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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un 12. 2023

'뉴스 중독 시대'에 편향을 넘어 진실을 보는 법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손석희, 탈진실, 임헌영, 당파성

독서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연쇄 독서법'이다. 원래 읽으려고 하던 책이 아니었는데, 독서 중인 책에서 다른 책의 존재를 발견하고 바로 찾아 읽는 독서법을 일컫는다. 어떤 때는 이런 식으로 의도하지 않은 책을 마치 고리가 연쇄적으로 이어지듯 몇 권씩 읽게 되는 경우도 있다.

<뉴스의 시대>(문학동네,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2014년 7월)는 언론인 손석희씨의 <장면들>을 읽던 중에 발견한 책이다. 손씨는 이 책에서, <뉴스의 시대>를 쓴 알랭 드 보통이 <제이티비시> 뉴스룸에 초대 손님으로 나온 얘기를 하며 그가 뉴스의 편향에 관해 긍정적으로 얘기했다고 소개했다. 그가 나쁜 편향보다는 편향 없음이 낫고, 편향 없음보다는 좋은 편향이 낫다는 식의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평소, 가장 편향적인 보도기관이나 사람들이  마치 '편향 없음'이 뉴스의 최고 기준인 것처럼 말하는 것에 가증스러움을 느끼던 차에, 급 흥미가 솟았다. 그래서 바로 책을 구해 그 부분부터 살펴봤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편향은 정치뉴스를 다루는 부분에 나오는데 관련 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편향에 대해 좀더 관대해져야 할지도 모른다. 순수한 의미에서 편향은 사건을 평가하는 방법을 뜻할 뿐이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기능과 활동에 관한 일관되면서도 근본적인 논지에 의해  인도된다. 편향은 현실 위를 미끄러져들어감으로써 더 명확하게 사건을 들여다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 쌍의 렌즈다. 편향은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려 분투하고 개념이나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 가치의 척도를 제시한다. 편향을 벗어나려는 행동은 그 자체로 지나친 시도로 보인다. 오히려 우리의 임무는 편향된 시각이 생산한 더 믿을 만하고 유익한 뉴스에 올라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이 말을 요약하면, 편향은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편향의 잣대로 생산한 더 믿을 만한 뉴스를 찾아 읽는 게 현명하다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뉴스에서 무편향의 중립성, 객관성이  존재할 수 없다는 얘기는 저널리즘 분야의 명저인 <저널리즘의 기본원칙>(한국언론진흥재단, 빌 코바치·톰 로젠스틸 지음, 이재경 옮김, 2012년 12월 개정증보판 4쇄)에도 나온다. 

이 책에는 "기자는 객관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가 사용하는 방법은 객관적일 수 있다. 그러니까 열쇠는 이 작업의 규율에 있다.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다"(134페이지)라는 대목이 나온다. 또 다음 페이지에는 "원래 객관성의 이해에서, 중립성은 저널리즘의 근본원칙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수용자에게 기자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설득하기 위한 목소리고 장치일 뿐이다"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면서 "사실 확인의 규율, 그 가운데서도 특히 투명성의 개념은 기자들이 편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내가 이 부분을 감히 해석하자면, 기자는 가능하지 않은 객관성, 중립성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취재했는가에 대해 독자에게 투명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진실 보도의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논지와 알랭 드 보통의 얘기가 일맥상통한다.

얘기가 나온 김에 편향이나 당파성에 관해 또 하나 생각나는 글을 있어 소개한다. 문학가 임헌영씨와 유성호 교수의 대담집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에(한길사, 2021년 10월) 이런 얘기가 나온다.

"임헌영 (그랜빌) 힉스는 1930년대에 미 공산당 최고의 이론가이자 활동가였으나 1939년 8월 22일 '독소불가침조약'에 실망해 사회당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중략> 나는 이 독소불가침조약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문제가 지식인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의 역사의식을 평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된다고 봅니다. 아무리 똑똑하다 한들 자신의 세계관에다 당파성을 가졌느냐 아니냐에 따라 하늘과 땅처럼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중략> 그게 바로 투철한 '당파성'을 가졌느냐, 아니면 그저 관념적인 양심만 고수하는 지식인이냐에 달린 문제입니다. 즉 당파성을 가진 지식인과 맹목적으로 정의만 외치는 지식인들의 엄청난 역사인식의 차이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중략> 진보란 인간이 지닌 가장 고귀한 판단력을 행사할 때 그 비판의식의 가늠자가 객관적이고 냉철하며 정확하게 작동하는 슬기로움일 것입니다. 아무리 영리하고 비상한 인물일지라도 판단력의 가늠자가 '진보적인 당파성'을 잃어버리면 도리어 극우보수로 전락하고 마는데 그런 지식인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알랭 드 보통이 쓴 책 얘기를 하다 보니, 편향과 당파성 얘기가 길어졌다. 하지만 책 한 권을 읽으면서 한두 가지만 얻어도 '남는 장사'를 할 때가 종종 있다. 나는, 그의 책에서 편향과 관련한 뉴스 읽기를 다룬 대목만 흡수해도 전혀 손해 보지 않는 독서를 한 것이라고 본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에서 '일상의 철학자'라는 별칭에 걸맞게 홍수처럼 쏟아지는 현대 뉴스 미디어의 풍경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어떡하면 독자들이 생산적이고 건강하게 뉴스를 소화할 수 있는지를 얘기하고 있다. 또, 뉴스를 정치, 해외, 경제, 셀러브러티, 재난, 소비자정보로 나눠 꼼꼼하게 살펴보며, 미디어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역할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재난 뉴스는 "우리 동료 인간들을 쓰러뜨리는 사고들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상시적으로 갑작스런 죽음과 부상에 노출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하고, 그리하여 고통의 겪지 않는 모든 시간에 우리가 얼마나 감사와 관용을 베풀며 살아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뉴스의 홍수 시대에 뉴스 소비자와 생산자가 어떤 자세로 현명하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해주는 좋은 지침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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