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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un 19. 2023

위기에 빠진 '일본 신문'에 타개책은 있나?

<일본의 5대지>, 신문, 저널리즘, 아사히, 조선, 동아

예전에 우리나라의 신문계에 4대지라는 말이 있었다. 조간의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석간의 <동아일보>와 <중앙일보>가 경쟁하던 시대의 용어다. 여기에 석간의 <경향신문>과 조간의 <서울신문>까지 합쳐 6대지라고 부르기도 했다. 1988년 5월 <한겨레신문>의 창간과 함께 중앙지가 몇 개 늘면서 지금은 중앙지만 10개가 난립하고 있다.


일본의 신문 분류는 우리나라와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의 중앙지에 해당하는 전국지가 있고, 47개 도도부현에 각 1개씩 지방지가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몇 개의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블록지라는 것이 있다. 홋카이도의 <홋카이도신문>, 나고야 중심의 <주니치신문>, 후쿠오카 중심의 <서일본신문>이 대표적인 블록지다. 블록지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영남, 호남, 충청 등 광역권 신문인데, 우리나라에는 없다.


일본의 5대지, 즉 일본 전역을 취재와 판매 대상으로 삼는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일본경제신문>, <산케이신문>를 일컫는다.


이들 5대 신문은 모두 우리나라의 신문과 각기 제휴관계를 맺고 있다. 요미우리는 한국일보, 아사히는 동아일보,  마이니치는 조선일보, 일본경제는 중앙일보, 산케이는 경향신문과 제휴를 맺고 특파원 사무실을 교환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묘한 것이 서로 제휴 회사의 논조가 어긋난다는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마이니치와 조선, 산케이와 경향은 논조가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마이니치는 아사히보다 더 진보적인 색채가 강하고, 산케이는 5대지 중 가장 보수적이다. 조선과 경향의 성향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일본의 언론계 인사에게 두 나라 사이의 제휴 신문사의 논조가 어긋나는데도 제휴를 하는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사람 의 말은, 일본은 의리를 중시하기 때문에 한 번 맺은 관계는 잘 깨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여하튼 두 나라 신문 사이에 '이상한 제휴관계'는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5대 신문>(나나츠모리서관, 오쿠무라 히로시, 2009년 3월)은  5대 전국지로 대표되는 일본의 신문이 어떤 위기에 처해 있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설파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오쿠무라씨는 산케이신문에 입사해 9년 정도 근무하다가 퇴직한 뒤 주식회사 연구에 매진한 주식회사 전문가다. 이 책도 주식회사의 관점에서 일본 신문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게 특징이다.


"신문의 위기라는 얘기가 나온 지 꽤 오래됐다. 젊은이가 신문을 읽지 않고, 신문을 보는 가정도 줄면서 발행부수가 감소하고 있다. 거기에 미국의 주택금융위기에서 촉발한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광고가 줄고 신문사 경영이 크게 악화하고 있다. 회사의 경영이 악화하면, 상품의 품질을 개선해 대처하면 좋으나 신문사와 방송사는 반대로 질을 저하하는 것으로 대처하려고 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위기에 빠진 일본의 언론계에 대한 진단이다. 바로 우리나라 언론계가 처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모두 10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부터 5장까지는 각기 요미우리, 아사히, 일본경제신문, 마이니치, 산케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6장부터 10장에서는, 저자가 보는 일본 언론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타개책이 나온다.


각 신문을 다룬 장에서는 우리가 잘 모르는 일본 신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요미우리는 원래 보수적이지 않았는데 지금 요미우리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와타나베 쓰네오 요미우리그룹 본사주필이 논설위원실장을 맡은 1979년부터 본격적으로 우경화가 이뤄졌다고 한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산케이의 경영 지배권를 둘러싼 암투, 주식회사 중심의 시장경제를 신처럼 떠받치면서 정작 자신은 주식회사의 원리를 지키지 않고 있는 일본경제신문의 모순된 경영, 아사히의 지배구조를 둘러싼 문제와 경영난에 빠진 마이니치의 고투, 5개 신문 중 비교적 잘 나가는 요미우리-아시히-일본경제신문 3자가 연합해 약자인 마이니치와 산케이를 압박하는 얘기도 흥미롭다.


저자는 주식회사 전문가 답게, 각 신문사들이 외형상 주식회사의 모습을 취하면서도 주식 매매를 제한하는 정관을 두고 불투명하게 경영을 하는 모습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하지만 신문사가 주식회사로서 기능을 잘한다고 해서 언론의 역할도 잘할 것이라는 데에도 부정적이다. 주식회사는 이익의 최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인데, 이것과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라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저널리즘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들어 주식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영업 분야가 확대하면서 '규모의 불경제'와 '범위의 불경제'라는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일본의 전국지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의 기자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회사원 기자'라고 불리는데 이런 현상도 주식회사의 틀을 쓴 언론사 체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따라서 그는 좀 과격한 위기 타개 방안을 내놓는다. 기자는 모두 독립된 존재로서 회사와 계약관계를 맺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는 " 극단적인 제안일지 모르지만 신문기자는 전부 독립한 저널리스트가 되고, 신문사와는 계약에 따라 원고를 쓰고 원고료를 받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그래야 전문기자도 나올 수 있고, 기자가 독립적인 관점에서 제대로 저널리스트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더 나아가 그는 신문기자 모두가 독립 저널리스트가 되어도 신문사가 원고를 사주지 않으면 지면에 기사가 나올 수 없다면서, 신문사라는 회사의 존재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즉 '거대 신문사 해체론'이다.


"종업원이 300명이면 족하다. 특별한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300명 정도면 경영자도 종업원도 서로 얼굴을 알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이면 어렵다. '인간의 얼굴을 한 기업'으로 하자는 얘기다."


지금 수천명 이상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일본 신문사의 조직을 각 부문별, 지역별로 나눠 작은 회사로 만들면 된다고, 그는 말한다. 종합적이고 균형적인 뉴스를 전달하는 신문의 긍정적 역할을 살리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을 활용할 방법을 개혁을 바라는 신문 종사자 모두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말한다. "나의 제안은 신문사를 주식회사가 아닌 새로운 기업형태로 하자는 것이다. 거대 신문사를 해체하여, 종업원 300명 정도의 기업으로 분할해 각각 독립시키자는 것이다."   


그의 제안이 다소 이상적이고 과격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신문사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고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주식회사 전문 연구자의 얘기라는 점에서, 흘려듣기 어려운 점이 있다. 특히, 창간 당시 저널리즘의 대의를 위해 일로매진할 것을 선언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관료화하고 자본주의의 이익 추구의 회로에 빨려들어가고 있는 <한겨레>의 모습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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