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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Mar 13. 2023

오사카는 어떻게 다문화공생의 모델이 됐나?

<다문화공생의 실험실>, 가와사키, 동화교육, 부락마을, 재일동포

올해 초 오사카대학 교수를 부인으로 둔 후배로부터 오사카의 다문화공생에 관한 책을 받았다. 내가 오사카총영사로 있는 동안 재일동포의 삶과 교육, 다문화공생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고 부인이 동료 교수가 편저한 책을 남편 편에 보내주었다.


<다문화공생의 실험실, 오사카에서 생각한다>(청궁사, 다카야 사치 편저, 2022년 3월)라는 책이다. 아직 한국에서 번역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원서다. 요즘 출판 시장이 어려우니까, 아마 모르면 몰라도 번역되지 않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래도 일본의 다문화공생 교육이 어떤 개념이고 어떻게 실천되고 있으며, 거기에서 재일동포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개괄적으로 알려면 꼭 봐야 할 책이다.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다문화공생 교육에 관한 이론 및 현장 실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편저자인 다카야 도쿄대 교수(편저 당시엔 오사카대) 외에 16명이 필자로 참석했다. 내가 총영사로 있으면서 자주 만났던 코리아엔지오센터의 김광민 사무국장과 오사카 지역에서 재일동포 인권 옹호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니와 마사오 변호사의 글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이 책은 모두 3부 11장으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오사카 다문화공생 교육의 실천을 다뤘고, 2부에서는 재일동포 및 필리핀 이주자 활동가 등 다문화공생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의 얘기에 초점을 맞췄다. 마지막 3부는 다문화공생 교육의 이념 및 규범적 고찰에  지면을 할애했다. 특히, 3부에서는 똑같은 재일동포 밀집지이면서도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오사카와 가와사키의 다문화공생을 비교한 부문이 있는데, 나의 눈길을 끌었다.


편저자인 다카야 교수는 서문에서 오사카는 일본 다른 지역보다 일본어를 못하는 고교생의 진학과 취업 상황이 좋은데, 이것이 오사카에서 특별하게 하고 있는 외국 뿌리를 가진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입시제도를 포함한 우대 정책에 기인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오사카 특유의 외국인 우대정책이 어떤 배경에서 생겨났는지를 살펴보는 데로 문제의식을 확장한다.


다카야 교수는 오사카의 다문화공생은 2006년부터 일본 전국적으로 추진하는 '다문화공생'과는 질이 크게 다르다고 말한다. 전국 차원의 다문화공생이 외국인 정책과 거의 동의어라고 한다면, 오사카와 간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실시되고 있는 다문화공생은 '반차별'과 '인권'을 기반으로 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사카에서는 1970년대부터 이민과 민족적 정체성을 대상으로 한 특필한 만한 실천이 전개돼, 일정한 성과를 거둬왔다면서, 여기에는 오사카가 소수자(재일한국인) 집주지라는 현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그 이전에 부락민 차별운동을 철폐를 목표로 하는 부락해방운동이 오사카를 비롯한 간사이지역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사실이 있고, 재일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민족교육도 그런 영향을 받아 활성화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 참가한 필자들의 글을 보면, 부락해방교육(동화교육)이 재일동포를 대상으로 한 민족교육(민족학급), 필리핀 등 다른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다문화공생 교육으로 확장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카야 교수는 극복해야 할 현실에 대해 반차별과 인권이라는 개념이 제시되고, 그 이념을 구체화하는 실천이 명확하게 결합한 곳이 오사카이고, 그런 점에서 오사카는 '다문화공생의 실험장"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사카의 이런 특성이 계속 확장하고 발전해 가는 것만은 아니다. 큰 위기도 닥쳐오고 있다. 바로 신자유주의 교육관으로 무장한 오사카유신회가 2008년부터 오사카시와 부의 수장으로 선출되면서 오사카 특색의 다문화공생, 재일동포 대상의 민족교육이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동화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전국 차원의 다문화공생이 침투하면서 오사카만의 특성을 중화시키고 있고, 부락해방운동의 경험을 가진 세대가 사라지면서 반차별, 인권을 특징으로 하는 교육을 담당할 후속 세대를 찾기 어려운 실정도 겹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오사카 특유의 다문화공생 교육이 확장 또는 새로운 영역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김광민씨가 관여하고 있는, 필리핀인 학생 위주의 미나미교실과 브라질 학생 위주의 일본 라치노학원과 고레지오 산타나 학교 지원 활동이 대표적이다. 재일동포 3세로서 민족교육의 세례를 받으며 성장한 김씨는 일본에서 재일동포 교육의 경험을 살려 점차 늘어나고 있는 필리핀, 브라질 등 다른 외국 뿌리의 학생들이 일본에서 잘 적응하며 살 수 있도록 돕는 노력을 하고 있다. 즉, 일본에서 가장 핍박 받으며 성장한 재일동포가 이제 소수자의 맏형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재일동포 민족교육의 계승이자 확장이라고 본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한 바 있지만, 같은 재일동포 밀집지역이지만 가와사키와 오사카의 다문화공생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도 흥미롭다. 간단히 말하면, 반차별 인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던 오사카에서는 차별과 인권이 다문화공생의 중심 내용이 된 반면, 이인화 목사를 중심으로 지역민과 밀착한 공생운동이 활발하게 전개해온 카와사키의 다문화공생은 오사카와 다르게 '공생'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일본의 다문화공생 교육과 이념에 관해 더욱 깊게 알게 됐다. 또 오사카든 가와사키든, 아니면 일본 전국에서든 일본의 외국인 정책인 다문화공생 운동 및 교육에 재일동포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도 새삼 확인했다.


그만큼 재일동포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매우 중요한 존재다. 앞으로 한일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라도 한국 사회가 재일동포의 존재와 역할에 더욱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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