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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Dec 12. 2022

'영어 숭배주의'가 낳은 '엉터리 영어' 범람

콩글리시, 김우룡, 뉴스말, 저널리즘

신문이나 방송의 뉴스를 읽거나 듣다 보면, 눈에 거슬리는 영어 표현이 무척 많다. 어떤 때는 한 문장에 서넛 이상의 영어 단어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한 문장에 하나의 외래어가 나오는 정도는 눈에 띄지도 않는다. 주요 방송국 뉴스 프로그램의 제목이 '뉴스 데스크'니 '뉴스 와이드'니 '뉴스 쇼'니 하는 영어 단어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지 오래거니와 최근에는 신문사의 편집국도 '뉴스룸'이라는 용어로 바꿔 쓰는 것이 대세가 됐다. 사정이 이러니 그깟 기사에 영어 단어 몇 개 쓰는 것이 무슨 대수냐는 생각도 들 만하다.




하지만 일반 사람이 외래어를 쓰는 것과 미디어가 외래어를 쓰는 것은 크게 다르다. 미디어는 전파력과 영향력이 매우 강하므로 한 마디의 표현도 더욱 책임감과 엄밀함, 사명감을 가지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




뉴스의 외래어 남발과 엉터리 표현을 어떡하면 좋은 우리 말로 고칠 수 있을까 하고 개인적으로 고민하던 차에 <뉴스와 콩클리시>(도서출판 행복에너지, 김우룡 지음, 2018년 4월)라는 책을 발견했다. '저널리즘의 외래어 진단'이라는 부제목이 붙어 있고, 저자가 원로 언론학자여서 나의 문제의식을 잘 만족시켜주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나의 기대에 약간 어긋나는 책이었다. 저널리즘, 즉 뉴스 보도에 나오는 영어 표현의 문제를 지적하고 좋은 한글로 바꿔 쓰자고 주장하는 책으로 기대했는데 내용이 그에는 미치지 못했다.




첫째, 이 책에 나오는 외래어는 뉴스에 자주 나오는 것을 골랐다기보다는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것을 고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일상에서 자주 쓰는 외래어가 뉴스에도 많이 나오는 것은 맞지만, 시정해야 할 뉴스의 외래어를 진지한 탐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둘째, 엉터리 외래어를 우리 말 표현으로 바꾸는 단계까지 나가지는 못했다. 왜 엉터리 외래어이고 올바른 표현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데 그쳤다. 즉, 엉터리 외래어를 좋은 우리 말 표현으로 바꾸고 싶다는 나의 문제의식을 반밖에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그래도 엉터리 외래어를 좋은 우리 말 표현으로 바꾸려면 정확한 표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중간 단계를 거칠 필요가 있으니 유익한 책인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은 저자가 2015년 12월부터 <디지털타임스> 2년여 동안 매주 '뉴스 속의 콩글리시'를 열쇠말로 쓴 칼럼을 묶어 낸 책이다.  




저자는 이 책 서문에서 "잘못된 말이라고 하더라도 특정 집단 내에서 널리 쓰이고 구성원이 서로 이해하고 있으면 그것이 좋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된다"고 전제한 뒤, 두 가지 유념할 사항을 말하고 있다. 첫째, 한국식 영어를 쓰더라도 유래나 뿌리 등 문화적 배경을 파악하고 쓰자는 것이다. 둘째, 콩글리시가 바깥 세계에 나가서는 통용되지 않으니까 제대로 된 영어를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한국식 영어는 한국 안에서만 쓰고 밖에서는 제대로 통용되는 영어를 쓰자는 말인데, 국제화시대를 맞아 해외 여행 또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귀 담아 들을 구석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어떤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살 때 할인의 의미하는 콩글리시인 "디씨(D/C)를 해달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다든가, "애프터 서비스를 해달라"고 하면 이해를 못한다는 것 등의 얘기가 나온다.




이 책은 모두 5장으로 나뉘어 있다. 1장(영미인도 모르는 한국식 영어)에 A/S, Well-dying 등 14개 단어, 2장(엉터리 집, 이상한 동네)에 Apart, Villa 등 9개 단어, 3장(직업의 세계)에 Anchor, Quick service 등 12개 단어, 4장(같은 영어, 다른 뜻)에 Classic, Wannabe  등 15개 단어, 5장(같은 영어, 다른 물건)에 Black box, Sand bag 11개 단어 등 모두 61개의 콩글리쉬가 등장한다. 언론학자답게 단어를 설명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 시기에 벌어지는 시사 문제에 관한 저자 나름의 비판적인 시각까지 곁들이고 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또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교양을 쌓는 데도 도움을 준다.




한 나라 말에 외래어가 들어오는 것을 마냥 거부할 수만은 없다. 부정적인 모습도 있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다. 영어가 노르만족의 영국 지배 과정에서 들어온 프랑스 단어의 영향을 받아 더욱 어휘가 풍부해졌다고 하고, 우리 말에도 한자, 일어의 영향으로 더욱 풍부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외래어의 무분별한 사용은 우리 말의 소멸과 왜곡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잡지 <뿌리깊은나무>의 발행인 겸 편집인이었던 한창기씨는 외래어 하나가 들어오면 우리 말에 새로운 어휘 하나가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말 하나를 소멸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 문장 구조를 왜곡시킨다고 경계했는데  지당한 인식이다. 우리 말, 우리 문장의 확고한 토대 위에서 외래어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외래어 사용이 마치 높은 지위나 지식의 상징인 것처럼 여기는 풍토는 '언어 식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많은 저널리스트들이 이 책의 문제의식을 발전적으로 이어받아, 국적 없는 엉터리 외래어가 범람하는 뉴스를 아름다운 우리 말로 정화하는 데 힘을 써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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