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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Oct 09. 2021

위험을 달리는 일본 지역 공관장의 '왼쪽핸들 국산차'

오사카총영사 시절 이야기

일본의 자동차 주행은 영국식으로, 도로의 왼쪽으로 달린다. 따라서 자동차의 운적석은 오른쪽에 있다. 오른쪽으로 달리는 미국식을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정반대다. 우리나라 차는 운전석이 왼쪽이다.  영국식은 마차의 마부가 옆에 손님을 태우고 채찍을 휘두를 때 손님에게 닿지 않도록 하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일본 도로에서 운전을 하는 사람 중에서 '저 사람은 한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이구나'라고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맑은 날에 갑자기 와이퍼가 작동하는 차를 몰고가는 사람이다. 왼쪽 깜빡이를 켜려고 레버를 작동하면, 일본차는 우리나라와 반대이기 때문에 왼쪽 깜빡이가 아니라 와이퍼가 왔다갔다 한다. 대개 여행온 사람이 렌트를 하거나 일본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실수다. 이것은 관행의 차이에서 오는 우스갯거리로 지나갈 수 있는 일화다.


하지만 일본지역 공관장의 공용차량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일본의 자동차 왼쪽 주행에 맞지 않는 '왼쪽 핸들'의 국산차를 모두 쓰고 있기 때문이다. 국산차라도 일본의 도로 사정에 맞는 '오른쪽 핸들'이라면 큰 문제는 없다. 오히려 애초 의도에 맞게 국산차를 홍보하고 간접적으로 국산차 수출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지역 공관장이 국산차를 쓰면서 부딪히는 가장 큰 문제는 사고 위험성이다. 왼쪽 핸들이기 때문에 우회전을 할 때 앞에서 오는 차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도 왼쪽 핸들 공관장 차를 타고다니면서 아찔한 순간을 몇 번 경험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품위랄까 체면의 문제다. 왼쪽 주행이니까 공관장이 타는 위치도 도로에 내리는 쪽인 왼쪽에 앉게 된다. 즉, 운적석 뒤가 공관장의 좌석이다. 기사의 뒤쪽에 앉는 것도 불편하지만, 원래 자리인 운전석 대각선 뒤쪽 자리는 공석이거나 손님 자리가 된다. 때문에 이런 일화도 가끔 일어난다. 한국에서 손님이 와서 내가 정위치인 운적선 뒤쪽으로 가고 손님에게 옆 자리를 권하면, 내 자리를 사양하는 줄 알고 "공관장 자리에 앉으라"고 손사래를 친다.  


 주차장에 들어가거나 톨게이트를 지날 때, 왼쪽 계산대가 없어 운전기사가 내려서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왜 이런 관행이 생겼는지는 대략 짐작이 간다. 오래전부터 국회 등에서 공관장이 비싼 외제차를 사용하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국산차 홍보와 수출 지원을 위해 가급적 국산차를 사용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오곤 했다. 2005년엔 현대, 기아차와 외교부가 국산차 장려를 위한 양해각서까지 맺었다. 최근에도 가끔 국회 외교통일위의 국정감사 등에서 공관장의 외제차 이용 문제를 지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적어도 일본지역 공관장은 국산차 이용에서 해방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일본의 도로사정과 정반대로 설계된 왼쪽 핸들의 국산차는 사고 위험이 크다.  현대차나 기아차가 오른쪽 핸들을 공급해준다면 모르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국산차를 장려하는 게 맞지 않다고 본다. 2005년 외교부와 양해각서를 맺을 당시의 현대, 기아차의 위상과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 지금의 위상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내부에서 거의 공론화되지 않는다. 그냥 공관장끼리 뒷담화 수준에서 수근거릴 뿐이다. 이런 문제가 큰 외교현안에 견줘 너무 사소한 문제이기 때문에 공론화하는 것이 남사스러울 수도 있다. 또 공연히 '민족 정서'를 앞세운 국회나 여론의 비난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어떤 때는 사소한 것이 중요할 때가 있다. 사소한 일이고 귀찮은 사안이라고 미루고 또 미루다보면, 고치기 힘든 나쁜 관행으로 고착된다. 큰 개혁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은 부조리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다.


또 한 가지 공관장 차량 문제와 관련해,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공관장이 공용차량 외에 개인차량을 보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 제도다. 공관장이 개인차량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공휴일 등에 공용차량을 쓸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이유인데, 그것은 그럴 경우에 문제를 삼으면 되는 것이지 의무화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전임자한테 차를 물려받았지만 일본지역은 대중교통 이용이 더 편리하기 때문에 3년여 동안 거의 사용한 적이 없다. 이런 것은 그냥 공관장의 양식에 맡겨도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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