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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May 29. 2023

한국의 '대표 언론인' 손석희에서 배워야 할 것들.

<장면들>, 손석희 저널리즘, 손석희 현상, 제이티비시, 문화방송

한국 언론사에서 '손석희'는 고유명사이자 보통명사다. 손석희는 개인의 이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이면서, '손석희 저널리즘'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가서 언론 분야 서가를 쳐다보면, 손석희가 직접 쓴 책 외에도 <손석희 현상>, <손석희 저널리즘>, <손석희 스타일>, <분석 손석희 인터뷰>, <왜  손석희인가> 등, 그의 이름이 붙은 책이 즐비하다.


아마 한국 언론사에서 이 정도의 관심과 대접을 받는 언론인은 이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2004년부터 21년까지 무려 17년 동안 주간지 <시사저널>이 조사한 '전문가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부문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온 언론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손석희는 1984년 <문화방송> 아나운서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86년 <한국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했으니 언론계 2년 선배다. 내가 <한국일보>에서 사회부 견습을 하던 시절에 그도 아나운서에서 기자로 전직한 상태였다. 당시 경찰 출입기자들은 밤에 서울의 경찰서들을 두 쪽으로 나눠 차를 타고 돌며 사건을 챙기는 야근을 했다. 이때 손석희도 <문화방송>의 야근 차를 타고 돌았다. 하지만 인사를 하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신문기자들이 방송기자들을 경시하고, 아나운서는 더욱 흰눈을 뜬 채 보는 경향이 있었다. 당시 같은 방송기자들조차 그를 보고 "저 친구는 아나운서 출신이야"라고 무시하는 듯한 얘기를 하곤 했다. 그리고 그가 앵커로 잘 나갈 때도 상당히 많은 기자들이 그의 언론계 첫 출발이 기자가 아니란 점 등을 입에 올렸던 기억이 난다. 경시라기보다는 질투의 감정이 더 뭍어 있는 험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시작과 출신이 뭘 그리 중요하냐', '앵커를 하면서 그가 질문하는 것을 보면 엄청나게 연구하고 공부한 느낌이 든다', '누가 전부 써줘서는 저런 대화를 진행할 수 없다'는 저항감을 느꼈다. 그가 적어도 대단히 노력하는 훌륭한 저널리스트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과 관련해 직접 그를 만난 것은, 2017년 12월 27일이었다. 일본군'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 위원장으로서, 이날 검토보고서를 발표한 뒤 그가 앵커를 하던 <제이티비스(JTBC) 뉴스룸>에 생방송으로 출연해 인터뷰를 했다. 생애 첫 생방송 출연이었지만 긴장을 풀어주며 편하게 대해줬던 기억이 난다. 


그는 지금은 뉴스 현장에서 물러나 있지만, 여전히 명실상부하게 한국을 대표하는 저널리스트임이 분명하다. 최근 그가 <JTBC> 앵커를 마친 뒤 쓴 저널리즘 에세이 <장면들>(창비, 2022년 1월)를 읽었다.


책 소감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명불허전이다. 역시 한국의 대표 언론 손석희의 이름값을 하는 책이다.


이 책은 주로 그가 고향인 <문화방송>을  떠나 <제이티비시>로 옮긴 2013년부터 앵커를 그만둘 때인 2020년 말까지 상황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의 행적과 생각과 연결된 전후의 얘기도 담고 있다. 책은 2부로 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제이티비시> 앵커로서 주요하게 다뤘던 뉴스 화제를 소재로 했다. 2부에서는 그가 생각하는 좋은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과 방법에 대해 썼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비로소 '손석희 저널리즘'의 실체가 무엇인지 조금은 감을 잡게 됐다. 


