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 일본에서 귀국한 뒤 처음으로 서울 밖 나들이를 했다. 총영사 부임 전까지 부회장으로 관여했던 '사단법인 동해연구회'가 강원도 강릉에서 14일부터 16일까지 연 '제27회 동해 지명과 바다 이름에 관한 국제세미나'에 참석했다. 3년여의 공백 기간 동안 바다 이름에 관한 논의의 흐름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고 싶었던 차에 주최 쪽의 초청도 있어, 바람도 쐴 겸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했다.
그런데 미리 배포된 발표자료를 읽던 중 <교토국제고 교가를 통해 본 '동해' 지명 고찰과 디지털시대 : 문화유산으로서의 지명이 나가야 할 길>이라는 논문을 발견하고 숨이 멎는 듯했다. 내가 근무할 때 있었던 교토국제고의 2021년 봄 고시엔 출전과 한글 교가를 주제로 한 논문이었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한국외국어대 윤지환 HK 연구교수가 썼는데, "동해 바다"로 시작하는 민감한 내용의 한글 교가가 <엔에이치케이(NHK)>를 통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되고, 일본 사회가 큰 무리 없이 이런 일을 수용한 점에 주목했다.
한국과 일본은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바다의 이름을 놓고 국제무대에서 '일본해로 하는 것이 옳으냐, 동해로 하는 것이 옳으냐'는 논쟁을 벌여왔다. 한국 쪽은 '동해/일본해'의 병기를, 일본 쪽은 '한 지역, 한 이름'이라는 원칙에서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일본해'의 단독 표기를 주장해왔다.
결국 이 다툼은 2020년 11월 국제수로기구(IHO)가 전세계 바다와 이름을 수록한 책자(S-23)을 대체하는 디지털 형식의 새로운 문서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갔다. 이 결정의 핵심은 세계 각 수역에 명칭이 아닌 '숫자로 된 고유한 식별체계'를 개발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숫자의 밑바탕이 되는 대상 지역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까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즉, '동해, 일본해' 표기 논란이 완전히 정리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단계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제27회 세미나는 이런 상황의 변화 속에서 '동해' 이름 문제를 어떻게 전개해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고 바람직한가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런 때 "동해 바다"로 시작되는 교토국제고의 교가가 이 학교의 고시엔 첫 출전을 계기로 일본 전역에 방송되고 일본사회가 큰 무리 없이 이를 수용한 것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사안이었다. 윤 교수는 이 점에 착안해 논문을 썼고, 나로서는 내가 총영사 시절에 벌어졌던 일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관심이 컸다.
윤 교수는 교토국제고의 '동해' 한글 교가 방송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동해 지명 문제는 한일 간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영유권, 과거사 문제와 거리를 두고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둘째 문화유산으로서 동해 지명 성격을 앞으로 일본사회에 더욱 잘 설득시켜야 한다는 것을 제기해줬다고 말했다. 일본 사회가 '동해 교가'를 큰 문제 없이 수용한 것은, 재일한국인이 '동해'에 관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성격을 일본사회가 어느 정도 이해해줬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마지막으로, 2020년 국제수로기구의 새로운 결정으로 맞게 된 '바다 이름의 디지털 표기시대'에는 문화유산의 성격이 풍부한 지명이 훨씬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나는 윤 교수의 발표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교토국제고가 있는 지역에서 근무했던 총영사로서 보충 설명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사회자가 그런 기회를 주었다. 나는 교토국제고의 교가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 분명했지만, 한글 교가가 한일 사이의 '동해 명칭'을 둘러싼 갈등보다 훨씬 이전부터 불러졌다는 점, 한글교가를 학생들(전체의 70% 이상이 일본국적)이 스스로 부르길 원했다는 점, 그리고 교가 문제로 한국계 민족학교의 고시엔 첫 출전이 갖는 의미(민족학교의 존재감 과시, 민족교육 지원에 힘써온 재일동포에 대한 위로, 한일 청소년의 교류협력)가 훼손되지 않도록 학교 쪽이 주도적으로 노력한 점이, 이 문제의 연착륙에 기여했음을 설명했다.
윤 교수의 발표와 나의 보충설명으로, 세미나 참석자들이 일본에서 교토국제학교의 '동해' 한글 교가 방송에 관해 더욱 깊게 이해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그것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교토국제고의 교가'가 바다이름을 다루는 국제세미나에 등장했다는 것이 나에겐 흥분거리이고 역사적인 일이었다. 한때 그런 일의 연착륙을 위해 고민했던 사람으로서, 남다른 기분에 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