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수와 조선통신사의 시대-한류의 원점을 찾아서>
한일관계가 정치, 외교적으로 매우 안 좋은 때지만, 일본 시민 사이에 부는 '한류 바람'은 멈춤이 없다.
일반적으로 2004년 드라마 <겨울연가>(일본에서는 <후유노 소나타>)가 불러온 '욘사마'(겨울연가 주인공 배용준의 일본 애칭) 현상을 제1차 한류 붐, 그 이후 동방신기, 카라, 소녀시대가 활약했던 2011년까지를 '제2차 한류 붐'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한류는 일본의 매스컴에서 사라지면서 '빙하시대'로 들어갔다.
2017년께부터는 다시 방탄소년단, 트와이스를 앞세운 한류가 고개를 들었다. 젊은 층 사이에서 치즈닭갈비와 회오리감차튀김 등 한국 음식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다. 한일관계의 경색 속에서 열린 2018년 10월에 열린 일본 외무성 주최의 '김대중-오부치 공동파트너십선언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참석한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축사에서 "치즈 닭갈비가 대유행하고 케이팝 가수가 인기를 끌고, '제3의 한류'라고 할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 감염 사태가 본격화한 2020년부터는 여기서 다시 한 단계 도약한 한류 붐이 퍼지고 있다. 한국 영화 <기생충(파라사이트)>이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것과 코로나 감염 사태가 묘하게 겹치면서, 한국 드라마가 일본 대중 속으로 깊숙히 침투하기 시작했다. 3차까지의 한류 붐이 '젊은 여자'라는 특정 계층이 이끌었다면, 코로나 시대의 한류는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매개로 일본의 전 계층으로 퍼져나갔다. 지금 이 현상을 '제4차 한류 붐'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착되었는데, 사실 나도 이 작명에 나름의 지분이 있다고 자부한다. 2020년 6월 오사카총영사관 주최로 열린 '일본 속의 한류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인사말에서 "최근엔 코로나 사태 속에서 집안 생활이 늘어나면서 <사랑의 불시착> <킹덤> <이태원 끌라스> 등 넷플릭스를 통한 한국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제4차 한류 붐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궁금합니다."고 말했다. 내가 아는 한 그때까지 '제4차 한류 붐'이란 용어를 쓰는 걸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런데 조선시대(일본의 에도시대)에도 한류 붐이 있었다. 바로 임진왜란(일본에서는 '문록경장의 역'으로 부름) 뒤인 1607년부터 1811년까지 모두 12차례 있었던 조선통신사가 바로 그 주역이다. 당시 약 500명 정도의 통신사일행이 왕복 6개월 정도 일본 남쪽에서 에도(도쿄)까지 왕복하며 외교사절 외에도 문화사절 노릇을 톡톡히 했다. 지금도 이들이 거쳐간 행로에 많은 그림과 글씨, 기록 등 유형 무형의 유물이 남아 있다. <신기수와 조선통신사의 시대-한류의 원점을 찾아서>(논형, 2017년, 우에노 도시히코)는 일본에 조선통신사의 존재와 의미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한 재일동포 2세 신기수(1931-2002)씨의 평전이다. <교도통신> 사카이지국 시절부터 그와 깊은 친교를 맺어왔던 우에노 도시히코 교도통신 기자가 10년여의 작업 끝에 2005년 명석서점에서 같은 이름으로 출간한 책을 번역 출판한 것이다. 한국에서 번역본이 나온 뒤, 일본에서 2018년 7월 다시 <신기수 조선통신사에 건 꿈-세계기억유산에로 여행>(명석서점)이란 제목의 증보판이 나왔다.
이 책을 보면, 근대 들어 일본의 역사에서 사장돼 있다시피한 조선통신사를, 신기수씨가 어떻게 부활시켜 대중화했는지, 그 영향이 얼마나 컸던가를 잘 알 수 있다. 우에노씨가 기자답게 신씨가 자료를 발굴했던 지역을 다시 샅샅이 찾아다니고 신씨와 교류했던 인물들과 인터뷰를 통해, 신씨의 활약상을 잘 정리해놨다.
물론 신씨가 처음 조선통신사를 발굴한 것은 아니다.
"에도시대의 조선통신사 연구라고 하면 1926년에 <일선사화>를 저술한 마쓰다 고를 시작으로 전후 <일선관계사연구>를 집필한 나카무라 히데타카와 신유한의 <해유록>을 번역한 강재언의 업적이 크다. 그러나 통신사를 누구라도 알 수 있는 형태로 소개한 사람은 <계간 삼천리>에 통신사 기행을 연재한 이진희이고, 오랜 세월 이 주제를 붙들고 와서 영화 <에도시대의 조선통신사>로 완성한 신기수이다."(393페이지)
신기수씨의 뛰어남은 넓은 인맥과 정열을 가지고 조선통신사 자료를 영상으로 제작한 것이다. 그는 대학 시절에 학생 및 사회 활동을 하면서 일찌기 영상의 위력에 눈을 떴는데, 이것이 조선통신사를 대중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됐다. 1979년에 50분짜리 다큐멘터리 <에도시대의 조선통신사>가 완성되면서 일본 전역에서 상영회 붐이 일어났고, 급기야 에도시대에는 쇄국정책으로 외국과 교류가 없었다는 일본 학교의 교과서 내용을 바꾸게 하는 계기가 됐다. 또 일본 각지에 조선통신사를 연구하는 모임이 생기고, 축제에 조선통신사 행렬을 포함됐다. 더 나아가서는 한국뿐 아니라 영국, 미국 등으로 조선통신사 연구가 퍼져나가는 데도 기여했다.
이 책은 신씨가 조선통신사 문제를 대중화하는 데 쏟은 노력 외에도 재일동포의 역경을 알리고 건전한 한일관계를 구축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도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재일동포와 일본의 사회사에 관한 지식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오사카총영사로 부임하기 전에 신씨의 둘째 딸 이화씨로부터 받아 읽었다. 그때의 독서가 총영사로 부임해 활동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오사카부-교토부-시가현은 통신사가 지나가는 주요한 길목이고, 신씨가 활동한 본거지가 오사카였기 때문이다. 총영사 임기를 마치고 귀국해 다시 읽어보니, 내가 그동안 임지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등장하는 신씨의 지인들과 겹친다는 걸 알고 놀랐다. 역시 세상에 관한 이해는 책만으로 또는 경험만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그를 위해서는 '책과 경험 사이의 부단한 왕복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다시 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