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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ul 04. 2022

최악의 한국 저널리즘, 어떻게 바로세울 것인가.

한국형 저널리즘 모델, 기레기, 기더기

한국의 저널리즘이 최악의 상황으로 전락했다는 얘기는 이제 더 이상 화제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가 됐다. '기레기'(기자+쓰레기의 합성어)를 넘어 '기더기'(기자+구더기)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의 저널리즘이 처한 참담한 상황을 잘 대변한다.

<한국형 저널리즘 모델>(이화출판, 이재경 지음, 2013년 12월)은 위기에 처한 한국 저널리즘의 현상을 기사, 기자 교육, 철학 세 분야로 나누어 분석하고 한국 저널리즘이 선진화로 나갈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 책이다. 저자가 맺음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소유와 경영'의 문제를 다루지 못한 아쉬움과 한계는 있지만 한국 저널리즘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보고 그를 극복할 방안까지 내놓은, 매우 귀중한 책이다.

 저자인 이재경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당시) 교수(2022년 2월 퇴직)는 머리말에서 "독자로, 시청자로, 현장에서 일하는 기자로, 그리고 공부하는 관찰자로 한국 저널리즘과 인연을 맺은 지 40년에 이른다. 지난 20년 동안 많은 학생들을 현장 기자로 보내왔다. 이 책은 그러한 여정을 거치며 단단해진 생각들을 정리한 결과물이다"고 말했다.  저자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 책은 한국의 저널리즘 선진화를 위해 수 십년 동안 고투해온 이 교수가 혼신을 기울여 쓴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모두 5부로 구성돼 있다. 1부 한국형 저널리즘의 모델의 한계에서는 한국저널리즘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개괄적으로 살피고 있다. 먼저 기사는 가장 중요한 객관적 사실 추구를 외면한 채 갈등 유발적이고 정파적 이념 대결의 선봉 역할에 매몰돼왔다고 지적한다. 또 시험을 통한 신입 기자 공채, 기수를 토대로 한 순환 보직 체제, 정년 제도에 따른 기자 생활의 조기 종료로 요약되는 한국형 기자 제도는 전문성과 경륜을 갖춘 기자를 배출하는 데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모든 저널리즘 활동의 토대가 되는 저널리즘 철학은 식민지 시대부터 현재까지 계몽, 발전, 민주화 등 어떤 목적을 위한 '도구주의'에서 한 번도 제대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한다.즉, 한국 사회는 언론을 언론 자체가 스스로 존재 이유를 갖는 대상으로 인식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2부 '한국형 기사의 특징과 한계', 3부 '기자 제도와 저널리즘 교육 체제', 4부 '한국 사회의 저널리즘 철학 : 자유 언론이 가능하려면'에서는 각각 1부에서 진단한 기사, 기자 교육, 저널리즘 철학의 문제가 나온 배경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한국 저널리즘이 극복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국내외 주요 신문사와 방송사의 구체적인 사례를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과 비교, 대조하는 방법을 썼다. 또 원로 언론인들, 현장 언론인들과 인터뷰와 오랫동안 수집한 자료의 해석을 통해 한국 저널리즘의 문제를 통시적, 총체적으로 점검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제5부 '한국형 저널리즘 모델의 선진화 과제'에 모두 담겨 있다. 4백 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을 읽을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도 5부만 꼼꼼하게 읽으면 이 교수의 문제의식을 잘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 저널리즘은 지나친 정파화로 "시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기구가 아니라 세력 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사회 불안의 주요 원인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처지"라면서 그래도 저널리즘이 사라진 한국 민주주의를 상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한국 저널리즘의 선진화가 필요한 이유다. 

그는 기사 선진화의 과제로는 넷 이상의 투명한 취재원 사용, 넷 이사의 이해 당사자 취재 등의 계량적 품질 개선 외에 의견과 주장의 분리, 사실 확인 체제 확립, 투명성 확보 등의 비계량적 품질 개선 책을 제시했다. 기자 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는 유연화, 전문화, 현장 중심 교육 체제의 내실화를 주요 과제로 꼽았다.유연화의 구체 방안으로는 정년 보장 고용 구조의 계약제 전환, 정년제도 폐지, 보직 연령과 연한의 관습 폐기가 시급하다고 지적했고, 기자의 전문화를 위해서는 각 분야에서 기자가 평생 취재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경영자를 위한 체제라고 할 수 있는 국장-부장 등 관리자 중심의 기자 운영을 현장 중심으로 전환하고, 기자 교육을 위한 투자를 과감하게 할 것을 주문했다.

그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저널리즘 철학의 선진화다. 그는 "무엇이 기사가 되는가에서부터, 특정한 기사를 어느 정도 비중으로 보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바로 저널리즘 철학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어떻게 보면, 기사의 품질이나 기자 제도의 우수성보다 훨씬 무겁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저널리즘 철학과 관련해, 사회 구성원 전체가 명료하게 공유하는 기본 가치가 부재하며 공동체의 구성원 심지어 기자까지 저널리즘의 자기의 이익을 위해 쓰려는 극심한 도구주의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따라서 한국 저널리즘의 선진화는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러하 현실 진단에 모든 구성원들이 동의하는 일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 정치 민주화의 성숙도나 산업의 고도화 단계, 사회의 다원화 수준을 고려할 때, 미국 수정헌법 1조를 뿌리로 하는 미국식 지널리즘 철학을 제대로 수용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 책은 10년 전에 나온 책이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한국 저널리즘의 문제점은 바로 지금 눈 앞에 벌어지는 내용을 묘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10년 전보다 더욱 후퇴한 것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은, 한국 저널리즘이 10년 전보다 전진은커녕 정체 내지 퇴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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