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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Dec 05. 2022

한국의 참모습'을 추구했던 '참 한국인' 한창기

뿌리깊은나무, 순한글가로쓰기, 독립신문, 한겨레신문

잡지 <뿌리깊은나무>를 아는 사람은 있어도 그 잡지의 발행인 겸 편집인이었던 한창기(1936년~1997)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도 그런 축에 드는 사람이었다.


유신독재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1976년 3월에 '순한글 가로쓰기'라는 획기적인 얼굴로 등장한 <뿌리깊은나무>는 전두환 신군부 독재정권 때인 1980년 7월에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등 당대를 주름잡던 문학 비평 잡지와 함께 사회 갈등과 불안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강제 폐간됐다. 그 중에서도 '창비'와 '문지'가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뿌리깊은나무>의 폐간은 두 잡지의 그늘에 가려 크게 눈길을 끌지 못한 듯하다.


하지만 한국의 잡지 역사, 언론출판 역사에서 <뿌리깊은나무>와 한창기씨가 한 역할은 그 이전과 이후로 역사를 나눌 만큼 컸다. 우선 해방 후 처음으로 순한글 가로쓰기로 잡지를 만든 것은 대사건이었다. 일본식의 세로쓰기, 국한문 혼용 일색이었던 당시 신문, 잡지계에서 가히 혁명적인 일이었다. 순한글 정기 간행물의 계보로 보면, 조선시대 말 서재필의 <독립신문>(1896년 4월 7일~1899년 12월 4일)을 잇는 것이고, 1988년 5월 15일 창간된 <한겨레신문>의 징검다리가 됐다. 참고로, 학계에서는 1995년부터 시작한 <중앙일보>의 순한글 가로쓰기를 해방 후 신문의 첫 한글 가로쓰기라고 잘못 쓰는 학자가 있다. 수정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다. 한창기씨는 잡지에 그리드 방식의 편집디자인을 처음 도입했고, 뿌리깊은나무 글씨꼴을 만들어 보기 쉬운, 읽기 쉬운 잡지를 만들었다. 필자가 아무리 명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원고를 편집자가 일일이 알기 쉬운 우리말로 고쳐 내보내는 방식도 처음 실시했다.


한창기씨는 언론, 출판뿐 아니라 한국 고유의 토속문화, 토속생활, 민중예술을 아끼고 발굴하고 세상에 알린 '참 한국인'이기도 하다.


내가 어슴프레 알고 있던 한창기씨를 조금이나마 더 깊게 알게 된 것은 그가 생전에 <배움나무>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물> 세 잡지에 주로 썼던 글을 모아 낸  세 권의 책 때문이다. <뿌리깊은나무의 생각>, <샘이깊은나무의 생각>, <배움나무의 생각>(휴머니스트, 한창기 지음, 윤구병 김형윤 설호정 엮음, 2007년 10월)이 그 책들이다.


또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있다. 올해 10월부터 지방 방송사인 <광주MBC>가 한 달 동안 텔레비전 수상기 화면에 표시되는 회사 이름을 영어 대신 '문화방송'이라고 표시하기 시작했다. 이에 감동해 기사를 작성해 <오마이뉴스>에 기고하면서, 한국 방송사들의 잘못된 영어 이름 표기를 처음 글로 지적한 사람이 한창기씨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집에 있는 책장을 뒤져보니  <뿌리~> 등 책 3권이 나란히 꽂혀 있었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그 책들을 읽어 보긴 했지만 건성으로 지나쳤던 부분, 몰랐던 부분이 머리 속에 쏙쏙 들어왔다. 독서는 사슬처럼 사건의 연쇄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아는 만큼 읽어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뿌리~> 책의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라는 제목의 글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우리의 귀에 익은 미국의 '엔비시'나 '시비에스'의 방송국들도 이 호출부호가 따로 있고, '엔비시'나 '시비에스'라는 이름들은 제 나라 말로 된 제 이름의 머릿글자들을 따서 만든 제 나라 말 약칭이다. 이것을 보고 서양 시늉하기를 좋아하기로 세계에 이름을 떨친 일본 방송국이, 굳이 약칭이 필요하거든 제 나라 글자로 할 것을 잊고 '스타일'을 한 번 내보려고, 비록 제 나라 말로 된 이름의 소리를 로마자로 음역한 것을 머릿글자로나마 '엔에이치케이'라 했다."


