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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Sep 12. 2022

기금 방식은 강제노동 해결의 '시작의 시작'일 뿐

기억책임미래, 독일, 일본, 강제노동

한일 간의 가장 화급한 역사 쟁점은 강제노동 피해 문제다. 갈등의 구도는 간명하다. 한국 쪽은 1965년 한일협정과 관계없이 일본 기업이 강제동원 노동 피해자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에 강제노동 피해자에 대해 정신적 위자료의 지급을 명한 2018년 10월의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한국 쪽 주장을 대표한다. 반면 일본 쪽은 이 문제를 포함한 모든 식민지 피해 문제는 한일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한국 쪽이 ‘국제법 위반’을 시정할 해결책을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권까지 이런 양쪽의 주장이 팽팽하게 평행선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 쪽의 입장이 변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그동안 한국 쪽 주장을 접고 일본 쪽 주장을 받아들일 태세다. 그 해법으로 기금 설립을 통한 ‘대위변제’(제3자가 채무자를 대신하여 돈을 갚아주는 행위)가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기업과 정부, 또는 여기에 더해 일본의 기업과 정부가 참여하는 방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본 쪽은 일본 기업과 정부가 참여하는 것에 매우 부정적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윤 정부의 강제노동 해결책은 한국 쪽만의 자금 출연으로 설립되는 기금 방식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해결책은 한국 안의 피해자 및 시민의 반발을 제외하더라도 정의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문제가 매우 많다. 독일의 경험은 이런 방식이 왜 어떻게 문제인지를 잘 보여준다. <나치 독일의 강제노동과 전후 처리-국제관계에서의 진상규명과 <기억·책임·미래> 기금>(경인문화사, 다무라 미츠아키 지음, 김관원 옮김, 2020년 12월)은 나치 시대 강제노동 피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워진 <기억·책임·미래> 기금의 성과와 한계를 다룬 책이다. 

 

저자인 다무라는 전쟁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개인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한다. 즉, 행정, 사법, 입법으로 실현하는 방법이다. 독일의 <기억·책임·미래> 기금은 입법으로 실현된 방식이다. 

 

다무라는 ‘행정 해결’과 관련해 독일에서는 많은 것을 행정이 주도해왔지만 일본에서는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한다. 집권여당인 자민당 안의 대다수 의원이 식민지 근대화론, 식민지 시혜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사법 해결’은 피해자, 유족, 시민이 가해 국가와 기업을 제소해 재판으로 실현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 또한 일본 사법부는 일본에서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을 모두 시효 경과나 개인청구권 포기, 국가나 관리가 위법한 행위로 손해를 끼쳐도 국가가 배상 책임을지지 않는다는 ‘국가무답책’의 논리로 배척해왔으로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고 한다. 세 번째는 국회의원이나 시민이 중심이 되어 보상법이나 기금을 만드는 ‘입법 해결’인데, 다무라는 이 해결책이 일본에서 가능하다고 본 듯하다. 물론 지금 일본의 상황에서 이런 해결책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다. 한국 국회에서 기금 방식 해결 얘기는 나오고 있는 데 반해 일본에서는 전혀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는 현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2006년 썼다. 당시만 해도 독일의 <기억·책임·미래> 기금 방식의 강제노동 해결책이 한일 양국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양쪽에서 한국의 강제노동 문제를 해결할 유력한 모델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일었다. 2000년 7월 독일 연방의회에서 <기억·책임·미래> 기금창설안이 통과된 뒤 한창 보상금 지금 활동을 할 때이니 비슷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던 한일 양국의 관심을 충분히 끌 만했다. 이 기금은 2007년 6월까지 모두 43억 7000만 유로를 모아 98개국에 사는 176만 5천명의 피해자에게 보상금 지급을 끝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독일의 <기억·책임·미래> 기금 사례를 꼼꼼이 살펴보면서 기금 방식의 성과와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저자가 독일 방식을 깊이있게 검토한 것은, 일본도 독일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감을 지녔기 때문임을 책의 문맥 속에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의 상황은 독일의 '독'자도 꺼내기 어려운 상황으로 변했다. 강제노동을 자기들의 책임이라고 인식하기는커녕 강제노동으로 인한 갈등의 책임이 모두 한국 쪽에 떠넘기며 “한국이 갈등을 풀 해결방안을 가지고 오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참고할 만한 점은 분명히 있다. 첫째, 입법 해결 방식으로 기금이 설립돼 강제노동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해도 이것으로 강제노동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다. 저자는 보상에서 배제되는 사람의 문제와 보상 이후 나타날 새로운 피해 사실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기금의 설립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역사 문제를 '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 <기억·책임·미래> 기금에 참가한 독일 정부와 기업들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들었다. 이들은 기금에 참여하면서도 인도적, 역사적 책임만 인정하고 법적인 책임은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기금의 지급도 보상 차원이 아니라 ‘인도적 원조’, 시혜적 지불이라는 논리를 폈다. 일본이 식민지 피해자를 대하는 방식과 완전히 일치한다.

 

저자는 기금이 ‘끝나지 않은 보상’이기는 하지만 이점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고령에 이른 피해자가 숨기기 전에 보상금을 받는다는 점, 공적인 기관이 피해 사실과 원인을 인정한다는 점을 들었다. 기금을 만들면서 나치 시대에 직접 강제노동에 관여하지 않은 기업에도 갹출을 호소해 강제노동을 독일 전체의 문제로 부각한 점, 기금을 통해 재발 방지를 위한 역사 교육을 하도록 한 점도 긍정적인 요소로 꼽았다. 

 

이 책에서 강제노동 피해 문제를 대하고 해결하는 독일과 일본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점은 두 나라 모두 정부가 스스로 강제노동 문제 해결에 절대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독일은 일본과 달리 나치의 죄를 스스로 속죄하고 피해자 보상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1968년의 혁명 세대의 문제 제기 등 시민사회의 나치 죄상 규명 운동과 유대인 피해자의 줄기찬 고발, 미국 정부의 압력이 없었다면 독일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부인과 무시로 일관했을 것이다. 마침내 독일 기업이 움직인 것도 자신들의 죄악이 부각되면 버티는 것보다 큰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이 독일처럼 스스로 <기억·책임·미래> 기금 같은 것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일본 정부와 기업에 대한 안팎의 압력이 독일에 비해 약하기 때문이란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독일과 비교하면, 안에서는 일본 시민사회의 힘이 미약하고 밖에서는 한국 등 피해자의 목소리가 유대인보다 미미하다.  

 

이 책을 보고 새삼 깨달은 것은, 가해국(일본 정부)이나 기업(강제노동 관여 일본기업)이 빠진 기금 방식의 해결 방안은 강제노동 문제의 본말을 전도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와 기업만이 참여하는 방식조차 완전한 정의 실현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본이 참여하는 형식의 기금을 만든다고 해도, 이것으로 강제노동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앞선 사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좋은 게 좋다는 식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은 역사에 죄를 두 번 짓는 ‘가중처벌’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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