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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May 08. 2023

'황우석 사건' 보도를 통해 본 한국 언론의 문제

<황우석의 나라> 애국 보도, 문화방송, 피디수첩, 와이티엔

 <한겨레>에서 사회부장을 했던 시기는 2005년 봄부터 약 1년간이다. 바로 황우석씨의 줄기세포 복제가 사기극으로 드러난 시기와 정확하게 겹친다. '국민 영웅' 황우석의 사기극에 대한 폭로는 2005년 11월 22일 <문화방송> 피디수첩의 '황우석 신화의 난자 매매 의혹' 방영으로 본격 시작됐다. 그리고 내가 사회부장을 그만둔 뒤까지 파장이 이어졌다. 

신문사에서 황우석 사건을 주로 담당했던 부서는 사회부다. 처음에는 의료와 과학 담당이 사건을 맡았지만, 파문이 커지면서 사회부 전체가 달려들어 취재하게 됐다. 비록 기사는 사회부에서 맡아 처리했지만, 당시 황우석 사건은 편집국 전체의 가장 뜨거운 뉴스거리였다. 사회 전체가 황우석 지지와 반대로 갈려 광풍에 휩싸였고, 언론계도 그 파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금 20년 전을 되돌아 보면, 그때 <한겨레>가 어떻게 보도했는지 구체적으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나름대로 황우석 광풍, 즉 애국주의에 휩쓸리지 않고 균형을 잡으면서 보도했다는 가억은 난다. 왜냐하면, 나도 자칫 황우석 애국주의 광풍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위치에 있을 뻔했는데 운 좋게도 그런 처지에서 벗어나 있었던 기억이 새롭기 때문이다.

실토하자면, 황우석은 나의 고등학교 선배다. 그래서 그가 본격적으로 뜨기 전부터 동문회 모임에서 때때로 만난 적이 있다. 유명한 과학자지만 선후배와 잘 어울리는 사람 좋은 선배로 말이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영웅으로 떠오르던 시기에 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2001년부터 2004년 초까지 일본 특파원으로 있었으니, 그와 만날 기회가 자연히 사라졌다. 나중에 들어 보니, 나의 모교뿐 아니라 충청지역 출신 언론인들 거의 다가 그의 광적인 지지자, 후원자가 돼 있었다. 자발적인 선택은 아니었지만, 도쿄특파원 시대의 절연이 나름 황우석의 회오리에서 나를 지켜줬다고 할 수 있다. 그 덕에 사회부장으로 맞은 황우석 파동 때에 객관적 위치에서 기사를 다룰 수 있었다.

<황우석의 나라>(바다출판사, 이성주 지음, 2006년 3월)는 황우석이란 '가짜 과학자'에게 한국 언론이, 더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가 어떻게 농락됐는지를 꼼꼼하게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신문사 재직 때는 주로 의학을 담당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신문사를 퇴사까지 했다는 저자는 황우석 사건이 벌어질 당시에는 의료 담당이 아니었다. 따라서 자사 및 다른 경쟁사의 황우석 기사를 제3자의 위치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원래 과학, 의료 분야를 전문으로 삼아 취재해온데다 제3자적인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로 인해, 오히려 황우석 사태를 어느 기자보다 객관적으로 보면서 관찰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번 사태의 핵심인 과학과 언론의 두 분야를 모두 알고 있는 누군가가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 기록을 남겨야 하지만 주위에서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썼을 뿐"이라고 말했다. 겸손한 표현이지만, 책을 쓸 당시만 해도 황우석 지지자들의 광적인 흥분이 기승을 부리던 때였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이 책은 황우석 사건이 어떻게 시작됐고 전개됐으며 어떻게 종말을 향해 가는지를 언론의 보도, 황우석씨의 행태, 한국 사회 각계의 반응을 중심으로 고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과학 및 사회 비평서이면서, 미디어 비판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사기꾼'으로 드러난 황우석씨가 누구도 범할 수 없는 '국민 영웅'으로 등극하는 과정에서 정치인이든, 기자든, 과학자든 아무도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그런 광풍 속에서도 그의 업적에 관해 의문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한 극소수의 학자들, 피디수첩을 비롯한 극소수의 언론인이 존재했고, 이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드러날 사기극이었지만 이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가 없었다면 사기극은 더 길게 이어졌을 것이고 더욱 많은 물적, 정신적 자산이 탕진됐을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간단하다. 과학이나 언론이나 의문을 가지지 않으면 기능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류 가능성의 원리'를 과학과 민주주의의 바탕으로 삼은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를 되풀이 인용하며, 과학자의 학설 ,신문의 기사, 법관의 판결, 정당의 정책 등 모든 것이 틀릴 수 있다는 것, 비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할 때 제대로 작동한다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황우석 사태는 이런 '오류 가능성의 원리'가 정치권에서도, 미디어에서도, 심지어 과학계에서도 작동하지 않은 데서 나온 비극이라는 것이다.

황우석의 연구에서 사기의 냄새가 풀풀나는데도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비밀 유출 방지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환자들의 사기를 꺾는다는 이름으로 정당한 질문이 봉쇄됐다. 황우석은 1999년 2월 젖소 영롱이 복제, 4월 한우 진이 복제, 2000년 8월 사람 체세포 복제와 주머니배까지 배양, 2003년 광우병 내성 복제소 개발 발표 등 눈부신 업적을 발표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논문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문을 보자고, 검증을 하자고 나선 학자도 미디어 기자도 없었다. 그토록 세상을 열광시켰던 2004년,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이 가짜로 드러났지만 그래도 황우석을 음해한다며 폭력까지 불사하는 광풍이 한동안 이어졌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황우석 사태를 만들고 키운 데는 미디어가 가장 큰 노릇을 했다는 걸 통감했다. 미디어는 수동적인 지지에서 끝나지 않고 황우석을 비판하는 세력을 공격하고, 황우석을 변호하기 위해 공작 보도까지 했다. 일례로, <와이티엔>은 피디수첩에 대한 공작성 음해 보도에 그치지 않고, 제보자와 피디수첩 쪽과 오고간 이메일까지 불법으로 입수해 황씨에게 전해주기까지 했다.

책을 덮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과연 오늘의 한국 미디어는 황우석 사태와 같은 사건이 다시 벌어진다면 이성과 의문에 기초해 제대로 된 기사를 쓸 수 있을까? 나는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바이든-날리면' 파동만 봐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곧 황우석 파동이 일어난 지도 20년이 된다. 20주년을 기념해, 황우석 보도를 되돌아보고 오늘의 미디어를 성찰하는 토론회라도 열어보면,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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