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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Nov 21. 2022

조직론의 관점에서 본 일본군의 패전 원인

<실패의 본질>, 태평양전쟁, 일본제국군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다. 예를 들어 중생대에 살던 공룡은 소나무, 삼나무, 소철 등의 포자식물을 먹으려고 기능과 형태를 철저하게 환경에 적응시켰다. 그러나 너무 과도하게 적응하는 바람에 기후나 수륙 분포, 식물이 조금만 변해도 다시 적응할 수 없게 됐다. 이것이 공룡 멸종의 한 원인이 됐다고 한다.


공룡처럼 일본군도  과거의 성공 신화에 너무 취해 자기 혁신 능력을 잃어버린 탓에 미국을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에서 참패했다고 진단한 책이 <왜 일본제국은 실패하였는가?>(주영사, 노나카 이쿠지로 등 6명 씀, 박철현 옮김, 2009년 6월)다. 이 책은 원저인 <실패의 본질-일본군의 조직론적 연구>(중공문고, 1991년 8월)을 번역해 출판한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일본책을 보니, 2019년 10월까지 69쇄를 찍었다. 그 정도로 일본군의 실패를 다룬 도서 중에서도 명저로 꼽힌다.


이 책은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직전부터 패전까지 싸운 6개 전투의 사례 분석을 통해 일본군의 실패 원인을 찾는다. 노몬한 전투, 미드웨이 전투, 과달카날 전투, 임팔 전투, 레이테 전투, 오키나와 전투가 대상이다. 관동군과 러시아가 싸운 노몬한 전투는 시기적으로 태평양전쟁 직전이지만 이후 태평양전쟁의 실패를 예고한 전투라는 점에서 분석 대상에 넣었다고 저자들은 밝혔다. 나머지 5개의 전투는 모두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과 미군이 대결한 육상전(과달카날, 임팔, 오키나와)과 해상전(미드웨이, 레이테)이다. 미드웨이와 과달카날 전투는 각각 해상전과 육상전에서 태평양전쟁의 전세를 갈랐던 전환점이 됐다. 임팔, 레이테, 오키나와 전투는 일본군의 패색이 짙어진 시점에서 실시된 대표적인 전투다. 저자들은 이 6개 전투가 태평양전쟁의 주요 전투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군의 조직 특성 및 결함에서 실패의 본질을 도출하려는 이 책의 목적에 잘 맞기 때문에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이 책은 전투 사례를 다룬다는 점에서 전사를 다룬 책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일반적인 전사 책과는 성격이 다르다. 저자들이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전쟁사에 사회과학적 분석의 메스를 댄 선구적 연구이자 군사 조직을 조직론의 관점에서 실증분석한 국내(일본) 최초의 본격 연구"서다. 쉽게 말하면 조직론의 관점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문제를 파헤친 책이다. 저자들은 이 책의 목적을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겪었던 실패를 오늘날의 조직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으로 되살리고, 그 실패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패전 이후 일본군의 모습을 적든 많든 흡수할 수밖에 없었던 전후 일본의 관료조직과 기업에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임을 알 수 있다.


저자들은 6개 전투의 사례 분석을 통해, 일본군이 미군에 패한 것은 조직 대결에서 진 것이라고 단언했다. 먼저 전략의 측면에서 일본군은 미군과 달리 전략 목표가 애매모호했고 지휘부와 현지군 사이에 목표도 일치하지 않았으며 작전 목적도 공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단기전 중심의 전략, 주관적이고 귀납적인 전략에 치중해 합리성보다 분위기에 좌우된 점, 군사 기술보다 정신력을 중시하는 좁고 진화하지 않는 전략 대안을 일본군의 문제점으로 들었다. 과학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러일전쟁 당시 수준에 머문 전투기술 체계로 현대화한 미군 조직을 상대한 우를 범했다고도 했다.


조직 면에서는 노몬한 전투와 임팔 전투에서 보듯이, 관료제 안에 인정을 혼재시켜 인맥이 강력한 기능을 했고, 조직 통합을 시스템이 아니라 개인 중심으로 했다고 지적했다. 미군이 육군과 해군, 공군을 통합한 합동참모본부 체제를 실질적으로 가동한 데 비해, 일본군은 대본영이란 통합 지휘 조직을 설치하긴 했으나 '육군 따로, 해군 따로'의 개별 행동을 통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학습을 중시해야 하는데 정신력 중심의 학습 무시 풍조가 지배했다고 말했다. 미군은 1942년 과달카날 상륙작전의 실수를 분석하며 이후 18 차례의 상륙작전을 진화시켜왔지만, 일본군은 과거의 성공 신화만 붙들고 변혁을 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인사 면에서는 성과를 중시하기보다 과정이나 동기를 중시하면서 목소리가 크고 강경한 사람이 우대 받는 경향이 굳어졌다고 진단했다.


저자들은 6개 전투 사례를 분석한 뒤 "역설적이지만 '일본군은 주어진 환경에 너무 잘 적응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조직이 계속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전략과 조직을 환경의 변화에 따라 바꿀 수 있는 자기 혁신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일본군이 이런 능력을 구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졌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일본군 실패의 최대 본질은, 특정한 전략 원형에 너무나 철저히 적응해 버리는 바람에 학습 기각을 이루지 못해 자기 혁신 능력을 잃고 만 것"이라고 진단했다.


저자들이 말하는 '일본군의 전략 원형'이란 육군의 '백병전 지상주의', 해군의 '함대 결전주의'다. 일본 육군은 1905년 강대국인 러시아와 전쟁에서 총검을 앞세운 돌격전으로 뤼순 203고지를 함락하시키면서 승리를 결정지었다. 또 쓰시마 해전에서 함대 결전을 벌여 러시아의 발틱 함대에 전멸에 가까운 완벽한 패배를 안겼다. 두 전투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 바로 일본 육군과 해군이 신처럼 떠받드는 노기 마레스케 대장과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다. 일본군에게 광희의 기쁨을 선사한 두 전쟁과 두 영웅은 그때부터  일본 육군과 해군의 신화가 됐고,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런 도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태평양전쟁은 이전 일본군이 승승장구했던 전쟁과는 전혀 환경이 달랐다. 지상전은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육해공 합동작전으로 바뀌었고, 해전은 함대 중심의 결전이 아니라 항공모함 중심의 항공전으로 변했다. 그 결과는 자명했다. 과거 성공에 취해 변화를 거부한 일본군의 완패였다.


저자들은 일본군의 이러한 조직 특성이 전후 일본 사회에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면과 진화된 면으로 나뉘어 공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라지지 않은 면은 '혁신적'이라고 불리는 일부 정당과 보도기관 및 관청에 있고, 창조적으로 진화한 면은 기업조직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전후 기업 경영에서 혁신을 발휘했던 이들도 거의 40년을 넘어(책 출간 시점 기준) 이제 나이가 들어버렸으므로, 개전 전의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혁신 능력을 상실한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물어볼 때가 온 것 같다고 우려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30년 전 그들의 우려가 적중한 듯하다.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일본 경제의 모습을 보면 그렇다.


이 책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도 값진 교훈을 준다. "성공 신화에 취해 자기 혁신 능력을 잃은 자는 망한다"는 교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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