일본은 서양 흉내를 내면서도 니혼호쇼쿄카이(일본방송협회)의 로마자 발음을 따서 '엔에이치케이'라고 했지만, 우리나라 '케이비에스' '엠비시'는 그런 흉내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걸 통렬하게 꼬집은 것이다. 그려면서 방송들이 국어순화 운동을 한다고 나서고 있는데 그야말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라는 비판했다.


한창기씨가 글로 다룬 주제와 분야가 너무 다양해 언론과 관련한 부분에 한정해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은 글도 있다. <배움~>의 '검은 사람과 흰 사람'이라는 글이다.


"이와 같은 신문의 보도 태도 속에서 흔히 사람은 검은 사람과 흰 사람으로 나누인다. 사람은 '도둑'과 '순사'로 나누인다는 생각이나 가르침의 그림자가 자주 신문 보도를 각색한다. 많은 기사들은 나쁜 사람은 하나부터 열까지 나쁘고, 착한 사람은 하나부터 열까지 착하다는 위험한 전제 아래서 적히는 듯하다."


우리 언론의 정파주의, 진영주의, 흑백논리 보도를 일찍이 지적한 것 같아 가슴이 뜨금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휘황찬란한 대로변만 쳐다보고 있을 때 그늘 진 뒷골목을 살펴 봤던 사람이고, 많은 사람이 앞만 보고 달릴 때 뒤를 쳐다보며 걸었던 사람이었다. 또 국제화, 세계화에 열광할 때 그와 함께 사라져가는 우리의 토속, 민속, 민중의 삶을 안타깝게 여기고 살리려고 힘쓴 사람이었다. 그가 한창 활약했던 유신 말기와 신군부 시절에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독재정권 타도와 같은 큰 주제에 매달렸던 시절이었으니, 민속과 문화에 눈길을 돌렸던 그가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고 쉽게 잊혀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덕택으로 우리 고유의 문화와 말, 민속이 그나마 살아 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감사할 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당시의 독재 정치체제에 눈을 돌렸던 것은 아니다. 민중의 시각을 중시한 그의 글 속에는 누구보다도 까칠한 비판정신이 깔려 있다.


세 권의 책을 다시 읽으면서, 한창기는 다시 발견되고 재평가돼야 한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됐다. 그가 당시에 던졌던 한 마디, 한 마디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은 채 앞날과 빠름만 강조하는 요즘 시대에 더욱 경종을 울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책을 읽고 바깥을 나가 살펴보니 그가 그토록 나무랬던 길가의 상점의 외래어 표기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당시에는 일본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한자어 간판이 많았다고 했는데, 지금은 세계화의 미명 아래 국적 불명의 영어 간판이 즐비하게 붙어 있다. 그가 이태껏 살아 있었다면 얼마나 눈꼴 시려했을까.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순천에 가는 길에 낙안읍성을 들린 적이 있다. 읍성 바로 앞에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이 있는 것을 보고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그냥 온 것이 후회됐다. 그때 들렸었다면 한창기라는 멋진 인물을 몇 년 더 일찍 알게 됐을 텐데.


그에 관심을 가지면서 유투브를 검색해 보니, 광주문화방송에서 15년 전에 제작한 <뿌리깊은나무-한창기 1부> <뿌리깊은나무-한창기 2부>와, 올해 만든 <시대의 품격 한창기>라는 비디오가 올라와 있었다. 책과 함께 보면 한창기가 어떤 인물이었고 무엇을 했으며 하고자 했는지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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