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보는 '중국 위협론'의 내용과 대책?
미중 갈등, 한반도, 대전환, 대만, 동북아
요즘 세상을 흔히 '대전환기'라고 한다. 기후 위기가 한계를 향해 치닫고 있고 있고 코로나 같은 감염병이 창궐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세계 지배 체제도 요동을 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우리의 삶을 위협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를 가장 위협하고 있는 급박한 문제는 세계 지배 체제를 놓고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일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중간에 끼여 있으면서 그렇다고 이사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한국은 자칫 미-중 갈등의 불똥을 그대로 뒤집어쓰기 십상이다. 기류를 잘못 읽고 까딱이라도 작은 실수를 하면 나라의 안위가 위태롭게 될 수 있다. 자유무역의 덕택으로 누리던 경제적인 윤택함도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미-중 갈등의 향방과 정도, 그에 대한 대처 여하에 따라 향후 10~20년의 한국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미-중 갈등의 실상과 정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다.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롱 게임>(생각의 힘, 러쉬 도시 지음, 박민희 황준범 옮김, 2022년 8월)은 미국의 입장에서 본 미-중 갈등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가장 따끈따큰한 책이다. 저자인 러시 도시는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중국 담당 국장을 맡고 있는 중국 외교정책 연구 전문가다. 중국을 미국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경쟁자'로 규정한, 10월 12일 발표된 바이든 행정부 첫 국가안보전략 문서도 이 책을 보면 더욱 깊숙하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중국의 부상을 매우 위협적이고 긴급한 과제로 보고 있는데, 이것만 봐도 중국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인 인식이 초당파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앞으로 미국의 대중 압박과 견제, 갈등이 오랜 기간 지속할 것이란 것도 간파할 수 있다.
이 책을 번역한 박민희, 황준범씨는 <한겨레>의 중견 기자다. 박민희씨는 중국(베이징) 특파원을 지낸 중국 전문가이고, 황준범씨는 미국(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미국 전문가다. 중국과 미국의 정책 및 전략을 잘 아는 전문가가 번역을 했기 때문에 번역의 질도 높고, 문장도 읽기 편하다. 또 원서가 나오자마자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무게를 파악하고 기동력 있게 번역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저자는 중국이 냉전이 끝난 뒤부터 그러니까 약 30년 전부터 미국을 대체하려는 대전략을 세우고 단계에 따라 이를 차근차근 추진해왔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대전략을 한 국가가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에 대한 이론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중국의 이런 대전략의 추진 중심에는 민족주의와 '민주집중제'라는 레닌주의로 무장한 중국 공산당이 있으며, 당이 중심이기 때문에 지도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대체하려는 전략을 지속할 것이라고 본다. 저자는 이런 중국의 전략을 중국 지도자의 연설, 외교정책 자료, 언론 보도, 전문가들의 연구자료를 통해 세밀하게 분석했다. 방대한 문헌을 통해 중국의 의도를 파악한 것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저자는 패권국가는 강압적 능력, 합의 유도, 정통성이라는 세 가지 능력을 가져야 하는데, 신흥세력이 패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패권국의 이런 능력을 '약화 시키기'와 자신의 이런 능력 '구축하기'를 통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중국이 미국의 세 가지 능력을 약화하고 세 가지 능력을 구축하는 노력을 시기별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높이며 미국의 패권에 도전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천안문 사건, 걸프 전쟁, 소련 붕괴라는 3대 사건 이후 미국을 대체하려는 중국의 대전략이 시작된 시점으로 본다. 이 3대 사건을 계기로 미국과 중국의 '준동맹' 관계가 해체되면서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꿈을 꾸고 실현하려고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는 첫 단계는 1989년부터 2008년(덩샤오핑부터 후진타오 1기)까지로 "도광양회'(능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는 뜻) 시기라고 한다. 이때 중국은 미국에 비해 국력이 현저하게 열세였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반접근, 지역거부라는 철저하게 방어 전략에 집중했다고 한다. 또 미국의 중국 포위 능력을 약화하기 위해 미국 주도의 국제기구에 적극 참여했다는 것이다.
