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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ul 03. 2023

위안부 운동에 대한 삐딱한 시선

<위안부 운동, 성역에서 광장으로>, 강제동원, 한국언론, 윤미향 

제목부터 매우 도발적이다. 이제까지는 성역이었는데 지금부터 아니란 얘기인지, 이제까지 성역으로 대해왔는데 지금부터는 성역으로 취급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취재하겠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위안부 운동, 성역에서 광장으로>(나남, 심규선 지음, 2021년 2월)를 읽어보면, 위의 궁금증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차로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2020년 5월 7일)으로 미디어가 성역처럼 생각해왔던 위안부 단체(일본군성노예문제해결을위한정의기억연대, 이하 정의연)의 성역이 무너졌고, 2차로 그를 계기로 앞으로는 위안부 단체와 인물을 성역시하지 않고 취재해야 한다(또는 취재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존재를 일본에서 귀국(2021년 6월)한 뒤 1년여가 지난 뒤에야 알았다. 내가 위원장을 맡아 낸 '12.28 위안부 합의 검토보고서'에 대한 비판 내용이 담겨 있다는 걸 알았다면 바로 봤을 터인데 그런 내용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 

이 책의 집필 동기는 위안부 운동 단체인 정의연과 그 대표였던 윤미향씨를 비판한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과 검찰의 기소(2020년 9월 14일)가 계기였던 듯하다. 집필 시기를 보면 그렇다. 

평소 일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저자가 위안부 운동을 비판하는 책을 내면서 그에만 그치지 않고 위안부 합의와 강제동원(징용) 문제까지 범위를 넓혔다. 그러다 보니, 위안부 운동 비판이 주이고 위안부 합의와 강제동원 문제는 부로 취급했다. 책 구성에서 그런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모두 456쪽 분량 중 위안부 운동 비판이 절반을 훨씬 넘는 256쪽을 차지한다. 위안부 합의와 치유재단 부분이 90여 쪽, 강제 동원 해법 부분이 80쪽 정도다.

 저자 심규선씨는 <동아일보>에서 도쿄특파원과 편집국장, 대기자를 지낸 일본통 언론으로, 현재 강제노동 피해자를 대상으로 제3자 변제를 하고 있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 책이 그 자리로 가는 직접적인 발판 노릇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에 나와 있는 인식이 이사장 발탁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아 보인다.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정의연이 5월 31일, <'정의연 오보 사태' 언론에 무엇을 남겼나>하는 토론회를 연 것을 계기로 다시 이 책을 읽었다. 내가 토론회에서 '정의연 오보 사태의 배경과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라는 발제를 맡았는데 발제문을 쓰면서 참고하기 위해서였다.

두 번 읽을 만한 책은 아니지만 두 번 읽으면서 불편한 생각이 영 가시지 않았다. 이 책의 장점은 그동안 나왔던 신문 기사와 성명서, 기자회견문, 판결문 등을 충실하게 모아 실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료의 해석이나 흐름의 분석에서 엿보이는 저자의 주관적 견해에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저자는 위안부 운동을 성역이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이런 이름 짓기부터 거부감이 들었다. 성역이란, 그 안에 잘못이 있는 줄 알면서도 뭔가의 위세에 눌려 그 잘못을 눈감아줬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 미디어들이 그랬는지 모르겠다. 

성역 없는 취재는 기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위안부운동이건, 검찰이건, 대통령실이건 스스로 성역을 두는 것은 기자가 취할 옳은 태도가 아니다. 모르면 모르지만 우리나라 미디어는 위안부 운동을 건드리기 두려운 성역이기 때문에 취재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게을렀기 때문에 취재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미디어들이 성역시하는 대통령실과 그 주변 인물, 검찰의 취재와는 결이 다르다. 따라서 위안부운동을 성역이라고 매도하기 전에, 먼저 기자와 미디어의 게으름을 탓하는 게 마땅했다고 본다.

두 번째는 '피해자 중심적 접근'에 대한 오해 내지 오도다. 저자는 국제적으로 확립된 용어인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아니라, 굳이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피해자를 신성시하는 극단적 생각이라는 인상을 주려고 그랬다는 의심이 든다.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무엇인지는, 윤석열 정부가 3월 6일 강제동원 피해자 해법을 발표한 데 대해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이 발표한 비판 성명(3월 8일) 속에 잘 나와 있다.

