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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ul 11. 2022

인터뷰 기사에 인색한 저널리즘 학계의 통념을 뒤엎는 책

<각별한 당신>, 인터뷰, 음지, 낮은 곳

일반적으로 저널리즘을 공부하는 학자들은 인터뷰 기사를 매우 낮게 평가한다. 


"인터뷰 기사를 통해 기자는 인물이 어떠한 말을 했다는 사실 전달에는 성공할 수 있으나, 그 말의 진실 검증은 도저히 할 수 없다. 기자의 임무는 사실 전달이 아니라 진실 검증이다. 사실과 진실은 별개다. 그래서 인물의 검증 없이 그대로 옮기는 것은 저널리즘 원칙에 어긋난다. 사실의 차원을 넘어 진실의 차원으로 들어오면, 인터뷰 기사로는 인물을 객관적으로 보도할 수 없다."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가 기획해 펴낸 <버릴 관행, 지킬 원칙>(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21년 10월)에 실린 박재영 고려대 교수의 '삼각 확인도 진실 검증도 없는 인터뷰 기사'라는 제목의 글에 나오는 대목이다.


박 교수는 이 글에서 한국 미디어의 인터뷰 기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심지어 '한국 언론의 기괴한 발명품'이라고까지 규정한다. 


"서구 언론에는 인터뷰 기사가 없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종이신문에는 없으며 웹과 앱에서도 찾기가 쉽지 않다. <중략> 인터뷰 기사라는 용어도 없다. 취재원의 말을 잘 정리하기만 한 글을 기사로 쳐주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사정이 이 정도면, 인터뷰 기사는 한국 언론의 기괴한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한국 신문에 인터뷰 기사가 범람하고 있다며, 그 배경이 '경제성 추구의 산물'일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 신문에서만 독특하게 볼 수 있는 전면 인터뷰는 신문 기사의 생산 비용 절감과 신문사 광고 수입 확대 측면을 고려해 적은 품을 들여 지면을 큼직하게, 그러면서도 그럴싸하게 보이게 해주는 묘수라는 것이다.


그는 전면 인터뷰는 생산 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 골치 아프지 않은 사안을 말랑말랑하게 다루므로 해당 인물은 기분 좋게 인터뷰를 수락하고, 갈등 사안의 관련자들은 어쨌든 자기 입장이 보도될 기회이므로 기꺼이 인터뷰에 응한다고 말한다. 더구나 전면 인터뷰는  레이아웃이  시원하니 편집기자도 대환영하고, 마다하는 사람이 없는 효자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한국 신문의 인터뷰 기사에 관한 박 교수의 비판 글이 떠오른 것은, 최근 신문사를 퇴직한 후배로부터 받은 저서가 그의 기자 시절 인터뷰 묶음 집이기 때문이다. 2022년 5월 <한겨레>를 정년 퇴직한 김종철 기자가 '퇴임 기념'(?)으로 그가 토요판에 인터뷰한 글 중 20편을 골라 만든 책 <각별한 당신>(도서출판 사이드웨이, 2022년 5월)을 보내왔다. 김 기자와 개인적인 인연으로 보면, 퇴임식도 참석하고 출판기념회도 참석해 축하해 줘야  마땅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럴 수 없었다. 그런 아쉬움을 담아 꽤 두꺼운 부피의 책을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읽는 동안에 박 교수의 인터뷰 비판에서 이 책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다.


일단 박 교수의 지적처럼 인터뷰 기사는 내재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인터뷰 기사는 아무리 노력해도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의 일방적인 목소리를 전해주는 데서 벗어나기 어렵다. <각별한 당신>도 그런 면에서 한계를 지닌다면 지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인터뷰 기사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필요하고 좋은 면도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이 책을 보면서 했다. 우선, 이 책에 나오는 사람 20명의 면면을 보면 일반 매체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기득권 세력이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인터뷰가 인터뷰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할 수밖에 없는 기본적인 한계가 있지만, 구석지고 낮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외면 받고 무시 받아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발굴해 전하는 것 또한 미디어의 주요한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은 모두 20명이다. 가장 먼저 최초의 성전환 커밍아웃 군인이었던 고 변희수씨가 나오고, 가장 마지막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암투병을 하고 있는 독립연구자 정태인씨가 등장한다. 첫째와 마지막 인터뷰 대상자가 죽음과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이 책의 밑바닥에 흐르는 통저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이 책은 삶의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에 주목하고 그런 부분을 헤쳐 나오려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명을 내 기준으로 분류해 보니, 노동자 및 노동운동가가 3명(신순애, 김수억, 송경동) 학자가 3명(강수돌, 이동현, 정태인) 문화 예술인이 6명(임현정, 달시 파켓, 김덕수, 심재명-이은 부부, 윤선애, 홍순관) 교사가 3명(이준원, 김선희, 이병곤), 기타 5명(고 변희수, 최말자, 김정남, 정재민, 조영학)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비주류이면서 당당하고 대안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인터뷰 기사가 한계가 있다고 해도 이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기자, 매체가 있다는 것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김 기자의 인터뷰는 단지 그들의 목소리만을 들려주지 않는다. 인터뷰의 요체가 질문을 위한 준비가 얼마나 잘 돼 있느냐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김 기자의 인터뷰는 충분한 사전 조사로 친절한 배경 설명과 함께 그들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준다. 이런 인터뷰가 가능한 것은 필시 기자의 역량과 품성의 덕일 것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농익은 고참 기자가 <각별한 당신>들을 더욱 각별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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