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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Oct 11. 2021

'병원에서 죽는 것'의 비참함을 고발한다.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 야마자키 후미오


요즘 현대인은 대부분 최후를 병원에서 맞이한다. 그러나 과연 병원은 사람들이 최후를 맞이하기에 좋은 장소일까?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잇북, 2011년)의 저자 야마자키 후미오는 '연명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병원은, 사람이 죽는 데 '최악의 장소'라고 말한다. 병원에서 죽는 것을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필자가 병원 외과의사로서 1983년까지 8년 동안, 암 등으로 비참하게 죽어나간 100여명의 모습을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내용을 토대로 기록한 것이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21년 9월호에 나온 장윤미 문화평론가의 '내 마지막 숨을 결정할 권리'를 읽다가 이 책의 존재를 알고 읽게 됐다.


야마자키는 "일반 병원은 사람이 죽기에 알맞은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우선 독자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다"(92페이지)고 책을 쓴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운명에 대해 "앞으로는 그저 연명지상주의를 표방하는 현대의학의 가르침에 순종할 뿐이다. 조금이라도 더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폐렴을 억제하는 항생제의 투여, 고칼로리 수액의 지속적인 공급, 잦은 가래 제거, 효과는 미지수이지만 항암제투여 등의 치료 방침이 정해졌다."(20페이지)고 말한다. 


"대부분의 의사나 간호사들은 죽을 고비에 이른 환자에 대한 인공호흡이나 심장 마사지 등의 소생술을 의료인의 당연한 의무"(44페이지)라고 생각하는데, 그도 그런 의료인의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런 생각을 바꾸게 된 결정적 계기가 1983년 찾아왔다. 꿈꾸던 선의가 되어 남극으로 향하던 배 안에서 미국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쓴 <죽음과 죽어감 On Death and Dying>를 우연히 읽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그가 읽으면서 책장을 넘길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은 대목을 길지만 그대로 옮긴다.


"환자가 삶의 마지막을 정 들고 애착이 가는 환경에서 보낼 수 있다면, 환자를 위해 일부러 환경을 조성할 필요는 거의 없다. 가족들은 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진정제 대신 그가 좋아하는 한 잔의 포도주를 따라 줄 것이다. 집에서 만든 수프라면 그 냄새에 식욕을 느낀 그가 몇 모금 삼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수프 한 모금은 어쩌면 그에게 어떤 영양제보다도 훨씬 더 기운을 북 돋아 줄 것이다."


 그리고 선의 생활을 마치고 병원에 복귀해 1988년 10월부터 2년 동안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 글을 썼다. 이 책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크게 나뉜다. 전반부는 병원 의사가 환자가 죽은 뒤 사망진단서 발부를 무기로 병리해부를 강요하는 등, 병원에서 자신의 죽음조차 선택하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5명의 사례를 생생하게 소개한다. 읽으면서 병원의 비인간적인 행위에 치가 떨릴 정도다.

 

후반부에는 과잉의료나 무의미한 연명 치료에서 해방돼 자신의 최후를 납득하고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아름답게 죽어가는 사람들 5명의 이야기가, 전반부의 댓구처럼 펼쳐진다. 병원에서도 터무니 없는 죽음이 아니라 의사와 환자가 서로 협력하기에 따라 환자가 존엄하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들이다. 그러나 좋은 사례들이 있다고 해서, 이것들이 지금처럼 횡행하고 있는 '연명지상주의' 아래서는 보편화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저자는 "의료 현장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차라리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도 받을지 모르는 의료의 실체를 알려서 사회운동을 꾀함으로써 실제로 의료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닌 행정을 움직일 수 있기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가 이 책을 일본에서 처음 낸 것이 1990년, 한국에서 번역본이 처음 나온 것이  2005년이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도 이 책이 제시하는 문제의식은 변함없이 유효한 것 같다. '잘 살기'만큼 '잘 죽기'가 주목을 받는 시대라고 하는데 '과연 우리의 의료 현실과 사람들의 의식도 그런가'를 이 책은 여전히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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