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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Apr 17. 2023

'메이저 신문' 출신 기자의 '한국언론 고발장'

언론불신, 기레기, 기더기, 저널리즘, 경영위기

저널리즘과 관련한 책 목록을 살펴보니, 한국의 타락한 언론 상황을 고발하는 언론인들의 책들이 생각보다 의외로 많다. 언론사에서 근무하고 있거나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들이어서, 문제의식이 구체적이고 생생한 것이 장점이다. 현장 언론인들이 이들이 지적하는 얘기를 귀담아 듣는다면, '기레기', 심지어 '기더기'라는 험한 말이 난무하는 '언론 불신' 상황도 크게 개선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기자는 물론이고 언론계 전체를 불신하는 풍조가 강해지면 강해지고 있지 약화할 기미가 없다. 왜 그럴까? 


우선, 언론계 내부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이 대체로 비주류이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계의 주류를 이루는 사람들에게 이들이 내는 목소리는 불평 분자나 주류에서 탈락한 실패자의 투정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젊은 기자들은 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여유가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이신문 기사에서 인터넷 기사까지 정신 없이 써대야 하는 상황에서 가벼운 소설 한 권도 읽기 어려운 것이 요즘 기자들이 처한 현실이다. 하물며 언론계의 문제를 고발하는 골치 아픈 책에 눈길을 돌릴 시간이 있겠는가.


더 중요한 것은 생존 논리, 즉 경영 논리가 저널리즘 원칙을 압도하는 언론계 상황이다.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밥을 중시하는 언론계 풍조가 자리 잡은 지는 꽤 오래 됐다. 굳이 따진다면, 1997년 금융위기가 본격적인 기점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무렵부터 편집과 경영의 경계가 무너지고, 민완 기자가 광고국 책임자로 가는 일이  아주 자연스런 일이 됐다.


언론계가 아무리 타락해도, 아니 오히려 타락할수록 저널리즘의 원칙과 가치에 대한 사회의 갈망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옳은 소리를 내는 소수의 분투가 귀중하다.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해요미디어, 이소룡 지음, 2020년 7월)라는 책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타락한 언론 상황에 대한 "고발장이자 반성문"이다. 이소룡이란 범상하지 않은 저자 이름은 가명이다. 하지만 인터넷만 검색해 봐도 그의 실명(조성식)을 바로 찾을 수 있다. 그는 이 책을 쓸 당시, 저자 이름을 가명으로 했을 뿐 아니라 소속 회사도 'X일보'로 감췄다. 한때 소속했던 회사에 대한 배려겠지만, 언론계 사정을 약간만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말하는 "X일보'가 <동아일보>라는 걸 책을 읽으면서 금세 눈치챌 수 있다.


이 책은 4부로 이뤄져 있다. 주제별로는 세 분야로 정리할 수 있다. 1부 '선택적 보도'는 검찰과 언론의 관계, 2부 '공정보도 투쟁'과 4부 '인간에 대한 예의'는 동아일보 안의 보도와 인사 등을 둘러싼 갈등, 3부 '삼성과 자본권력'은 대기업과 종교 등과 관련한 보도 문제로 대별할 수 있다.


세 가지 주제 모두 뜨끈뜨끈하지만, 책을 낼 즈음에는 조국 사태의 와중이어서 '검찰과 언론의 문제'가 가장 큰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저자는 월간지, 주간지에서 주로 일했기 때문에 검찰 기사를 다뤘지만, 검찰 기자실에 출입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검찰을 보는 눈이 출입기자들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이다. 그가 검찰 출입기자단의 문제를 지적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이쯤에서 '그들만의 리그'인 출입처 기자단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학자들에 따르면, '목적지가 같아 도중에 내릴 수 없는 기자들(boys on the bus)'은 배타적 공동체 의식에 젖어 있다. 외부에서 비판하면 고유영역을 침범하는 것으로 여긴다. 일종의 특권을 누리는 것이기에 출입처에 비판적 태도를 갖기도 쉽지 않다. 검증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특히 검찰처럼 전통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출입처에서 나오는 정보라면 날것 그대로 삼겨도 뒤탈이 없을 것이라고 합리화한다."(57페이지) 


이런 논리로 그는 검언유착 논란에 휩싸인 <채널A>가 사건 뒤 대책으로 내놓은 진상보고서 중의 검찰 취재 시스템 개선 방안을 높게 평가한다. '검찰 취재 중심의 법조팀 취재 관행을 개선한다. 검찰 수사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피의자의 입장도 반영하는 균형 잡힌 취재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실천한다'라고 돼 있는데, 그대로 실천한다면 다른 언론사의 취재 관행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수 있을 것이라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하지만 채널A는 물론 어느 한 언론사도 아직 이런 개선안을 실천하는 곳은 없다.


동아일보 안에서 공정보도와 신자유주의적인 경영 논리와 싸우는 부분도 긴장감이 넘친다. 이 부분에서는 한때 독재정권 비판지로 이름을 날렸던 동아일보가 얼마나 수구보수로 변했는지를 잘 파악할 수 있다. 또 경영의 논리를 저널리즘보다 우선하면서 기자들을 경영의 일선에 내몰면서 나오는 파열음과 갈등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경영논리가 저널리즘을 압도하는 현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단 동아일보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서 참담한 기분을 느꼈다.


삼성 등의 재벌과 사이비 종교단체를 다룬 부분도, 경영논리로 일그러진 저널리즘의 모습을 잘 폭로해준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에 비판적이거나 흠이 되는 기사를 쓸 때 재벌 쪽이 어떻게 대응하고 언론사 간부들은 이런 기사를 활용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는지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그런 모습을 그림 보는 것처럼 확인할 수 있다.


'종교자본'인 신천지, 하느님의교회, 통일교 등이 종교 홍보를 위해 미디어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고 미디어와 어떻게 공생관계를 만드는지, 그리고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기사에 대해서는 얼마나 극렬하게 대응하는지도 실례를 통해 볼 수 있다. 종교와 언론 사이의 은밀한 얘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양은 적지만, 매우 귀중한 기록이다.


이 책에 나오는 종교 관련 글은 신천지, 하느님의교회, 통일교를 다룬 세 편뿐이다. 하지만 이런 사이비 종교단체와 미디어가 손을 잡고 수익을 올리는 수법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최근 조선일보 등이 사이비종교를 홍보해주면서 수십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는 <뉴스타파>의 보도가 나와 충격을 줬는데, 이 책에 이미 그런 것을 예고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저자는 이와 같이 충격적인 언론 비판서를 내면서도 '나는 잘났다'고 뽐내지 않는다.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는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반성적이고 겸허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 태도가 이 책에 진실성과 무게감을 더해준다.


그는 언론 개혁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크게 높이지 않는다. 한때 공범이었던 사람으로서 작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담담하게 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록은 남기는 것이다. 언론의 정파성과 권력 행위는 어떻게 드러나는지, 언론계를 장악한 경영 논리와 자본 논리의 실상이 어떠한지, 기자정신은 어떻게 변질하고 어떻게 사라졌는지, 언론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무엇을 지양하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언론이 다시 살아나려면, 먼저 겸허한 자세를 갖춰야 한다. 본분에 맞지 않는 권력행위를 지양하고, 탐욕과 특권을 버리고, 미래지향적 생존방식을 도모한다면 길으 찾을 수도 있다. 언론기업이 아닌 언론사로 인정받으려면 수익을 추구하더라도 최소한의 공공성을 유지해야 한다."(이상 5페이지, 들어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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