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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Aug 19. 2022

'무소불위의 불패집단' 1% 검사를 폭로한 영화<더킹>

조폭, 영화, 검사, 특수검사

기자들끼리 만나면 흔히 하는 농담이 있다. "기사만 안 쓰면 이 세상에 기자보다 좋은 직업은 없을 거다"라는 얘기다.


아마 기자뿐 아닐 것이다.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떡볶이 장사에게는 떡볶이 안 만드는 떡볶이 장사가 가장 좋은 직업일 것이고, 영화 감독에게는 영화 안 만들면 영화 감독이 천직일 게 틀림없다. 앞 뒤가 안 맞는 말 장난에 불과하지만, 이 농담 속에는 나름대로 전문 직업인으로서 직업정선이 담겨 있다.


기자가 기사를 안 쓰면 기자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 '기사 안 쓰는 기자가 최고'라고 하는 농담 속에는 기사 쓰기가 기자가 하는 일의 핵심이며 기사 쓰기가 기자에게 가장 고된 작업임을 은연 중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나의 경험담을 풀어 놓자면,. 나는 스포츠 경기 관람을 매우 좋아한다. 그런데 신문사를 하면서 평기자 시절에 전혀 스포츠부 경험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 부장 보직을 맡을 무렵 스포츠부를 자원했고 두 번째 부장인 사회부장을 마친 뒤 다시 스포츠부 선임기자를 자원해 현장 기자로 뛴 적이 있다. 그때 내가 주로 맡은 종목이 농구, 축구, 테니스였는데 기사와 관계 없이 취미로 봤던 농구, 축구와 취재를 위해 보는 농구와 축구가 너무 다르다는 것을 절감했다. 취재기자로서 경기를 보니 재미는커녕 부담만 컸다. 즉, 아무리 어떤 것을 좋아하는 기자라고 해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기사를 쓰기 위해 그것을 하는 것은 집중의 방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더킹>이라는 영화를 다시 봤다. 대선이 끝난 뒤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처음 봤고, 최근 두 번째 봤다. 첫 번째 이 영화를 볼 때는 그저 한국 엘리트 검사의 생리를 현실보다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화면에 빠져들어갈 정도로 몰입해 봤다. 그때만 해도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 탄생하긴 했지만 검찰 측근 중심의 인사가 이뤄지지 않은 시점이어서 그리 심각한 생각 없이 영화를 즐겼다. 


그로부터 얼마 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 시절에 측근으로 데리고 있던 6명이 대통령실 핵심 자리를 꿰찼고, 검찰에서 그의 2인자 노릇을 했던 사람이 법무장관 자리에 오르며 '소통령'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또 행정부 곳곳에도 전례없이 검찰 출신이 중용됐다. 그 사이에 '윤파 검찰왕국'을 건설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펴진 것이다.


그래서 검찰 안의 1% 앨리트 그룹이라고 하는 특수부 검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 <더킹>을 다시 보고 싶었다. 두 번째 관람은 이 영화 감상을 써야지 하는 생각으로 봤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내용의 전개를 알고 있었던 탓에 첫 번보다는 흥미가 현격하게 떨어졌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각본과 감독을 맡은 한재림 감독의 통찰력에 놀랐다. 이 영화가 개봉된 때는 2017년 1월이다.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촛불시위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다. 한 감독은 민중의 힘이 가장 강렬하게 분출할 때 이미 '무소불위의 폭력배'(주인공 박태수의 영화 중 대사, 조인성 분)인 특수 검사의 야망과 일탈을 예견이라도 한 듯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일부 특수 검사들이 나라를 자기들이 좌자우지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착안한 듯, 제목을 <더킹(The King)>으로 단 것도 놀라웠다. 아니면 이 영화를 통해 시민들에게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경고하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감독이 실수한 것이 있다면 당시에 그들의 야망의 크기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영화 속의 엘리트 검사들의 대부 한강식(정우성 분) 전략3부(전략부는 특수부를 암시) 부장이 검사장이 된 뒤 환호작약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현실에선 이미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나온 마당이니 그들의 욕심을 얕잡아 봐도 너무 얕잡아 본 것 같다.


영화에서 한강식 패거리가 김대중 후보에 줄을 섰을 때와 노무현 후보의 낙선을 바랄 때 두 번 무당집을 찾아가 빌고 점치는 장면이 나온다. 엘리트 검사들이 원래부터 무당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무당을 좋아하는 특정 검사를 염두에 둔 것인지는 모르지만 무당정권, 무속정권이란 말이 운위되는 지금 현실에서 보면 이 또한 감독의 예지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문학 용어에 '핍진성'이란 말이 있다. 허구를 그리고 있지만 현실보다 더욱 생생한 허구를 묘사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이 영화는 검찰의 묘사 분야에서 우리나라 영화 중 가장 핍진성이 높은 작품일 것이다. 아마 감독이 검찰 담당 기자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검찰의 생리와 구조를 취재해 시나리오를 쓴 게 틀림없다. 탄탄하고 치밀한 취재 없이 정권 교체기마다 권력 줄서기에 목숨을 거는 간부들의 모습, 검찰과 조폭의 유착관계, 여론 조작, 룸싸룽의 광란 파티, 스폰서 문화 등을 그토록 현실감 있게 그려낼 수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3류 깡패를 아버지로 둔 문제아 박태수가 사법고시에 붙어 검사에 임용된 뒤 1% 엘리트 검사집단인 한강수 사단에 들어가 출세 가도를 달리다가 희생양으로 내쳐진 뒤 한강수 패거리에 보복하는 것을 큰 줄거리로 삼고 있다. 영화 중간 중간에 노태우 정권 때부터 이명박 정권까지 에피소드를 적절하게 삽입해, 현대 정치사를 다룬 다큐멘타리 같은 느낌도 준다.


내가 볼 때 이 영화가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갖은 꾀를 쓰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어가는 '정의롭지 못한 이권 불패집단' 검찰에 대한 규탄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엘리트 검찰의 황제인 한강수 검사장이 자신에 복수의 칼을 빼든 박태수를 만나 "내가 역사야, 이 나라라고, 니가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라고 경고하는 장면이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얘기를 대신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의 1% 엘리트 검사들의 생리와 생각, 행태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그리고 이 나라의 더킹은 그들인지, 우리들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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