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태규 Nov 07. 2022

일본은 왜 실패했나, 잃어버린 30년의 패인 분석

요시미 슌야, 거품경제, 실패박물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왜 실패했는지를 잘 알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를 냉정하게 분석하기보다는 잊으려고 애쓴다. 쓰라린 패배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도쿄대 대학원 정보학환 교수인 요시미 슌야가 쓴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이케이, 서의동 옮김, 2020년  7월)은 헤이세이 시대(1989년~2019년)로 불리는 시기의 일본이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헤이세이(平成)'는 살아서 퇴위한 아키히토 천황의 연호다. 즉, 헤이세이 시대는 그가 재위했던 시기를 가리킨다. 중국에서 시작한 연호를 이태껏 쓰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2019년에 즉위한 나루히토 제126대 천황의 연호는 레이와(令和)다. 일본이 지금도 연호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일부 식자들은 "민중의 시간, 자연의 시간을 지배자에게 예속시키는 아주 권위주의적인 관행"이라고 비판하지만 일본의 지배층은 이를 일본의 독특한 전통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쓰고 있다. 


요시미 교수도 연호와 관련한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천황의 재위 기간에 의해 역사를 구분짓는 것에 본질적인 의미가 있을 리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헤이세이 30년을 하나의 시대로 파악하는 것에는 '우연 이상의 뭔가'가 있다고 말한다. 이 시기에 일본의 진로를 근본적으로 바꾼 '실패'와 '쇼크'가 연속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시미 교수는 이 책의 시작을 스웨덴의 전성기 때 일어난 군함 바사호의 침몰 사건을 소개하는 것으로 연다. 1628년 당시 스웨덴 국왕인 구스타프 2세가 세계 최대 최강을 목표로 한 군함 '바사호'를 건조해 출항시켰으나 출항하자마자 배가 침몰한다. 배의 건조에 관여했던 사람들은 조사해 보니 부분 부분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도 배는 무참하게 침몰했다. 건조 과정의 실수가 아니라 계획이 지나치게 거대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스웨던 정부는 이 배의 침몰로부터 3세기 뒤인 1956년 배를 해저에서 인양해 '바사호 박물관'을 세웠다. 이른바 실패에서 교훈을 얻기 위한 '실패 박물관'이다.


요시미 교수가 처음에 바사호 사건을 거론한 것은, 이 책이 헤이세이 시대의 실패를 기록한 '일본판 바사호 박물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는 이런 생각으로 헤이세이 30년의 실패를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분야로 나누어 꼼꼼하게 분석한다.


그는 우선 헤이세이 시대에 일어난 4개의 쇼크-1989년 정점을 찍은 버블 붕괴, 1995년 한신 아와지 대지진, 2001년 미국의 동시 다발 테러와 국제 정세 불안,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 원전 사고-에 따라 헤이세이 30년을 4시기로 나눈 뒤 시기별로 각 분야에서 벌어진 사건을 살펴본다. 


먼저 경제 분야에서는 세계를 호령하던 금융업과 가전기업이 어떻게 추락했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헤이세이 원년(1989년)의 세계 기업 랭킹을 보면 엔티티(NTT)가 1위, 일본흥업은행 2위, 스미토모은행 3위, 후지은행 4위, 제일권업은행 5위로 최상위를 일본 기업들이 독식했고, 상위 50개 사 중 32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하지만 헤이세이 30년(2018년)의 랭킹에서는 상위 50개 사 중 유일하게 도요타(35위)가 들어 있을 뿐이다. 16위의 삼성전자에게도 뒤지는 순위다.


요시미 교수는 일본 기업의 추락의 원인으로 글로벌화와 넷 사회화(인터넷 시대)의 도래를 충분히 인식하지도 못하고 대비도 못한 데서 찾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글로벌화와 넷 사회의 충격이 일본 경제 및 인구의 쇠퇴기와 맞물려 나타나면서 충격이 더욱 증폭됐다고 분석했다.


정치적으로도 이 시기는 격변의 시기였다. 관료 주도에서 정치 주도로 개혁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사회당은 몰락하고 민주당은 신뢰를 잃으면서 '도로 자민당'의 고이즈미 총리의 포퓰리즘 정치 또는 아베 시대의 관저 관료 주도 정치로 열화했다. 이 과정에는 정치 주도를 내세우면서도 전혀 그런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고 좌절한 민주당 정권의 실패가 컸다고 진단했다. 중대선거구를 소선구제로 바꿔 정권 교체가 가능한 정치 구도를 만들려고 했으나, 일본 정치는 지금 보는 대로 '새로운 55년 체제'로 회귀했다.


사회적으로는 이 시기에 닥친 두 차례의 대지진(95년, 2011년)의 충격이 컸다. 이런 외부적 충격과 함께 내부적으로는 옴 진리교의 사린 가스 살인 사건, 사회에 불만을 품은 다양한 범죄의 연발, 빈부 격차의 확대와 급격한 인구 감소가 일본 사회를 근본에서부터 흔들었다. 특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함께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고는 '원전 안전 신화'를 무너뜨리며 권력자에 대한 불신과 사회 불안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요시미 교수는 문화 차원에서는 여러 붕괴를 예언이라도 하듯 쇼와 말기부터 '일본 종말'을 예감하는 문화 예술 작품이 많이 나타났고, 헤이세이를 거치면서 전후에 형성됐던 아메리카니즘과 내셔널리즘이 일체화된 문화 체제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헤이세이 시대의 변화를 관통한 것은 글로벌화와 넷 사회화라고 지적하면서, 헤이세이 일본이 불운했던 것은 이 두 흐름에 의한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용이 일본의 경제와 인구 구조의 쇠퇴기와 일치하면서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이 1970년대에 찾아온 오일쇼크를 에너지 감축 기술로 무난하게 넘긴 것이 도리어 독이 됐다고 지적했다. 당시의 충격을 넘긴 것은 일본의 노력 때문이라기보다 일본의 성장 잠재력이 남아 있었기 때문인데, 이를 오인하는 바람에 서구 국가들이 당시 했던 구조 개혁을 하지 넘어오면서 뒤늦게 몇 배의 수업료를 물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헤이세이 일본이 경험한 곤란은 1970년대부터 역사의 결과이고, 그로부터 치면 반세기에 이르는 셈이므로 '헤이세이'가 끝났다고 해도 그것으로 '계산 끝'이 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면서 "당시에 있던 무수한 문제, 그리고 헤이세이 시대에 현재화한 갖가지 실패와 쇼크, 사회적인 한계를 응시하고, 이런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태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발점은 '성공'의 재연이 아니라 '실패'로부터 학습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을 보면서 한국 사회는 과연 실패로부터 배우려고 하는지, 배우고 있는지 의심이 갔다. 냉철하게 과거의 실패를 되돌아보면서 개선 방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반대자가 한 일은 무조건 실패라고 소리 높여 규정하고 공격하는 풍조만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이런 태도는 결코 실패로부터 배우려는 겸허한 자세와 거리가 멀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도 실물로든 책으로든 그럴 듯한 '실패 박물관'을 지어야 할 때다. 요시미 교수가 사회 현상 중에서 가장 엄중하게 지적하고 있는 충격은 '일본의 인구 감소'인데 우리는 지금 일본보다 훨씬 심각한 저출생 상황에 처해 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더욱 긴장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작가의 이전글 영어를 가장 잘하면서 한글을 가장 사랑한 사람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