"유엔총회가 2005년 채택한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행위의 피해자 구제와 배상에 대한 권리에 관한 기본 원칙과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배상에는 사실의 인정과 책임을 승인을 포함한 공식적 사죄, 피해자에 대한 기념과 추모, 모든 수준의 교육에서 위반행위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포함되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여기에 열거된 기본 원칙과 가이드라인이 피해자 중심적 접근의 내용이다. 그런데 저자는 '전문가들이 만든 자료를 필자가 정리한 것'이라고 소개하면서 이렇게 국제적으로 확립된 내용을 무시한다. 그리고 자의적으로 피해자 중심주의로 이름을 바꿔부르며, 비판을 가하고 있다. 즉, 피해자 중심주의가 '피해자 이용주의', '피해자 단체 중심주의', '피해자 이상주의', '피해자 차별주의', '피해자 방치주의'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만들어 쓴 반박 용어만 살펴봐도 필자가 피해자 중심적 접근을 처음부터 악마화하기로 작정하고 있다는 걸 엿볼 수 있다..

세 번째는 아직 끝나지 않은 사안을 너무 쉽게 재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미향 사건의 1심 재판이 올해 2월 10일 이뤄졌다. 서울서부검찰청 최지석 검사가 기소한 8개 죄목 중 업무상횡령 일부(1억여 원 중 1700만원 정도)만 인정돼, 벌금 1500만원의 판결이 내려졌다. '사실상 무죄'라는 얘기가 나온 이유다. 

그러나 저자는 검찰의 기소와 언론의 오보를 기정사실로 단정한 채 정의연과 윤씨를 사정없이 비판했다. 심지어 법의 판단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지만, 국민정서로는 이미 유죄다라는 말까지 쓰고 있다. 기소된 혐의에 대해 법원의 판단과 관계없이 국민정서로는 이미 유죄라는 주장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얘기다. 저저는 이런 비판을 피하기 위해, 이미 그런 사례가 많다고 말하지만, 앞뒤가 바뀐 인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정황을 감안할 때 이 책은 한 번 비판해야지 하고 벼르고 있던 정의연과 윤씨를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 기자회견을 활용해 정의연과 윤씨에게 칼을 빼들고 공격한 책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2장은 위안부 합의와 화해·치유재단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화해·치유재단의 이사를 지냈다. 그래서 재단의 해산 과정에 관해 내부자로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나는 이 부분은 경청할 가지가 있다고 본다. 

내가 관여한 위안부 합의 검토 보고서 비판은 좀 할 말이 있다. 무엇보다 검토 보고서가 위안부 재단 해산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건 그의 생각일 뿐이다. 당시 검토 보고서는 12.28 합의에 대한 전국민적 비판(당시 2017년 3월 10일 대선에 출마한 5명의 여야 후보가 모두 합의의 파기와 백자화 주장)을 받아 무엇이 문제인지 검토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무슨 이론적 근거 제공을 위한 활동이 아니다. 그 보고서를 보고 당시 정권이 무슨 대책을 세우거나 실시한 것은 보고서를 낸 주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 

저자는 보고서가 '비공개' 부분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국민을 속였다는 인상을 줬다"고 비판한다. 표적에서 벗어난 엉뚱한 비판이다. 당시 양국 외무장관이 합의내용을 발표하면서 말하지 않은 내용이 있었다. 이것을 비공개가 아니고 어떻게 표현하는 게 옳은가. 당시 정치권과 사회에는 '이면 합의'의 존재 가능성을 의심하는 말이 파다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비공개 내용을 '이면 합의'로 표기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주장도 티에프 안에서 나왔었다. 하지만 논의 끝에 가장 중립적인 표현을 찾아, 비공개로 표현하기로 한 것이다.

그외에도 검토보고서를 비판하는 대목이 여럿 있지만 아픈 지적은 거의 없다. 아쉬움이 남는 건, 당시 여러 군데에서 보고서와 관련한 토론회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이런 비판이 전혀 제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3장은 최근 한일 사이에 가장 뜨거운 쟁점이었던 강제 동원(징용)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저자가 기억·화해·미래재단을 만들어 우리나라와 일본 기업과 개인 등의 기부금으로 재원으로 강제 동원 피해자에 제3자 대위변제를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문희상 안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윤 정부는 우리나라 기업만이 낸 돈으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대위변제하는 안을 해법으로 내놨다. 문희상 안의 발바닥에도 못 미치는 안이다. 그런데 저자는 지금 이 기관의 이사장을 맡아, 정부 안을 받아들이도록 피해자를 설득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저자가 '불가능한 최선보다 가능한 차선'이란 표현을 써가며 그동안 강제동원 해법으로 일본 정부의 사과와 가해 일본 기업의 자금 출연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해온 점을 생각하면 언행불일치다. .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 그나마 이 책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한일 역사 현안과 관련해 우리 사회 한 쪽 의견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점에 위안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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