 일본 사회를 뜨겁게 달구던 모리카케 사건(모리토모학원 국유지 헐값 불하 사건과, 오카야먀에 있는 카케학원의 수의학부 부정 신설 사건을 아울러 부르는 사건 이름)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다. 모리카게 사건은 각종 언론 보도를 통해 당시의 아베 총리 부부가 깊게 관여한 것이 속속 드러났지만, 아베 정권은 부인과 무시로 일관했다. 아베 총리는 "나와 나의 처가 관여된 것이 드러나면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 말이 오히려 정권 핵심층에 총리를 물러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철벽 방어' 신호로 작용했다. 총리의 이런 공언이 나온 뒤 모리토모학원 국유지 헐값 불하와 관련한 재무성 문서들이 조작되고 조작에 관여했던 오사카국세청 직원이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 수의학부 부정 신설과 관련해서도 문부성 차관 출신이 '총리의 뜻'이라는 문서의 조작 사실을 증언했는데도 내각조사실에서 그의 유흥가 출입 사실을 조사해 언론에 폭로하고 문서의 존재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 일도 일어났다.


한국의 배우 심은경이 주연 배우로 발탁된 이유도 이 영화가 일본 정권 핵심의 비리라는 뜨거운 감자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 정권 핵심의 비리를 파헤치는 여기자  배역을 일본 배우들이 부담감 때문에 맡지 않으려고 해서 고육지책으로 한국 배우인 심은경에게 배역을 맡겼다는 것이다. 심은경의 일본어가 유창하지 못한 탓에 영화에서는 심은경이 미국으로 이민 간 일본계 미국인의 자녀로 설정됐다. 심은경은 이런 우여곡절 끝에 주연 여우 역을 맡았지만 일본 최고의 영화상 수상식에서 여우 주연상을 거머쥐었으니 '뜻하지 않은 행운'을 잡은 셈이다.


이 영화는 최근에는 넷플릭스에서 리메이크 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 같은 감독이 영화를 6부작으로 리메이크하면서 심은경이 맡았던 여우 주연은 일본 배우로 바꾸었다.


이 영화의 원작이 도쿄신문의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가 쓴 <신문기자>(카도카와신서, 2017년 10월)다. 이 책은 모치즈키 기자로서 정권이 숨기려는 문제를 추궁하며 성장해 가는 모습을 자전적으로 그리고 있다. 영화는 이 책을 바탕으로 하면서, 모리카케 사건을 조합해 정권이 한 대학에 생물학 무기를 만들기 위한 연구시설을 겸한 신설대학을 세우려는 음모가 있는 것으로 줄거리를 각색했다. 하지만 책은 권력이 숨기려는 진실을 어떻게 하면 양지로 끌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분투하는 기자의 이야기를 큰 줄거리로 삼고 있다.


모치즈키 기자는 초등학교 시절 연극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연극에 매료된다. 그래서 꿈이 연극 배우였다. 하지만 중학교 때 기자 출신의 사진작가가 쓴  <남아프리카, 아파트헤르트공화국>이라는 책을 접하고 기자가 되겠다고 진로를 바꾼다. 대학 시절에 이른바 전국지와 전국 방송국 입사의 문을 두드렸으나 실패를 거듭하고, 결국 지방지와 전국지의 중간 정도의 신문인 주니치그룹의 블럭지 <도쿄신문>에 입사한다.


도쿄신문에 입사해 치바, 가나가와, 사이타마지국에서 사회부 사건기자를 하면서 취재 경험을 쌓는다. 사건 기자를 할 때 그가 가장 감명 깊게 들었던 말이 한 경찰서 간부의 다음과 같은 말이다. "머리가 좋다거나 어느 회사 기자라거나가 아니라 내가 신문기자에게 정보를 주는 것은 그 기자가 사안의 본질에 관해 얼마나 정열을 가지고 생각하느냐다."


이렇게 사건 현장에서 취재력을 단련한 그는 사회부 검찰기자, 경제부 기자로 일하면서 일본치과연합과 정권과의 유착비리 문제, 무기수출 3원칙의 변경이 가져오는 문제 등의 굵직한 기사를 쓰며 주목을 받는다. 이 책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아베 정권의 철벽 수문장 노릇을 했던 내각 관방장관 스가 요시히데와 대결이다. 그는 모리토모 사건이 <아사히신문>에 처음 보도된 뒤 편성된 특별취재팀의 일원으로 2017년 6월 6일 사회부 기자 자격으로 처음 관저의 관방장관 기자회견에 참석해 질문 공세를 펼친다. 보통 의례적인 질문 몇 개와 함께 5분~10분이면 끝나던 관방장관 기자회견이 그의 출현과 함께 30여 분으로 늘어나는 등 분위기가 일변했다. 두 번째 회견 참석 날인 6월 8일에는 혼자 무려 23개의 질문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그는 내각과 정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공식 통로인 관방장관 회견이 정부 관련 취재에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미리 준비된 질문을 거침 없이 쏟아냈지만 당사자인 스가 관방장관을 비롯한 관저의 관리, 관저 기자클럽 회원들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에게 유언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그는 당당하게 질문 공세로 맞선다. 카케학원 문제와 관련해서는 '괴문서'로 치부했던 관방장관의 발언을 추궁해 문부성이 재조사를 하도록 하기도 했다. 기득권 세력에 편입해 있는 관료와 기자들은 그의 거침 없는 질문 공세를 부담스러워하고 막으려고 애를 썼지만, 그의 활약은 이미 온라인 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덩달아 전국에서 그를 격려하고 후원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그가 속한 도쿄신문에는 격려 전화가 쇄도하고 부수 신청도 줄을 이었다. 또 개인 sns인 트위터의 팔로워 수가 1천명 전후에서 4만5천명(현재 26만 7900명)으로 늘고, 페이스북 친구도 상한인 5천명에 금세 도달했다.


"권력자가 감추고 싶어하는 것을 밝은 세상으로 끌어낸다." 이 말은 그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말이다. 그는 정권이 감추려고 하는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특종주의를 넘어야 한다고 말한다. 특종을 위해 각자 흩어져 취재하는 것보다 기자들끼리 서로 연대해 스크럼을 짜고 권력자를 추궁하는 게 필요하고 유효하다는 것이다. 초년 시절 특종을 위해 물불을 안 가렸던 기자가 관방장관과 혼신의 대결을 하면서 얻은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일본 기자클럽의 문제도 곳곳에서 나온다. 한국의 기자실의 원형이 일본의 기자클럽이라는 점에서 보면, 흥미 있는 비교를 할 수 있다. 아쉽게도 지금 우리나라에는 불행하게도 기자클럽과 권력에 맞서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질문으로 맞서는 모치즈키 같은 기자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모치즈기 같은 기자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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