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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Apr 24. 2023

여론조사가 문제인가, 여론조사 보도가 문제인가

여론조사 저널리즘, 윤석열, 여론조사 비판

윤석열 대통령이 4월 18일, 갑자기  여론조사에 대해 화풀이를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정부가 추진 중인 근로시간 유연화와 관련해 정부는 지금 광범위한 여론 수렴을 일대일 대면조사, FGI(집단심층면접), 표본 여론조사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여로조사 내용도 결과뿐 과정도 모두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특히 표본 여론조사는 표본 설정 체계가 과학적이고 대표성이 객관적인지 제대로 공개돼야 한다"면서 "나아가 질문 내용과 방식도 과학적이고 공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 공자님 같은 말씀이다. 허나 윤 대통령만 모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표본 여론조사의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내용은 이미 대부분 실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날 윤 대통령의 발언은 중요하다. 그가 최근 여론조사에 관해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럼 왜 윤 대통령은 여론조사에 불만을 가지게 됐을까. 발언만 보면, 69시간 노동제에 관한 부정적인 여론조사에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발언 시점이 한일 정상회담 이후 계속 대통령 지지율이 추락하는 여론조사가 나오고 있는 시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론조사에 화난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우리나라에서 '여론조사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여론조사 자체의 문제', 또 하나는 여론조사를 보도하는 '여론조사 보도의 문제'다. 대체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여론조사의 문제보다 여론조사 보도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본다. 수공업적이고 정파성이 강한 일부 여론조사 기관들이 수준 낮은 여론조사를 하고 있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여론조사협회에 가입해 있는 조사기관들은 윤 대통령의 지적을 들을 만큼 허술하게 조사를 하지 않는다. 상당한 수준의 과학적인 방식으로 조사를 하고 있고, 조사 내용과 절차도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에 상세하게 공개하고 있다. 

그래도 남아 있는 문제가 있다면, 조사 의뢰자의 의향에 따라 유도성 설문이 들어가는 등 설문과 조사 방식, 시기에서 왜곡이 작용할 수 있는 점이라고 한다. 일부에서 강하게 제기하고 있는 자동응답전화 조사의 낮은 응답률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번에 윤 대통령이 여론조사에 불만을 나타낸 것은 초점을 잘못 맞춘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정파성 짙은 여론조사 보도로 가장 큰 덕을 본 사람이 대통령이 된 뒤 지지율이 낮게 나온다고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한 꼴이다.

<여론조사 저널리즘>(리북, 신창운 지음, 2010년 8월)은 여론조사와 여론조사 보도의 문제를 다룬 책이다. 저자인 신씨는 지금은 퇴직했지만 책을 쓸 당시엔 <중앙일보>의 여론조사 전문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이 책은 그가 여론조사 전문기자로 일하면서 여론조사, 여론조사 보도와 관련해 블로그에 쓴 글을 모아 출판한 것이다. 

시기적으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5년 정도에 쓴 글이다. 지금의 정치· 사회 환경이 10여 년 전과 크게 다르기 때문에, 책 내용과 현실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보는 법, 여론조사 보도의 문제점, 여론조사 보도를 읽을 때 주의할 점은 시간의 경과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다. 

나도 기자 생활을 할 때 여론조사 보도를 해봤지만, 전혀 여론조사를 읽는 법을 모르고 기사를 함부로 썼구나 하는 반성을 이 책을 읽으면서 했다. 예를 들어, 한 총선 후보의 지지율이 10%로 나온 여론조사를 보자. '신뢰도가 95%에 오차 범위가 플러스 마이너스 3.0'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가 95%가 아니라  여론조사를 100번 했을 때 95번은 7~13%의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라고 한다. 창피하게도 당시 나는 이것을 전혀 모르고 기사를 썼다. 응답률도 오해를 많이 사는 경우인데, 20% 응답률이라고 하면 조사 대상자 1000명 중 200명이 응답한 것이 아니라 5000명을 접촉해 1000명에게 응답을 받았다는 것도 꼭 알아 둬야 할 사항이다. 응답률이 높을수록 좋고 낮을수록 나쁜 것은 사실이지만, 응답률이 낮다고 여론조사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학자들의 연구가 있다는 얘기도 참고할 만하다.

동일한 시기에 실시한 여러 여론조사 결과가 각기 차이가 나는 것은 조사의 잘못이라기보다 질문이나 응답항목의 차이, 면접원 특성과 표본추출방식, 조사 시점의 차이 때문이다. 따라서 조사 결과의 추이를 전할 때는 같은 조사기관의 것끼리 비교해야지 다른 기관의 것과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 한국의 많은 미디어들은  다른 조사기관의 조사 결과를 시계열로 비교해 등락 여부를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 나쁘게 말하면 일종의 사기 보도라고 할 수 있다. 오차 범위 안에 있는 후보들의 지지율을 누가 앞섰다거나 뒤졌다고 보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표본 규모의 대소만으로 여론조사의 신뢰를 문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는 이것도 틀렸다고 말한다.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표본의 성별, 연령별, 지역별 구성비가 모집단과 유사한지가 신뢰를 가늠하는 열쇠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명동에서 지나가는 행인 5000명에게 물었봤더니' 식의 조사는 아무리 표본이 커도 모집단과 구성비가 비슷한 500명 표본 조사와 신뢰도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총선, 대선 등과 관련해 전국 단위의 여론조사를 한 뒤, 특정 지역별로 나눠 지지율을 얘기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한다. 몇 십명 수준에 불과한 특정 지역의 표본으로 정확하게 그 지역의 여론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론조사를 읽을 때, 세 가지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상식에 입각해야 하고, 둘째, 결과 보다 설문 내용이나 응답 등 조사 개요을 꼼꼼하게 챙겨 읽는 수고와 노력을 해야 하고, 셋째 슬로 푸드와 마찬가지로 슬로 서베이에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상식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은 극단적인 결과를 배제해야 한다는 것과 통하고, 슬로 서베이에 높은 점수를 준다는 것은 경마식 조사보다 기획 조사를 중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저자는 또 투표 또는 지지율 조사에서는 전체 결과보다 투표 확실층의 지지율을 중시해야 하고, 부동층과 무응답의 동향을 잘 파악해야 하며, 극단적이고 특이한 사례 대신에 전반적 추세에 관심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저자는 선거 출구 조사와 관련해 선진적인 미국의 예를 들며 우리나라가 배워야 할 세 가지를 제안하고 있다. 경청할 얘기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실현되지 않고 있는 일이다. 첫째, 언론사가 개별적으로 여론조사를 하기보다 언론사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비용의 절감 뿐아니라 정확도도 높일 수 있으며, 해석에서 각 언론사의 자율성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둘째, 성급한 예측 보도를 자제하고, 셋째 지지율 조사만 하지 말고 지지 이유 등을 추가 질문으로 포함해 추가적인 연구자료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기사를 읽을 때 배경까지 함께 이해하는 기사 문해력(리터러시)가 필요하듯이, 여론조사를 볼 때도 여론조사 문해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이다.

누구든 자기 편에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는 맞다고 생각하고, 불리한 여론조사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행위는 자기 만족감이나 적대감을 강화해 줄 수는 있지만,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는 해가 된다. 이 책은 객관적으로 여론조사와 여론조사 보도를 올바로 이해하고 읽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점에서, 철 지난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익하다. 또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여론조사보다 여론조사 보도가 더욱 문제가 많다는 사실이다. 시민이 여론조사를 제대로 읽게 될 수록 여론조사 보도도 좋아질 수밖에 없을 터이니, 시민 차원에서 여론조사를 꿰뚫어 보는 안목을 기르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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