2단계는 2009년부터 2016년(후진타오 2기에서 시진핑 1기)까지의 '유소작위'(적극적으로 성취하다는 뜻) 시기다. 미국이 2008년 금융 위기로 세계적 영향력이 크게 훼손됐다고 본 중국이 미국과 격차 해소에 나섰다는 것이다. 즉, 중국이 자신의 세력권이라고 할수 있는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능력 감소하기와 중국의 세력 구축하기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군사적으로는 해양 방어에서 해양 통제로 방향을 틀고 항공모함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또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를 출범시켜 경제적인 힘을 과시했고, 정치적으로는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의장국을 맡으면서 "아시아 안보는 아시아인이 담당한다"는 구호를 내세웠다. 이 시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후진타오가 2009년 대사회의 연설에서 '적극적 유소작위'라는 말을 쓴 것이다. 저자는 유소작위 앞에 '적극적'이란 말이 붙은 것은 전략의 큰 전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3단계는 2016년부터 지금까지(시진핑 2기 이후)로, 중국이 '100년 만의 대변동'을 강조하며 세계 차원에서 미국을 대체하는 중국식 질서 구축을 확대하는 시기다. 저자는 중국이 지역 차원을 넘어 세계 차원으로 대전략을 확대한 계기로, 2016년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트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좀 더 시기가 지난 코로나 감염 사태가 오면서 중국의 이런 전략이 더욱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6년 말 중국공산당 19차 당대회 연설에서 '신시대'를 선언하고 미국을 대체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공세적 조치를 과감하게 실행해나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디지털화폐, 바이오테크, 5G와 6G 기술 투자로 4차혁명을 주도하고, 대만 통일뿐 아니라 인도 태평양을 넘어 전 세계에 투사할 수 있는 군사력 능력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식 질서가 현실화하면, 한국과 일본에서 미군은 철수하게 되고, 미국의 지역 동맹은 끝이 나며, 중국 이웃국가들의 억제력은 실질적으로 제기될 것이고, 자유주의 가치가 권위주의로 대체될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미국이 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비례적인 대응보다는 중국이 처음에 썼던 '비대칭 전략'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중국의 부상을 막거나 시진핑을 약화시키거나 중국의 정권 교체를 추진하는 것은 실현 가능하지 않으므로, 중국보다 비용을 덜 쓰면서 효과적으로 중국의 의도를 약화하는 비대칭 전략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제무대에서 중국 주도의 다자구도 형성을 막고, 일대일로 정책의 영향 확대를 차단하며, 과학 기술 투자를 늘리고, 인도 태평양 지역의 동맹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식으로 대응하자는 얘기다.
이 책은 방대한 자료 분석을 통한 중국 대전략을 파악했다는 것은 장점으로 내세우지만, 철저하게 미국의 입장에서 자료를 해석하고 있다는 한계가 엿보인다. 중국의 지도부 교체와 관계 없이 미국을 대체하려는 대전략이 30년 동안 변함 없이 지속했다는 저자의 주장을 읽으면서, 왠지 저자가 구성해 놓은 틀에 자료들을 취사선택해 작위적으로 짜맞추기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은 확실하게 중국을 전면적인 패권 경쟁자로 규정하고 대응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점차 축소되는 미국의 국력을 감안해 정면 대응보다는 '비대칭 전략'을 강조하는 대목도 눈에 띄었다. 이 책의 주장대로 미국이 한다면 미국과 중국은 군사적인 열전보다는 경제, 외교, 기술, 군사면서 길고 긴 저강도 싸움을 해 나갈 것이다.
역시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다. 이 세기의 대변환기에 어떡하면 양쪽의 힘겨루기에 말려들지 않고 양쪽 언덕의 풀을 골고루 뜯어먹는 소가 될 것인지가 핵심이다. 결국 국제질서를 주도할 수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눈치'와 '가치'를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