그가 저널리즘의 가장 중요 열쇠말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어젠다 키핑(의제 유지)'이다. 그것은 손석희의 독창적인 개념인데, 언론학에서 나오는 '어젠다 세팅(의제 설정)' 개념을 그 나름대로 확장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어젠다 키핑은 어젠더 세팅의 한 종류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가 굳이 어젠다 키핑이란 용어를 만들어 강조하는 것은 한국 미디어의 냄비 같은 속성이 어젠더 세팅 기능도 제대로 못한다고 봤기 때문이 아닐었을까, 짐작한다. 내가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그의 개념은 하나의 주제를 끈질지게 파고 들고 문제 제기하면서 변화를 이끄는 것이다. '세상이 반응할 때까지 물고 늘어지기'라고 바꿔 표현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이런 개념에 따라, 삼성의 노조 무력화 문건, 세월호,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농단, 미투 등의 사건을 뉴스룸에서 길게는 100일이 넘게 다뤘다. 그리고 신생 종편 <제이티비시>가 가장 영향력 있고 주목 받는 방송이 되는 데 공헌했다. 아마 그가 어젠타 키핑이라는 개념의 유효성을 믿지 못했다면, 그렇게 끈질지게 보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이런 개념의 유효성을 믿기에 권력의 눈돌리기 작전에도 말려들지 않고 자신들이 정한 길을 유지하며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때 박 대통령이 눈 돌리기를 꾀하려고 개헌론을 들고 나왔는데, 손석희는 다른 방송과 달리 계속 국정농단에 초점을 두고 뉴스를 진행했다.


손석희는 자신의 저널리즘을 네 가지 원칙으로 설명한다. 사실, 공정, 균형, 품위다.

가장 앞에 두는 것은 팩트(사실)이고, 이해관계 속에서 공정, 이데올르기에서 균형,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에서 품위가 뒤따른다. 


그가 얘기하는 네 가지 원칙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품위'다. 그는 이런 원칙 속에서 박근혜 국정 농단 사건 때 '길라임'이라는 이름으로 차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간 사실을 특종하고도 몇 일 미루고 돋보이지 않게 보도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그가 말하는 품위는 미디어가 파편화하고, 진실이 개인화하며 자기 확증편향이 판치는 뉴미디어 시대의 광풍 속에서 그 나름대로 전통 미디어의 미덕을 지키는 안전 장치이기도 했던 것 같다. 물론 사실, 공정, 균형도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는 뉴미디어를 정통 저널리즘의 단절이 아니라, 정통 저널리즘의 확장으로 보는데, 나도 동감한다. 뉴미디어 시대, 탈진실 시대가 왔다고 해서 내편, 네편을 가려 내편에만 유리한 것만 강조하는 것을 좋은 저널리즘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이라는 도구의 변화가 (신문에서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인터넷으로) 있어 왔을 뿐, 저널리즘의 정신을 말하는 데에 페니 프레스시대의 구조와 디지털 시대의 구조가 다를 리 없다."(360 페이지)


이런 점에서 그는 시대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통 저널리즘, 좋은 저널리즘의 수호자라고 할 만하다. "저널리즘을 위해 운동을 할 수 있지만, 운동을 위해 저널리즘을 할 수는 없다"는 그의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는 "힘 있는 사람이 두려워하고, 힘 없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뉴스"를, 방법론으로는 "한걸을 더 들어가는' 뉴스를 제시한다. 또 언론의 존재 이유로는 '민주주의'와 '인본주의'를 내세운다. 스스로 '합리적 진보'라고 규정하하면서 저널리스트의 속성은 문제 제기인데 문제 제기는 의심하는 것, 즉 기존의 체제와 현상에 안주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므로 진보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편향에 관해서는 알랭드 보통의 얘기를 들며, 나쁜 편향보다는 편향 없음이 낫고, 편향 없음보다는 좋은 편향이 낫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언론관을 피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이티비시> 뉴스룸을 이끌면서, 앵커 브리핑, 팩트 체크, 비하인드 뉴스, 엔딩곡, 문화초대석을 새롭게 도입한 배경과 의미도 밝히고 있다. 모두 선구적이고 좋은 시도다. 하지만 불편한 구석도 있다. 거의 모든 프로그램 이름이 영어라는 점이다. 그와 <문화방송>에서 근무했던 김상균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따르면, 그는 1990년대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이름이 <굿모닝 코리아>라는 영어 이름으로 바뀌자, 방송을 하면서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고 하는데 <제이티비시>에서는 왜 그런 문제의식을 관철하지 못했는지 의문이다.


손석희가 <문화방송>을 떠나 <제이티비시>로 옮겼을 때, 그 방송이 보이고 있는 진보성향이 '손석희 때문이냐, 제이티비시이 세운 방향성 때문이냐'라는 논란이 있었다. 손석희가 하차한 지금에서 보면, 전자 쪽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손석희가 그 회사를 떠난다 해도 그가 <제이티비시>의 앵커로서 펼친 손석희 저널리즘은 길이 남을 것이다.


이 책은 좋은 저널리즘을 추구하려는 후배들에게 나침반이 될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언론인의 소중한 교육자료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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